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샐러드, 뜻밖의 부가서비스

by 윤유은

서울에 직장을 잡고 자취를 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엄마와는 분기에 한두 번꼴로 얼굴을 보는 사이가 되었다. 엄마는 가끔씩 방문객처럼 찾아오는 딸을 마주할 때면 마치 인간 인바디처럼 얼굴의 부기, 팔뚝, 허리 사이즈 등에 대한 거침없는 외모 평가를 내려주었다. 그 평가들이 때로는 너무나 칼날과 같이 시퍼래서 가끔 가는 방문도 내키지 않을 때가 있었지만, 겨울 같이 방심하고 마구잡이로 먹어대는 계절엔 결단을 하고 다이어트 마음을 먹게 해주는 자극제 역할을 해주기도 했다.


사실 한 번 체중이 증가한 몸이 예전의 몸만큼 잘 돌아오지 않는다고 느꼈을 때는 공무원 시험 합격 후 다이어트를 했을 때였다. 공무원 시험 기간 중 식사시간을 최소화하면서 포만감을 느끼기 위해 일주일에 4번 이상 라면을 먹은 것 같다. 라면만 먹고 끝내면 좋겠지만 밥을 꼭 말아먹었고 독서실로 돌아가 낮잠을 30분 이상씩 잤다. 또 집중도가 극히 하락하는 오후 4시쯤에는 독서실에서 홀연히 나와 터덜터덜 걸어 동네 놀이터 벤치에 앉아 빵과 커피우유를 먹는 간식 시간을 가졌었다. 건강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수험생활 동안 나름의 규칙적인 식생활을 유지했었다. 시험 합격 후 입직 전에 건강검진을 받아야 하는데 수험생활 내내 함께했던 라면, 인스턴트 친구들 덕분인지 콜레스테롤 수치가 아주 높게 나와 재검진을 받으라는 결과를 받았다. 1년 동안 유지했던 식생활로 좋지 않은 쪽으로 다져진 몸 상태는 합격이 곧바로 가져다준 정신적 해방만큼 빠르게 정상화되진 않았다.


직장생활을 하면서부터는 운동을 하기 위해 시간을 낸다는 것은 태생적 기질부터 바꿔야 하는 미션임을 알았을 때 큰 허탈감을 느꼈다. 집순이에겐 퇴근 후 널브러져 멍 때리는 상태로 휴식을 취하는 달콤함을 포기해야 하는 큰 기회비용이 있었다. 또 빠르게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작심삼일로 끝내는 일이 부지기수였던 나에게 살을 도려내지 않는 이상 빠른 감량은 어려운 운동은 금방 포기해버리기 쉬운 것이었다.


꾸준한 운동을 하지 못한다면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무엇을 해야 할까 보다 무엇을 할 수 있을까가 더 맞을 것 같다. 미용목적만이 아닌 건강한 식생활을 되찾으면서 적정한 몸을 만들고 싶었다. 고민 끝에 입으로 들어가는 것을 줄여보기로 결심했다. 아침 점심 저녁 중 저녁을 샐러드 200g 정도만 먹는 것으로 하루의 식단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철저하게 고기 파인 나에게 샐러드란 현란한 색감으로 고기를 돋보이게 하기 위한 데코레이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었다. 절대 내 인생에 주식이 되리라곤 생각지 못했던 샐러드를 저녁으로 먹으면서 몇 가지 예상치 못했던 변화가 생겼다.


배고프다.


저녁으로 탄수화물을 먹지 않고 잠들기 전까지 내 머릿속을 지배하는 단 하나의 문장이다. 분식부터 일식, 중식까지 모든 종류의 음식들이 내 머릿속을 헤집고 다닌다. 배고픔이 지배하는 뇌는 식도에 음식이 들어오기 전까지는 모든 사고를 정지시켜버리는 파업 선고를 내린다.


순간의 연속인 삶 속에서 오직 육신 외에는 지금의 순간에 집중하지 못하는 삶을 살았다. 아침에 눈을 뜨고 세수를 하면서 살갗을 통해 물이 닿는 순간 이 세상에 속함을 자각한다. 그리고 곧바로 어제 밀렸던 일들과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모든 갈등들이 스쳐 지나가며 다시 시작되는 오늘이 버겁게만 느껴진다. 미결로 남아있는 어제의 갈등, 당장 벌어지고 있는 오늘의 이야기와 아직 시작하지도 않은 미래의 인간관계 등으로 인해 머리는 과부하다. 아프다.


그런데 저녁을 샐러드만 먹는 프로젝트는 ‘사고의 정지’라는 축복을 가져다주었다. 오직 배고픔만이 몸과 마음을 지배하면서 빨리 몸을 침대에 뉘어 내일이 오기만을 기다리게 되었다. 끊임없이 떠오르는 불필요한 생각과 잔상들을 없애려고 명상, 마음 수련 등 안 해본 것이 없다. 그런데 이렇게 허무하게도 저녁을 적게 먹는 것으로 쉽게 해결이 되었다. 저녁을 샐러드로 먹으며 위의 크기가 줄어들어 자연스럽게 식사량이 적어진 것은 물론이고 배고픔이라는 1차원적인 본능만이 뇌를 지배하면서 자연스레 불필요한 생각들을 버리고 온전한 지금을 살게 된 것은 신이 주신 축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