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살아온 경험을 상대방에게 시시콜콜 다 설명할 수 없다. 기억도 안 나거니와 그 숱한 경험을 적절하게 표현할 언어 구사력도 모자라다. 나 역시 상대방이 겪어온 경험에 대해 속속들이 알 수가 없다. 내가 살아온 경험을 통해 그 사람이 겪었을법한 경험을 단지 상상해 보는 것이다. 그저 추측과 짐작만으로 관계를 이어 나간다. 그래서 나는 보통 내가 만들어 놓은 상대방의 이미지에 갇혀서 산다. 나는 언제나 상상의 세계에 갇혀 있다. 내가 떠올리고 있는 상대방의 이미지가 실재가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습관적으로 이 이미지에 항시 사로잡힌다. 꿈에서 깬 듯 이 세계에서 벗어나고 나면 그 상대방과의 관계에 이미 균열이 가 있다는 것을 확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