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 콘텐츠 <나는 간호사다>제작기

by 김민호

줄리아 로버츠와 휴 그랜트의 전성기 시절을 엿볼 수 있는 <노팅힐>이란 영화가 있다. 극 중에서 주인공 윌리엄 태커(휴 그랜트 분)가 사는 파란 대문의 집이 영국 취재진들에게 둘러싸이는 일이 벌어진다. 포토벨로 마켓에서 소규모 여행 서점을 운영하는 윌리엄 태커가 하룻밤 사이 화제의 인물이 된 것이다. 이유인즉슨, 안나 스콧(줄리아 로버츠 분)이 무명 시절 찍은 누드사진 스캔들을 피해 윌리엄 태커 집에서 신세를 졌는데, 룸메이트 스파이크(리스 아이판스 분)가 노팅힐에 소문을 낸 탓에 기자들이 몰려온 것이다.


영화 <노팅힐>의 시간적 배경이 21세기였다면 어땠을까? 윌리엄 태커와 안나 스콧의 스캔들은 SNS에서 급속히 퍼졌을 게 분명하다.


<노팅힐>은 1999년 개봉한 영화다. 1999년은 어떤 해였는가. 그해 7월 내 생애 첫 이메일 계정을 만든 드림위즈가 출범했고, 야후, 다음, 네이버, 라이코스, 엠파스 등이 잇따라 등장한 포털사이트 여명기였다. 그해 8월에는 삼성이 최초로 전화기능과 MP3플레이어를 합친 MP3폰을 시장에 내놓았다. 당시만 해도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어 바로 SNS에 올리고, 실시간으로 맛집을 검색할 줄 누가 상상했겠는가.


만일 <노팅힐> 윌리엄 태커가 2017년에 살았다면, 파란 대문 집 앞에 기자들이 진을 치기도 전에 SNS로 스캔들이 퍼졌을 것이다. LTE급 속도로 말이다. 이처럼 SNS는 보통 사람을 하룻밤 사이 깜짝 스타로 만들 수 있는 힘이 있다. 팝아트 거장 앤디 워홀도 말하지 않았는가. "미래에는 누구나 15분 안에 유명해질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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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디 워홀은 이런 말도 남겼다. “유명해지거나 유명하게 만드는 것은 둘 다 재미있는 일이야” 홍보인의 바람은 후자에 속한다. 자신이 맡은 기업이나 기관을 유명하게 만드는 일, 세간의 이목을 끌게 하는 일이 홍보하는 이유다. 2017년을 살아가는 홍보인은 SNS로 누군가를 유명하게 만드는 일에 몰두한다.




몇 해 전 병원 홍보팀에서 일할 때, 페이스북 페이지를 개설했다. 첫 한 달 동안 페이지 좋아요 수가 100에 불과했다. 이마저도 내 지인은 물론이고, 후배 지인의 지인까지 남기지 않고 긁어모은 결과였다. 당시 유행하는 카드뉴스를 만들고, 미국에서 공전의 히트를 친 <휴먼스 오브 뉴욕>을 벤치마킹했지만, 페이지 좋아요 수는 답보상태였다. 뾰족한 수가 없어 전전긍긍하던 때, 우연히 올린 간호사 관련 콘텐츠가 큰 호응을 얻었다. 먹구름 사이로 한 줄기 구원의 빛이 내리쬐는 순간이었다.


어쩌면 간호사가 답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매스미디어에서 간호사는 주목받지 못한 직업이다. 의학 드라마는 의사의 독무대나 다름없다. 본격 의학정치 드라마의 장을 연 <하얀거탑>은 야망을 가진 의사들의 끝없는 질주와 종말을 다뤘고, <낭만닥터 김사부>는 지방 병원을 배경으로 진짜 의사가 무엇인지를 그렸다. 이들 드라마 주인공은 의사였고, 간호사는 보조 인물에 그쳤다. 의사를 도와 다양한 업무를 수행하거나, 극의 재미를 더하는 감초 역할이었다.


간호사 콘텐츠는 가지 않은 길은 블루오션이거나, 가봐야 레드오션보다 못한 길이다. 일반적으로 후자일 확률이 높다. 누구도 가지 않았으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나는 간호사 콘텐츠가 전자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졌다. 우선, 병원 홍보팀만이 할 수 있는 콘텐츠다. 우리만의 콘텐츠이자, 우리만 만들 수 있는 콘텐츠인 것이다. 둘째, 타깃 지향형 콘텐츠이다. SNS 주 이용자는 10~20대 여성이다. SNS를 하는 간호사나 간호사가 되고 싶은 학생은 대부분 10~20대다. 콘텐츠 제작의 출발인 타깃 전략에도 맞아떨어진 셈이다.


그렇다면 간호사로 무슨 콘텐츠를 만들 수 있을까. 내가 주목한 건 간호사라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한 줄로 정리하면 본격 신입 간호사 성장기. 머릿속에 웹드라마와 웹툰이 떠올랐다. 두 콘텐츠 형식이 모바일에 적합했지만, 웹드라마나 웹툰을 만들 여건이 되지 않았다. 웹드라마는 연기자 섭외부터 난관이었다. 웹툰은 웹드라마만큼 사실감이 살지 않을 거 같았다. 그때 떠오른 게 포토툰이었다. 일명 포토와 웹툰의 컬래버레이션인 포토툰은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그릇이면서, 웹드라마의 현장감도 살릴 수 있었다.


무엇을 만들지 정했으니, 다음은 배우를 섭외하는 일이었다. 이야기 주인공처럼 병동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를 물색했다. 마침 병원 아나운서로 활약하는 간호사가 눈에 들어왔다. 평소 카메라 앞에 서는 일에 익숙했던 그는 흔쾌히 출연을 승낙했다. 게다가 병동 수간호사님도 제작 지원을 약속해줬다.

간호사를 배우로 섭외한 건 여러모로 도움이 됐다. 스스로 주인공이자, 취재원이 되어줬기 때문이다. 전문가를 그린 이야기는 취재가 리얼리티의 성패를 가른다. 외부자는 알 수 없는, 그 세계에 속한 종사자만이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그를 통해 간호사만의 고충이나 조직문화를 알 수 있었다. 내부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미묘한 감정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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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간호사다> 첫편에 대한 반응은 뜨거웠다. 총 도달수만 18만을 넘었다. 페이지 좋아요 수가 100에 불과했던 것을 감안하면 입소문의 힘으로밖에 설명할 도리가 없었다.


2014년 6월 13일 금요일. 그리 길지 않은 준비 끝에 <나는 간호사다> 첫 편을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렸다. 밤사이 스마트폰 알림창이 계속 울려 화들짝 놀랐다. 밤사이 게시물 좋아요 수가 100을 훌쩍 넘었다. 페이지 좋아요 수가 100에 불과했던 터라, 게시물 좋아요 수가 100을 넘긴 건 이례적인 일이었다. 한 번 불붙은 좋아요 수는 멈출 줄 몰랐다. 폭주기관차처럼 질주한 좋아요 수는 월요일에 3,000을 넘겼고, 첫 편의 게시물 도달수만 18만을 넘겼다. 콘텐츠와 SNS의 힘을 실감한 순간이었다.


콘텐츠가 성공하면서 덩달아 출연한 간호사도 SNS에서 나름 유명인사가 됐다. 연락이 끊겼던 학창 시절 동창에게서 연락이 왔고, 다음 해 새로 입사한 후배가 페이스북에서 봤다고 알은체를 했다고 한다. <나는 간호사다>는 세 달에 걸쳐 총 14회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게시물 총 도달수는 90만에 달했고, 그 덕분에 100 언저리였던 페이지 좋아요 수도 3,000을 돌파했다. 타깃의 공감을 얻은 콘텐츠가 가진 파급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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