늦깎이 대학원 도전

마침내, 대학원 (1)

by 김민호

2024년 겨울, 볕이 유난히 깊게 들던 방에서 면접을 봤다. 대학원 석사과정 면접이었다.

미리 제출한 지원서에는 2010년 대학 졸업, 언론정보학 전공, 현 기획실 근무라고 채워 넣었다. 경영학과 연결고리는 십수 년간 회사를 다닌 이력뿐이었다. 그나마 소속 부서가 총무나 구매가 아니고 기획이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세부 전공으로 조직인사를 택했기 때문이다.


그해 나는 마흔 고개에 접어들었고, 30대에 미처 끝내지 못한 일을 다시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조직인사에 대해선 아는 게 없었다. 그저 회사 사람들의 말과 행동 이면의 심리에 관심이 있을 뿐이었다. 연구계획서에는 벼락치기로 논문 몇 편을 읽고, 조직의 DEI (Diversity·Equity·Inclusion, 다양성·형평성·포용성)에 대해 썼다. 아는 것을 피력했다기보다는 동지섣달 꽃 본 듯이 날 좀 봐 달라는 마음이 컸다.


젊고 에너지가 넘치는 두 남녀 교수가 번갈아 질문을 던졌다. 주로 묻는 쪽은 남자였다. 짧게 다듬은 머리, 핏이 좋은 재킷, 깔끔한 안경이 그의 성격을 대변하는 듯했다.

그는 내 연구계획서를 한 줄 한 줄 짚어가며 살피더니 불쑥 영어를 잘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보통이라고 답했다. 말이 나오자마자 아차 싶었다. 회화는… 조금 한다고 서둘러 덧붙였다. 절실한 마음이 나도 모르게 툭 튀어나온 것이다. 순간 공기가 멈춘 듯했다.

그는 빙긋이 웃고는 학부 때 연구방법론을 공부했느냐고 물었다. 이번에도 나는 듣고 싶은 말을 시원스럽게 내놓는 대신 정답 주변을 맴돌았다. 추운 날씨 탓에 하얗게 질렸던 내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울 무렵이었다.

교수님이 DEI에 대해 물었다. 그제야 나는 언 땅이 녹고 계곡물이 콸콸거리며 터져 나오듯 말을 쏟아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마침 그의 관심 연구 분야 중 하나가 DEI였다.


밖으로 나오니 캠퍼스는 전날 내린 눈으로 온통 하얗게 덮여 있었다. 중앙도서관 앞마당에서 교정을 내려다보았다. 차가운 공기를 폐부 깊숙이 들이마셨다. 비로소 긴장과 열기로 뒤섞인 머릿속이 선명해지는 기분이었다.

문득 손석희 선생님의 산문 '늦깎이 인생'이 떠올랐다. 그가 유학길에 오른 나이 역시 불혹을 넘긴 즈음이었기 때문이리라. 그는 마흔셋의 미국 유학 결정을 두고, 사정에 어울리지 않은 일이었다고 자평한다. 하지만 기왕 늦었으니 한번 저질러 보자는 심보도 작용했다고 고백했다.


누구에게나 처음 가는 길은 두렵기 마련이다. 괜한 일을 벌인 것은 아닐까, 하는 후회와 이왕 발을 들였으니 성큼성큼 나아가자는 다짐이 파도처럼 번갈아 밀려온다.

나 역시 그랬다. 대학원에 입학 원서를 보내 놓고도 여러 번 석사학위의 효용을 따졌다. 이 나이에 졸업장을 받아 뭐에 쓰겠냐는 것이었다. 나는 어느 길에 발을 들이기 전에 그 길의 끝을 확인하는 버릇이 있다. 그 길을 걸어간 선배들이 무엇을 얻었는지 알아보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손에 쥔 건 그들의 몫이어서, 내 것이 될 수도 있고 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한편으로 가성비를 따지는 기질도 작동했다. 등록금과 책값을 저울질한 것이다. 이 돈이면 책 수십 권을 살 수 있겠다고 계산기를 두드렸다.

하지만 내 방에는 30대 시절 미완의 도전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노무사, 회계사 등 각종 자격증과 토플, 토익 등 영어 수험서들이 책장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 책들을 볼 때마다 나는 빚쟁이의 심정이 되어 후회한다. 혼자서 붙들 일이 아니었다고, 같은 길을 걷는 이들 곁으로 갔어야 했다고.

이번만큼은 계산 대신 마음을 따르기로 했다. 먼 길을 가려면 혼자보다 함께 가는 편이 낫다는 사실을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미국 미네소타대의 컴컴한 연구실에서 낮에는 식은 도시락을 까먹고, 저녁에는 햄버거를 먹을 때마다 그는 다 늦게 무슨 짓인가, 후회도 했단다. 왜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겠는가. 마흔셋 나이는 20대와 경쟁하기엔 너무 연로했다고도 고백한다. 하지만 석사과정이라는 트랙에 올랐고, 다소 버겁지만 경쟁자이자 동료인 학생들이 있었기에 결국 완주할 수 있지 않았을까.


이렇게 고생한 끝에 그는 석사 학위증을 손에 쥘 수 있었다. 하지만 학위증 자체에는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그의 문장을 옮겨 적으면 이렇다.


"그 잘난 석사 학위? 그것은 종이 한 장으로 남았을 뿐, 그보다 더 큰 것은 따로 있다. 첫 학기 첫 시험 때 시간이 모자라 답안을 완성하지 못한 뒤 연구실 구석으로 돌아와 억울함에 겨워 찔끔 흘렸던 눈물이 그것이다. 중학생이나 흘릴 법한 눈물을 나이 마흔셋에 흘렸던 것은 내가 비록 뒤늦게 선택한 길이었지만 그만큼 절실하게 매달려 있었다는 반증이었기에 내게는 소중하게 남아있는 기억이다."


사실 면접에 임하는 자세는 그 어느 때보다 절실했다. 뒤늦게나마 공부하고 싶은 분야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 무렵 무언가에 홀린 듯이 책을 사기 시작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책의 저자들은 조직심리나 조직행동, 인사관리 전공자였다. 마침 경영학의 세부 전공에 조직인사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점들이 갑자기 선으로 이어지는 기분이었다.

그런 절실한 마음이 면접장에서도 묻어났던 걸까. 얼마 후 합격 통보를 받았다. 그날 교수님이 검증하려고 했던 영어와 연구방법론은 여전히 버겁다. 그래도 논문 한 편 한 편을 읽을 때 마음을 다한다. 이번에는 끝까지 가보려고 한다. 다시는 미완으로 남기지 않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