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홍보 vs 디지털홍보

by 김민호

아버지 아침 습관은 갤럭시 노트로 기사 보기다. 액정크기가 내 아이폰에 두배 가까이 된다. 글자가 작아서 안 보이신다며 아이폰에서 갈아타신 게 몇 해 전이다. 노안이 오는 바람에 돋보기를 쓴 게 그즈음이었다. 아버지가 즐겨보는 포털은 네이버다. 소파에 걸터앉으신 채, 출근시간이 다 되어 일어나는 막내아들에게 오늘의 뉴스를 전해주신다. 오늘 아침 박근혜가 검찰에 나간다더라.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말고 검찰을 믿고 기다려보자는 의견도 덧붙이신다. 신문에서 스마트폰으로, 조선일보에서 네이버로 옮겨왔을 뿐, 아버지 아침은 직장을 다니실 때나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람들에 대한 언론의 영향력은 여전히 유효하다.


사람들은 언론을 통해 세상을 바라본다. 언론사 데스크는 하루 동안 대한민국을 비롯해 전 세계에서 일어난 뉴스를 선별하고,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 점수를 매기며, 그 의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틀을 짓는다. 이게 게이트키핑이고, 의제설정이며, 프레이밍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생산된 뉴스가 독자들과 만나 여론이 형성된다. 언론사의 힘이 여기서 나오는 것이다. 물론 여론은 미디어에서 수용자로, 일방향으로만 형성되지 않는다. 기사에 댓글을 다는 누리꾼이나 광장으로 나오는 시민들의 행동에 의해 여론이 달라지기도 한다. 다만, 이 글에서는 미디어의 영향력을 설명하기 위해 복잡한 현실세계를 단순하게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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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만 해도 언론홍보가 기업이나 기관 홍보의 전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언론홍보 비중은 아직도 크다. 이렇게 기자에 올인하는 홍보는 언론사의 강력한 힘과 독점적 지위 때문이다. 이러한 힘은 독자와 시청자에게서 나온다. 사람들이 소위 메이저 신문이나 지상파라고 부르는 방송뉴스를 보는 덕에 그들의 높은 지위는 땅으로 떨어질 줄 모르는 것이다. 기업을 알리고, 기업에 유리한 이슈를 조성해야 하는 홍보쟁이들이 사회면 1단 기사에도 밥값은 했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지상파 9시 뉴스에 소개되면 환호하는 이유다.


그러나 신문과 방송이 천하를 통일했던, 평화로운 시대는 오래가지 못했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신문방송 통일왕조시대에 균열을 일으킨 건 트위터와 페이스북이었다. 인스타그램, 핀터레스트, 카카오페이지 등이 잇달아 등장했고, 유튜브는 영상분야 세력을 규합했다. 눈을 뜨면 새로운 강자가 출현하는 춘추전국시대가 도래한 셈이다. 오로지 한 주군만 섬기면, 만사가 형통했던 홍보쟁이들에게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상황이었다.


2000년대 중반부터 벌어진 일련의 소셜미디어 출현으로 기업 홍보부서와 홍보대행사도 출렁였다. 온라인 홍보, 소셜미디어 홍보, 디지털 홍보라는 처음 듣는 말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더니, 조직개편이 단행됐다. 홍보팀을 커뮤니케이션실로 승격하고, 언론홍보와 별도로 디지털홍보 파트를 신설했다. 물론 새로운 패러다임의 출현에 시차와 온도차가 있게 마련이다. 여전히 1990년대에 살고 있는, ‘응답하라’ 홍보팀이 있는가 하면, 2010년대에 살면서, 변화를 이끄는 홍보팀도 있는 것이다. 분명한 건 소셜미디어가 기업이나 기관 홍보부서에 기회라는 점이다. 신문사나 방송사를 거치지 않고도, 직접 고객에게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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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향수에 빠져있는 홍보팀이라도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계정 하나쯤은 갖고 있다. 그렇다고 모두 고객들에게 인기를 끌고 공감을 이끌어내는 건 아니다. 성공하는 디지털 홍보는 소수에 불과하다. 시청자에게 사랑받는 종합편성 채널이 몇 안 되는 것처럼 말이다. 고양이 캐릭터를 내세워 전 국민의 고양시로 거듭난 경기도 고양시청과 소셜미디어를 활용한 이벤트로 한물 간 민속촌을 핫한 테마파크의 반열에 올려놓은 한국민속촌이 성공사례로 알려져 있다. 일명 언론 천하에서 인적 네트워크가 중요했다면, 소셜 춘추전국시대에선 콘텐츠 기획과 제작능력이 주목받고 있다. 다시 말해, 소셜미디어라는 빈집을 무엇으로 채우는지가 관건인 셈이다.


춘추전국시대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바로 인재영입이다. 유비는 몸을 낮춰 삼고초려한 끝에 제갈량을 얻었고, 진시황은 한비자를 영입해 천하통일의 기초를 닦았다. 최근 홍보분야에서는 콘텐츠 기획과 제작능력을 갖춘 인재가 점점 각광받고 있다. 이들의 역량 발휘에 따라 디지털 홍보의 성패가 갈리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콘텐츠를 기획하고 제작하는 일은 기존 방송사 피디 역할과도 닮았다. 몇몇 스타 피디가 방송사를 먹여 살리듯이 홍보에서도 이들의 비중이 커질 것이다.


대학 졸업반 시절, 동기들이 그토록 피디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를 동경했던 건 겉보기에 화려한 삶 때문만은 아니었을 게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만들 수 있어 좋고,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좋아해 주는 게 좋았다. 일 자체가 놀이가 되고, 자신이 만든 놀이터에 놀러 온 사람들이 함께 노는 세상, 그것이 TV고 광고였다. 이제 디지털 홍보 시대다. 앞으로 홍보쟁이가 디지털 공간에 새 놀이터를 만들어 갈 것이다. 대학생들이 홍보쟁이를 동경하는 직업으로 꼽는 날이 올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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