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때부터였을 것이다. 정초가 되면 새하얗고 빳빳한 종이에 새해 목표를 적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건만 나는 해마다 연필로 목표를 꾹꾹 눌러썼다. 주로 학교 성적이나 영어 단어 암기량, 독서량 따위를 그해 목표로 적었다. 그리고 맨 아래에 자못 거창한, 사극에나 나올 법한 문장을 썼다.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사람이 되자.
지금 보면 얼굴이 화끈거려 두 손으로 가리고 싶지만, 500년 역사를 고스란히 기록한 조선왕조실록의 후예답게 당시 날짜를 적고 서명까지 한 터라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내가 쓴 게 아니라고 모르쇠로 잡아뗄 수도 없다.
굳이 핑계를 대자면 이 말은 내가 지은 게 아니다. 당시 조기 유학 열풍을 일으킨 홍정욱의 <7막 7장>에 나오는 문장이다. 앳된 열여섯 살의 홍정욱은 부모를 설득하여 도미했다. 그는 존 F. 케네디를 동경하여, 그의 모교인 초우트 로즈메리 홀 고등학교에 입학했는데, 스스로 역사의 한 획을 긋는 인물이 되자고 다짐했다. 그 다짐은 현실이 되었다. 그는 하버드대를 수석으로 졸업했고, 베스트셀러 저자가 되었다. 그렇다. 역사에 한 획을 긋자는 말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이처럼 훌륭한 인물에게 어울리는 말인 것이다.
하지만 그 다짐이 홍정욱을 하버드대로 이끌었을지 몰라도 내게는 독이 되었다. 나는 홍정욱과 전혀 다른 유형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목표 지향형이라면 나는 과업 축적형이라고 할까.
잠깐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하자면 이렇다. 나는 벼락치기형 인간이었다. 시험이 임박해야 공부를 시작했다. 깊어 가는 밤마다 하루만 더 있었더라면, 아니 반나절, 한 시간만 더 있었더라면, 하고 자책했다. 애초에 나는 목표를 정하고 전략을 짜고 실행하는 유형이 아니었다. 그저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듯 눈앞의 일을 하나씩 헤쳐 나가는 쪽이었던 것이다.
그래도 깊은 사고를 요하지 않는 시험이어서 그랬던 건지, 암기를 꽤나 잘했던 건지 성적은 신통했다. 그렇게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놀라운 말을 듣게 됐다. 내가 서울대 수시 모집에 지원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학교 전체 석차 상위 몇 프로 이내에 든 학생에게만 원서를 쓸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다.
한번은 고교 시절 옆자리 친구가 물었다. 너는 어느 학교를 목표로 하느냐고. 그때 나는 시큰둥하게 답했다. 대전을 벗어나기만 하면 좋겠다고. 지금이야 성심당 덕분에 무려 '관광객'이 찾는 도시가 되었지만, 오래전 대전은 어린 아이 눈으로 보기에도 노잼 도시였다. 사실 아직도 대전과 관광객이 한 문장에 들어간 뉴스를 보면, 마치 토익 파트 5의 오답과 같이 알레르기 반응부터 나온다. 당시 내 답을 들은 친구는 묘한 당혹감을 드러냈다. 그리고 되물었다. 왜 스카이를 목표로 삼지 않느냐고. 나는 태연히 답했다. 서울에 있는 대학만 갔으면 좋겠다고.
그랬다.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홍정욱의 말을 금과옥조로 여겼지만 목표 지향형보다 과업 축적형에 가까웠다. 서울대든 연대든 고대든 어느 대학교를 목표로 정한 적이 없었다. 당연히 서울대 지원 자격이 주어진 건 내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그저 나는 매 학기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치르는 데 집중했을 뿐이지, 먼 목적지를 정해 두지 않아서다. 다시 말해 앞만 보고 산에 오르다 뒤돌아보니, 산 아래 멋진 원경이 펼쳐져 있는 꼴이었다.
그랬던 내가 원대한 목표를 세우자 불행이 따라왔다. 소설가 김중혁의 책 제목처럼 '뭐라도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살던 애가 갑자기 무엇이 되고자 한 것이다. 대학 졸업 학기에 나는 방송국 프로듀서를 목표로 언론고시반에 들어갔다. 하지만 프로듀서가 되기에는 여러모로 모자랐다. 애초 프로듀서에 어울리는 삶을 살지 않았기 때문이다.
과업 축적형 인간에게 목표는 거산과 같았다. 목표와 현재의 간극은 컸다. 실력은 단숨에 늘지 않았다. 고개를 들어 목표를 보고, 다시 고개를 숙여 현재 위치를 확인하는 날이 거듭될수록 실력 대신 한숨만 늘어갔다. 한동안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언론고시반 대신 포장마차를 찾기도 했다.
실력은 지수함수형으로 향상된다. 처음에는 변화가 거의 없어 보이다가 임계점을 넘는 순간 폭발적으로 상승하기 마련이다. 당시의 나는 조바심을 냈고 스스로를 달달 볶느라 임계점에 도달할 때까지 인내하기는커녕 제풀에 지쳐 나가떨어졌다. 20대 중반에 시작된 목표 지향형 인간으로의 전환은 30대 내내 이어졌다.
지난달 대학원 지도 교수님으로부터 논문을 SSCI 저널에 투고해 보자는 말을 들었다. 지난 학기 수업 시간에 논문을 썼다. 논문이라는 건 기사나 보도자료, 에세이와 전연 달랐다. 처음 쓰다 보니 완성에 초점을 뒀다. 매주 교수님이 내준 과제를 따라가기 벅찼다. 학기말로 갈수록 점점 논문의 모양새를 갖춰 갔다. 기말 과제로 제출하고도 겨울방학 동안 계속 수정했다. 지도 교수님의 세심한 지도 아래 변수와 논리를 더했다. 그러다 교수님으로부터 국내 저널이 아닌, 해외 저널에 내보자는 제안을 받은 것이다.
만일 처음부터 SSCI 저널을 목표로 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압박감에 짓눌려 완성조차 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물론 나는 아직 초보 연구자이고, 첫 논문이며, 투고 결과도 나오지 않았다. 세상에는 무언가를 성취하는 데 한 길만 있는 게 아니다. 그저 오늘의 일을 해나가다 보면 어딘가에 가 있는 사람도 있다. 더는 목표를 세우고 스스로를 달달 볶는 일을 하지 않으련다. 이제는 그 방식이 내게 맞지 않는다는 걸 알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