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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은 브런치에, 글 값은 책에서?

브런치 작가 보상제도의 민낯

by 김민호

언젠가 브런치 댓글에서 구독자가 나를 작가라 부른 적이 있다. '작가님'으로 시작하는 문장에 적이 당황했다. 황망하여 어딘가 도망쳐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고결하면서도 달콤한, 언젠가 갖고 싶은 이름이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작가라는 말이 주는 무게를 견디기엔 나는 한참 모자랐다. 하지만 브런치 공간에서 나는 엄연한 작가다. 브런치가 나를 작가라고 호명했기 때문이다.


브런치는 소정의 심사를 거쳐 작가를 선정한다. 소수에게만 글을 쓸 수 있는 문을 열어준다.(사실 소수는 아니다. 지금까지 2만여 명에게 작가 타이틀을 선사했다. 예비작가쯤으로 보는 게 맞다.) 이는 사전에 기준 미달의 글을 걸러내겠다는 심산이다. 수준 이하의 글이 브런치에 얼씬거리는 꼴을 못 보겠다는 것이다.


게다가 광고성 글은 엄격히 금지된다. 신고제도도 두고 있다. 순수하게 글에 목마른 이들만 오라는 것이다. 글쓰기를 갈망하면서 직업이 있거나, 돈에 무관심한 이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공간이다. 이게 브런치의 영업전략이다.


글 값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글쓰기는 노동이다. 노동에는 합당한 대가가 지급되어야 한다. 대가 없는 노동은 착취이며, 꿈을 미끼로 열정 페이를 강요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글 값은 당연한 것이다. 물론 브런치가 좋은 글을 생산하라고 채근만 하는 건 아니다. 글 값을 주진 않지만 예비작가들에게 기회를 제공한다. 자신의 이름이 박힌 책을 내는 진짜 작가가 될 수 있는 기회 말이다.


올해로 4회째를 맞은 브런치북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브런치가 출판사와 함께 여는 출간 공모전이다. 브런치는 수상자에게 책 출간 기회와 지원금을 지급한다. 브런치가 여는 신춘문예로, 첫 번째 브런치 심사를 통과한 예비 작가들을 대상으로 한 '진짜 작가 되기' 대회인 셈이다. 지금까지 4회에 걸쳐 총 146명의 신인 작가를 선정했으며, 3회 대회까지 33명이 실제로 책을 냈다.



브런치북 프로젝트에서 떨어졌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브런치는 1인 1책 출판 프로젝트도 지원하고 있다. 매거진에 30편 이상의 글을 발행한 작가가 스스로 책을 내는 방식이다. 책 구매 주문이 들어오면, 디지털 인쇄기로 책을 제작해 배송한다. 단 1권의 주문을 받아도 출판이 가능하다. 일종의 패자부활전인 셈이다. 치열한 경쟁에서 낙오한 예비작가들에게 스스로를 구원하라는 메시지이다.


브런치북 프로젝트와 1인 1책 프로젝트의 한계


한국 사회에선 책을 내면 작가다. 신문사나 출판사가 주최하는 신춘문예에 등단해 책을 내거나, 자신이 쓴 소설이나 에세이를 직접 출판하면 작가가 된다. 브런치가 마련한 두 프로젝트도 기존의 작가 되는 방법과 크게 다르지 않다. 브런치가 이 땅의 수많은 문학청년, 예비작가들의 꿈을 실현해주는 도우미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하지만, 여기서 짚어볼 게 있다.


먼저, 여전히 브런치는 작가들에게 정당한 글 값을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브런치를 비롯한 블로그 플랫폼은 콘텐츠 없이 존재할 수 없다. 블로그는 지속적으로 양질의 콘텐츠가 공급되어야 존재할 수 있는 구조다. 블로거에게 꾸준히 콘텐츠를 생산하라고 독려하는 이유다. 브런치도 좋은 글 없이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없다. 좋은 글은 작가가 쓴다. 글을 쓰기 위해선 동기부여가 필요하다. 글 쓰는 즐거움이나 내 글이 타인에게 기쁨이나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도 힘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정당한 대가가 주어지지 않는 생산-소비 구조에서는 지속 가능한 성장을 기대할 수 없다. 소문난 맛집에 갔는데, 막상 먹을 만한 게 없으면 어떻겠는가. 손님 발길이 끊기고, 결국에는 존폐위기에 놓일 것이다. 브런치에 읽을 만한 글이 없으면 어떻겠는가. 다수의 독자들은 브런치를 떠날 것이다.


둘째로 우리나라 출판시장이 암울하다는 것이다.


출판 위기는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초판 1쇄 5,000권은 옛말이 됐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2,000권으로 줄었고, 요즈음에는 1,000권을 찍는 일도 허다하다. 그마저도 초판 1쇄가 모두 팔리지도 않는 실정이다. (출처:영상매체에 밀린 종이책, 우연히 만나는 책의 즐거움을 찾아라/서울신문)


소설가나 시인으로 등단한 작가들도 사정은 낫지 않다. 시집이나 소설을 돈 주고 사보지 않는 시대다. 등단한 작가가 어느 정도 구입해줘야 책을 출판할 수 있다. 이마저도 어려우면 등단 작가끼리 십시일반으로 도와서 출판을 하는 형편이다.


생산-소비-보상의 선순환 생태계 마련돼야


결과적으로 브런치는 예비작가들이 독자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줬지만, 이는 한계가 명확한 미봉책이다. 글 값 지급이란 궁극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고, 출판시장이 어려운 데다 신인 작가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탓이다.


브런치는 온라인에서 좋은 글이 생산되고 소비되는 플랫폼이다. 이 플랫폼이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작가와 독자의 교류가 활발히 이루어지길 바란다. 이를 위해 '글이 작품이 되는 공간'은 전통적 미디어인 '책'이 아닌, '브런치' 플랫폼이어야 한다. 글은 브런치에서 생산하고, 그에 대한 보상은 출판시장에서 받아가라는 식은 안 된다. 브런치 생태계 안에서 생산-소비-보상의 선순환 고리가 이뤄져야 한다.


회원(membership)이든 구독(subscribe) 방식이든 간에 작가에 대한 정당한 보상은 미디엄의 에반 윌리엄스도 고민했던 일이다. 콘텐츠 소비에 대한 대가 지불이라는 '유료화'로 확장하면, 뉴욕타임스도 가디언도 피해갈 수 없는 난제였다. 브런치도 이 장벽을 지혜롭게 넘어야 한다. 비로소 건강한 생산-소비-보상의 생태계를 구축하고, 진정으로 베타 딱지를 떼어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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