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X라이터로 살아남기 컨퍼런스 후기
UX라이터는 다른 직업에 비해 생소하고 또 소수이다. 소수라는 말은 경쟁력 있는 것처럼 들릴 수 있다. 하지만 다르게 보면, 매일 새로운 환경에서 자기 역할을 정의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끊임없이 생존을 고민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UX라이터로 살아남기'라는 컨퍼런스의 이름은 나를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대학원 때도 링크드인으로 틈틈이 보곤 했는데, UX라이터라는 명함을 달자마자 신청해서 다녀왔다. AI 시대에 걸맞게, 이번 컨퍼런스에도 AI 관련된 세션이 준비되어 있었다.
오늘의집에서 유일한 UX라이터로 일하고 있는 김은진 님의 발표는 단순히 AI를 UX라이팅에 접목시키는 것을 넘어 AI 시대에 UX라이터는 어떤 역할을 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더욱 흥미로웠다. 여느 UX라이터가 그렇듯 은진님도 처음에는 브랜드 보이스를 정립하고, 내부 가이드를 만드는 일이 중심이었지만, 혼자서 모든 제품의 톤을 관리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가이드를 아무리 잘 만들어도 실무자들은 그걸 하나하나 뜯어볼 여유가 없었다. 그 틈을 AI가 메워주기를 바랐고, 그렇게 GPT 기반의 라이팅 봇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과연 팀원들이 쓸까?’ 하는 의심도 있었지만, 오히려 직접 문장을 만들어주는 방식으로 효용을 체감하게 해 주었고, 이내 ‘1인 팀’이 아니라 ‘7개의 라이팅 봇과 일하는 팀’으로 구조가 바뀌었다. 브랜드 언어의 일관성을 확보하는 수단이자, 동료들과의 협업 언어를 정리하는 도구로 AI를 받아들인 것이다.
이 과정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말은, 'AI는 가이드를 더 잘 쓰게 하려는 도구'라는 표현이었다. 이런 점에서 AI의 등장을 통해 단순히 문장을 고치는 UX라이터의 역할은 이제 페이즈 1로 묻어두고, 이제는 브랜드의 언어를 만들고, 제품의 흐름 속에서 언어적 판단을 내려야 하며, 때로는 AI를 학습시키는 구조 설계자 역할까지 감당해야 하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회사의 유일한 UX라이터라는 점에서 나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 큰 조직 안에서 단 한 명의 UX라이터로 일하다 보면, 화면 하나하나를 붙잡고 일일이 조율하기엔 물리적 한계가 명확하다. 그 한계는 곧 병목이 되고, 결국 서비스의 일관성과 품질에 영향을 준다. 금융이라는 규제 산업 특성상 다양한 AI를 자유롭게 쓸 수는 없지만, 그건 회사의 상황일 뿐 나의 핑계가 될 수는 없다. 그래서 같은 프롬프트를 여러 AI 툴에 넣어보고 결괏값을 비교하고, 내가 직접 리라이팅 했던 사례들을 정리해 보며 작은 실험들을 지속하고 있다.
AI가 처음 나왔을 때만 해도, ‘한국어의 뉘앙스를 정말 알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감이 있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AI는 빠르게 발전했다. 인간이 던진 수많은 프롬프트를 먹고 자라며, 우리가 내부에서 개발하는 속도를 훌쩍 뛰어넘기 시작했다. 이제는 AI를 거부하기보다는, 어떻게 함께 일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쪽이 맞다.
물론, AI가 대체할 수 없는 영역도 분명히 있다. 서비스 전체의 플로우를 이해하고, 비즈니스와 정책을 고려하며, 팀 내 사람들과 맥락을 조율하는 일. 결국 AI를 학습시키기 위해서는, 누군가 그 기준과 방향을 잡아야만 한다. 그게 바로 UX라이터의 역할이라고 믿는다. 그렇기 때문에 도구를 거부하지 않되 휘둘리지 않고, 변화에 흔들리되 무너지지 않고. 브랜드의 기준과 말의 온기를 지키며, 사용자에게 닿을 수 있는 문장을 쓰는 사람으로. ’살아남기’보다는 ‘살아있는 UX라이터’로 남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