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
돌아가고 싶은 순간들이라니. 너무 많아서 셀 수 조차 없을 지경이다.
그땐 그랬다. 돌아가고 싶은 순간들이 너무 많아서 이런 질문들을 하면 서러워졌다. 어차피 돌아가지 못할 걸 아는데 어떻게 상상을 하라는 걸까. 그냥 올 내일을 생각하며 살아야지. 상상 같은 건 하지 말아야지. 자신에게 되뇌곤 했다. 돌아갈 수 있는 과거 같은 건 없고 내일만이 올뿐이라고.
요즘은 조금은 다른 생각을 해본다. 또 하나의 평행 세계를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그때 이 선택을 하게 된다면 그 선택을 했던 지민만의 세계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수많은 지민들의 평행세계.
돌아가고 싶다는 말은 나에게 후회가 있다는 말과 같다 스물넷 짧다면 짧은 인생을 살아왔지만, 삶은 매 순간 후회를 남기고 간다.
가장 큰 후회는
열한 살 그때 울지 않았더라면
그렇다면 무언가 달라졌을까?
이렇게 상상을 하기 시작한 순간 기억하고 싶지 않았던 수많은 것들이 닫혀 있던 기억을 뚫고 쏟아져 나온다.
열셋, 그때 그러지 않았더라면
열다섯, 그때 그러지 않았더라면
애써 숨기고자 했던 기억들은 현재와 가까워질수록 그 형태를 더욱 정교하게 보여주게 된다. 그렇게 쏟아져 나온 기억들 앞에서 나는 자꾸만 서러워진다. 분명 내 기억들인데 숨고만 싶어 진다.
스물, 그때 그러지 않았더라면.
스물하나, 그때 그러지 않았더라면.
이제 나이에 붙는 특정 행동들 따위는 모두 '그때 그러지 않았더라면'으로 통일된다. 애초에 특정 행동들을 묘사한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 괴로운 행위가 되었기 때문인 걸까. 그리고 다시 평행 세계의 지민들을 찾는다. 그때 그 행동들을 하지 않은 지민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열한 살 그때 울지 않은 지민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으며
열셋 그때 그러지 않은 지민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으며
열다섯 그때 그러지 않은 지민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성인이 된 평행 세계의 수많은 지민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그 아이들은 무조건적으로 행복할 거야 지금, 이라는 말은 할 수 없다. 행복할 거야 지금은 이라는 말은 순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때 그 선택들을 하지 않고 다른 선택을 했다고 해서 평행 세계의 그 아이들이 행복할 거라는 보장은 없겠지. 다른 선택에 또 다른 선택들. 수만 가지 다른 선택들을 해도 지금 여기 있는 지민과 같은 삶을 살고 있을 수도. 그렇다면 나의 수많은 상상들은 다 부질없어진다. 그때 그 선택들을 했더라면, 이라는 질문은 의미 없는 질문이 된다. 아까도 말했지만 어차피 그 선택을 했더라도 그 선택이 만든 평행 세계 속 지민이 어떻게 살고 있을는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그럼 다시 다른 상상들을 해본다. 그때 그 선택을 했더라면, 이라는 후회가 아닌 과거의 나를 만날 수 있다면? 이런 질문이야말로 가장 발칙한 상상. 정말 영화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처럼 과거의 나를 만날 수 있다면 너는 언제로 돌아가고 싶어. 새롭게 나타난 질문에 머릿속은 복잡해지기 시작한다. 과거의 나를 만날 수 있다면 말이야.
과거로 갈 수 있는 숫자도 정하는 것도 다 내 마음이니 삼 이라는 숫자를 정해보자. 과거의 나에게 갈 수 있는 횟수는 딱 세 번.
우선 다섯의 지민에게 갈 테다. 내 태초의 기억에게 가는 것이다. 옷걸이가 흔들려 나를 덮치는 것만 같았던 그날로. 그날로 돌아가 나를 안아줄 거다. 그리고 말해주겠지. 나는 너를 지켜주러 온 사람이고, 저 귀신은 옷걸이에 불과하다고. 그렇게 안아줄 거다. 그렇게 되면 내 태초의 기억, 기억의 시작에 선 그 아이는 조금은 괜찮아지려나.
두번째 기회.
열다섯의 지민에게 갈 거다. 매일 아침이 두려웠던 열다섯의 지민에게. 새벽에 찾아갈 거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고 있던 그 아이에게. 그 아이 역시 안아줄 거다. 안아주면서 내 정체를 밝혀야지. 난 서른 살의 너라고. 갑자기 무슨 서른 살이냐고 한다면... 당시 나에게 서른 살은 그 무엇도 할 수 있는 가장 큰 어른 같은 존재였기 때문에. 누군가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더 나아가 세상의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그런 존재가 서른 살이었기 때문에. 물론 열다섯의 나는 가늠하지 못하겠지. 스물넷이 서른을 흉내 내고 있다는 것조차도 모를 테야. 그리고 말해줘야지. 너는 서른까지 잘 있을 거라고. 반짝반짝 빛나는 사람이 될 거라고. 서른이 됐을 땐 매일 아침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기대될 거라고. 그런 말들을 해줘야지. 그리고 다시 한번 안아줘야지. 그 아이가 눈물을 그칠 때까지 안아줄 테다. 내 품 속에서 눈물을 그치고 평안을 되찾을 테까지. 자신을 찾아온 새벽을 반갑게 맞이할 수 있도록.
마지막 기회.
마지막으로 나는 어제의 지민에게 갈 거다.
이모 집에서 지금 내 집으로 돌아온 지민에게. 고단했던 일주일을 마치고 새로운 월요일을 준비하던 지민에게. 애써 들지 않는 잠을 청하는 지민에게. 어제의 지민은 바로 알 수 있을 거야. 같은 나이의 지민이 왔다는 걸. 순간 도플갱어인가 싶어 이 아이를 죽여야 내가 살 수 있나 하는 생각도 들겠지만, 이내 긴장을 풀고 지금의 지민을 가만히 응시하겠지.
그 아이도 안아줄 테니?
글쎄. 조금은 반대의 입장에 놓일지도 모르겠다.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나를 안아줄지도 몰라. 오늘도 수고했어. 지민아. 나는 울게 될까.
나는 나 자신을 위로해줄 수 있을까? 우린 서로 화해할 수 있는 거니?
그 수많은 지민들은 만날 수 있는 걸까?
우리는 매 순간 마주치고 있다. 다섯의 기억을 꺼낼 때 내 눈앞에 다섯의 지민이 인사한다. 열셋의 기억을 적어 내려 갈 때 열셋의 지민이 나타난다. 열다섯의 지민이 스쳐 지나가고 스물의 지민이 나에게 다가온다. 이윽고 스물넷의 지민들이 나타난다. 스물넷 1월 1일의 지민이, 스물넷 2월 5일의 지민이. 그리고 12시가 지나 과거가 된 스물넷 2월 21일의 지민이.
그렇게 수많은 우리가 만났을 때.
우리는 서로를 안아줄 수 있을까
서로가 더이상 울지 않게
* <교차로입니다 서행하세요>의 열네 번째 글입니다. 이 매거진은 같지만 다른 점이 많은 두 친구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같은 주제에 대해 각기 다른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