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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이 Feb 23. 2022

너의 전공은

영화 <너의 이름은>

바야흐로 인문학이 '쓸모없는' 시대다.


인문학 전공자가 취업 시장에서 환영받을 확률이 얼마나 될까? 코딩하는 사람은 모셔간다는데, 철학하는 사람을 모셔간다는 회사는 본 적이 없으니, 아마 갈수록 그 확률은 줄어들 것임이 분명하다. 국문, 영문, 사학, 철학 등등등. 이제 인문학은 기술 고도화 사회에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학문이 되어버린 것만 같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인문학 없는 세상을 꿈꿀 수 없다. 문학과 역사, 철학 없이 우리는 과연 어떤 세상을 논할 수 있을까? 기술과 과학만이 차지한 세상은 끝없이 발전하면서도, 끝없이 메마르고야 말 것이라고, 감히 생각해본다.




나는 4년 간 국어국문을 전공했다.


뭐 전공자라고 하기엔, 뭐 하나 제대로 아는 것이 없다지만, 그래도 한 가지 배운 점이 있다면, 바로 '글'이 이 세상을 담아낼 만큼 큰 그릇이었다는 것이다.


글자를 쓰게 된 오래전 그날부터, 수많은 역사를 지나, 글은 지금도 쉬지 않고 이 세상을 담아내고 있다. 누군가는 기사로, 누군가는 문학으로, 누군가는 일기로 각자의 일상을 담아낸다. 나의 이 글도, 인터넷상 어딘가에는 2022년의 하루를 담아내는 조각으로 남아있게 될 것이다. 수천 년 전 우리의 선조들이 각자의 사랑을, 각자의 괴로움을 글에 고이 담아 보냈던 것처럼.


글에는 세상이 있고, 사람이 있고, 각자의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그곳에는 각자의 삶에 대한 고찰이 담겨 있다. 우리가 '왜' 기술을 발전시켜야 하는지, 우리가 '왜'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지, 우리가 '왜'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 우리가 '왜' '왜' '왜'....


세상에 아무런 목적이 없는 일은 없다.

그냥 일어나는 일도 없고, 그냥 태어나는 사람도 없다.


세상의 모든 일에는 저마다의 목적이 있고, 그 목적을 탐구하는 일은 오로지 인문학의 일이다. 각종 기술의 발전으로 세상이 바뀌어갈 때, 그 기술이 가야 할 방향을 고민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건 결국 수많은 사람들이고, 기술이 가야 할 목적도 사람 개개인의 행복이기 때문에.




뭐 물론 내가 국어국문을 선택한 것은 그리 거창한 뜻은 아니었다. 그저 글이 좋았고, 그 글이 보여주는 세상이 좋았고, 세상이 보여주는 사람들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누군가는 4년 간의 공부가 헛된 것이라고, 쓸모없는 것이었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놈의 취업 시장에서는 '글을 사랑한다'는 나의 고백 따위가 받아들여지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나도, 인문학이 돈이 되지 않는다는 누군가의 말에 대해선 반박할 의지가 없다. 그것이 내가 마주하고 있는 명백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인문학'이,

돈이 되지 않아도, 삶을 더 낫게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내가 국어국문학을 전공한 4년이라는 시간이 그리 헛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세상을 더 낫게 만들기 위해선, 끊임없는 기술 발전도 중요하지만, 그 발전이 가야 하는 방향에 대한 사고도 중요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어떻게 하면 더 나은 세상으로 갈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단지 기술의 발전으로는 채워질 수 없는 질문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내가 사랑하는 윤동주 시인의 시로 글을 마무리해보고자 한다.

그가 가졌던 고뇌의 절반만이라도, 나눠가질 수 있길 바라면서.


'파란 녹이 낀 구리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 만 이십사 년 일 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왔던가'







 * <교차로입니다 서행하세요>의 열다섯 번째 글입니다. 이 매거진은 같지만 다른 점이 많은 두 친구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같은 주제에 대해 각기 다른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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