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대학원 (3)
유독 '세미나'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오랜만에 수강 신청을 하고 보니 과목명에는 '세미나'가 마트의 원플러스원 상품처럼 붙어 있었다. 이를테면 학부에선 조직행위론으로 단품처럼 진열되어 있던 것이 대학원에선 묶음 상품처럼 조직행위 + 세미나로 변모해 있던 것이다.
'세미나'라는 말이 아주 낯설진 않았다. 내가 일하는 연구원의 원내 게시판에서 유명 대학 교수 초청 세미나를 알리는 공지를 여러 번 본 적이 있어서다. 왠지 학구적이고 우아한 분위기를 한껏 풍기는 '세미나'의 초대장을 이제야 받은 것 같아서, 나도 모르게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하지만 그땐 몰랐다. 내 앞에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는 줄.
사무실 하얀 냉장고 위 시계 바늘이 6시에 멈춰 섰다.
주위를 한번 둘러보고 노트와 펜, 태블릿과 충전기를 가방 속으로 조심스레 밀어 넣었다. 이제 컴퓨터 전원을 끄고 퇴장하면 되는데, 괜히 할 일이 남아 있는 것처럼 마우스를 딸깍거렸다. 의미 없는 스크롤바를 시시포스처럼 내렸다 올렸다 반복하기를 수 분째, 드디어 6시 10분이 되었다.
속으로 '이만하면 됐다'고 중얼거리고, 이 세상 모든 속박을 벗어 던지고 행복을 찾아 떠나는 가영이처럼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사무실을 나섰다. 아침보다 한 옥타브 높은 톤으로 인사를 남기고. "안녕히 계세요." 차마 '여러분'은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지만.
강의실에는 먼저 도착한 몇몇 분이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구면인 듯 했다. 나는 가볍게 목례만 하고 자리에 앉았다. 곧이어 교수님이 강의실에 들어왔다. 그는 이런 상황이 익숙한 듯 높은 톤으로 인사를 하고 미리 준비한 강의계획서를 나눠줬다. 금세 강의실이 조용해졌다. 강의계획서에는 강의명과 시간, 강의 목표와 평가 방법 등이 적혀 있었다.
교수님이 고심하여 만들었을 게 틀림없는 계획서의 4쪽에는 매주 해야 할 일이 상세히 쓰여 있었다. 첫째 주는 과제가 없었다.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둘째 주에는 연구 주제를 한두 쪽으로 작성하면 되었다. 괜히 근엄한 척 미간을 모았다. 셋째 주에는 연구 주제와 관련된 3개의 논문을 요약해야 했다. 넷째 주에는 3개의 논문을 15개로 늘려야 했다. 어어 하는 사이 무언가 잘못 되고 있다는 느낌이 뒤통수를 때렸다.
그때 교수님의 말이 고막을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이 수업의 최종 목표는 자신만의 논문을 완성하는 것이고, 그걸 기말 과제로 제출하시면 됩니다."
기말 과제가 논문 완성이라는 한마디에 강의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매주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과제 목록은 시시포스가 밀어 올리던 바위보다 커 보였다. 회사에서 탈출했다는 해방감을 만끽하기도 전에 저녁으로 요기한 빵이 체기가 되어 가슴에 턱 걸렸다.
몇 해 전에 MBA 과정에 다닌 적이 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학업을 지속하진 못했다. 아직까지 기억에 남은 건 부채꼴 모양의 계단식 강의실과 강의 방식이다.
교수님은 고대 그리스 노천극장의 무대와 같은 강단에 서서 강의를 이끌었다. MBA 과정답게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하는 강의 대신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질문과 토론이 이어졌다. 누군가 의견을 말할 때, 그 학생을 향해 가볍게 얼굴을 돌리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고대 그리스 노천극장 형태의 강의실은 학생 간 상호 작용을 극대화하기 위해 설계된 것이라고 한다.
학생을 평가하는 방식은 학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객관식과 주관식 시험을 치렀다. 한 학기 동안 배운 것을 제대로 이해하고 기억하는지 확인한 것이다.
이에 반해 일반대학원 경영학 강의 방향은 다르다. MBA 과정처럼 토론이 활발히 이뤄지지만, 사례 연구보다 논문에 방점이 찍혀 있기 때문이다. 제아무리 영어로 된 논문을 속독하고 그 논문의 한계점을 날카롭게 비판하고 통계 분석에 익숙하더라도 논문을 잘 쓰지 못하면 말짱 도루묵이다.
결국에 대학원 과정은 독자적으로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연구자를 양성하는 게 목적이어서다. 단순히 지식을 습득하는 것을 넘어 새로운 지식을 생산해야 하는 것이다. 논문이라는 형태로.
내 이름 석 자를 단 무언가를 만드는 건 분명 가슴 뛰는 일이다. 오랫동안 수많은 문서를 생산하면서도 이름 없는 행정직으로 살았기 때문이다. 그만큼 내 콘텐츠 생산에 대한 갈증이 컸다. 그러면서도 덜컥 겁이 났다. 논문을 읽고 분석하는 일도 벅찬데, 그런 논문을 내가 쓸 수 있을까.
국어 사전에는 세미나를 '대학에서, 교수의 지도 아래 특정한 주제에 대해 학생이 모여서 연구 발표나 토론을 통해서 공동으로 연구하는 교육 방법. 상호 간의 토론을 통해 의문점을 깊이 있게 추구함으로써 연구자로서의 자질을 향상시키는 데에 목적이 있다'고 쓰여 있다.
사전적 정의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진행될 강의를 그려 보니 걱정이 앞섰다. 과연 내가 세미나를 통해 연구자로서의 자질을 향상시킬 수 있을까. 나아가 연구자가 될 수 있을까. 한편으로 한 학기 동안 하다 보면 뭐라도 되겠지, 라는 깡패 같은 심정도 들었다. 어쩌면 모든 출발은 이렇게 덜컥거리면서 시동을 거는 건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