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력이 쌓여도 남의 떡은 여전히 커 보인다
대학원 1학기, 첫 직장을 그만두지 않고 다녔다면 승진을 앞둔 시기였다.
함께 입사했던 동기들이 ‘대리’라는 새로운 직함을 달 때, 나는 학생증을 다시 목에 걸었다. 매달 어김없이 들어오던 입금 알림 대신, 대학원 학자금 대출 이자 알림이 핸드폰을 울리던 때였다. 인스타그램을 열면 이직을 하고, 결혼을 하는 주변 친구들의 사진들이 잇따라 올라오곤 했다. 내 손가락은 습관적 ’ 좋아요 ‘를 누르며 세상 쿨한 친구를 연기하고 있었지만, 막상 화면이 꺼지고 검은 화면에 비친 내 표정은 그리 쿨하지 못했다.
내가 회사를 그만두고 대학원으로 들어와 논문과 씨름하고 있을 때, 직장인의 삶을 지킨 그들은 차곡차곡 연차를 쌓아 ‘승진’ 혹은 ‘이직’이라는 확실한 열매를 맺었다. 그들의 성취를 깎아내리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하지만 머리와 마음은 별개였다. 진심으로 축하하는 마음 한편엔, 축축하고 끈적한 감정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나는 쿨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인정해야 했다. 나는 여전히 남의 떡이 더 커 보이는, 지극히 평범하고 불안한 사람이었다.
스스로 선택한 길이였고, 더 멀리 가기 위한 도약의 시간이라 믿었다. 하지만 막상 현실은 도약보다는 오히려 후퇴처럼 느껴졌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의 대화 주제는 자연스레 연애, 결혼, 그리고 재테크로 흘러갔다. 누군가는 오래 만나던 사람과의 결혼을 이야기하고, 누군가는 영끌해서 집을 사기 위한 대출을 알아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대화의 기본 전제는 ‘안정적인 소득이 있는 직장인’이라는 상태였다.
나는 그 가장 기초적인 전제조차 성립되지 않은 상태였다. ‘취업’이라는 0단계도 해결하지 못한 내게, 그 이후에 딸려오는 삶의 과제들은 마치 다른 세상 이야기처럼 아득하게만 느껴졌다. 그 대화 틈에 섞이지 못하고 주변을 맴돌 때면, 겉으로는 웃고 있어도 속으로는 끊임없이 나 자신을 검열했다.
내가 괜한 선택을 한 건 아닐까?
남들은 차곡차곡 인생의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동안, 나만 홀로 이전 단계에 갇혀 제자리걸음을 하는 기분이었다. 그 불안함은 종종 열등감이라는 이름으로 예고 없이 튀어나오곤 했다. 특히 내가 가지지 못한 ‘평범한 소속감’을 가진 동료들을 볼 때면 더더욱 그랬다.
이렇게 마음이 괴로울 때면 습관처럼 ‘왜’를 물었다. 덮어놓고 괴로워하기보다 내 마음도 하나의 현상처럼 분석해 보기로 한 것이다. 나는 왜 저 친구의 소식에 마음이 쓰렸을까. 단순히 그 친구가 미워서? 아니다. 나는 그를 좋아한다. 직장 생활이 부러워서? 그것도 아니었다. 나는 이미 그 길을 떠나왔으니까.
집요하게 ‘왜’를 파고든 끝에 발견한 건, 그 친구에 대한 질투가 아니라 나의 ‘현재 상태’에 대한 불안이었다. 승진은 회사에서 ‘너 잘하고 있어,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이야’라고 말해주는 확실한 인정의 신호다. 반면, 대학원생이었던 나에게는 그런 명확한 피드백이 없었다. 내가 잘 가고 있는 건지, 이 공부가 내 미래에 도움이 되긴 할지 아무도 확답해주지 않았다.
나는 그 친구의 승진이 부러웠던 게 아니라, 그가 가진 확실함과 안정감이 사무치게 부러웠던 것이다. 그제야 인정할 수 있었다. 이 열등감은 못난 마음이 아니라, 지금 내게 결핍된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려주는 신호였다는 사실 말이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나니 묘하게 마음이 편해졌다. 내 마음의 불편함이 어디서 오는지 알았으니, 이제 해결책을 찾으면 그만이었다. 타인의 속도와 비교하며 나를 깎아내리는 대신, 스스로에게 작은 피드백을 자주 주기로 했다. 거창한 논문 통과가 아니더라도, 오늘 읽은 책 한 권, 정리한 글 한 편에 대해 ‘잘했다’고 말해주는 작은 피드백말이다.
물론 나는 여전히 성인군자가 아니다. 앞으로도 멋지게 앞서 나가는 동료들을 보면 또다시 쿨하지 못하게 배가 아플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그 찌질한 마음을 외면하거나 숨기지 않으려 한다. 열등감이 찾아오면 ‘아, 또 내 안에 뭔가 부족하다고 신호를 보내는구나’하고 덤덤히 그 마음을 읽어낼 것이다.
쿨하지 못하면 어떤가. 그건 그만큼 내가 내 삶을, 그리고 성장을 간절히 원하고 있다는 반증이라고 믿는다. 속이 쓰린 만큼 내 안의 열정이 식지 않았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러니 불안함이 밀려와도 괜찮다. 우리는 그 불안을 동력 삼아, 남들보다 조금 느리더라도 내 길을 그리며 나아가고 있는 중일 테니까. 오늘도 타인의 속도에 휩쓸리지 않고, 묵묵히 내 앞의 빈칸을 채워나가는 모든 이들에게 담백한 응원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