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시간이 모자라

시간과 돈의 상관관계 - '쓸모 있는 시간'을 찾아서

by 윤유은

20살, 대학교 여름방학을 이용해 토요일, 일요일 주말마다 10시간씩 초밥뷔페에서 일했던 적이 있다. 그때 무엇보다 힘들었던 것은 진상 손님을 상대하는 것보다 일하는 속도가 더뎌 내가 다른 직원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했을 때였다.


잘하고자 하는 의지는 충만한데 숙련되지 못해 접시들을 들고 위태로웠던 나를 지켜보는 매니저님은 늘 불안했던 모양이다. 어느 화창했던 주말 오후 매니저님은 나를 조용히 불러 해고를 통보하셨다. 적응하기까지 제대로 된 한 달의 시간도 주어지지 않았다.


20대 초반에는 참 돈이 궁했다. 그런데 시간은 차고 넘쳐흘렀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처음으로 겨우 2~30만 원의 용돈벌이를 하는 것조차 노동의 무게가 시간을 짓누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노동하는 시간은 내 인생에서 ‘삭제’되거나 ‘쓸모없는’ 시간으로 여겨져 얼른 이 거칠고 메마른 사막을 지나 온전히 내 시간을 누릴 수 있는 오아시스를 찾아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오아시스에 도달하는 시간이 너무 길게 느껴져 때때로 인생이 서글프다고 생각한 적도 많았다. 오아시스를 함께 찾아갈 수 있는 누군가가 있었다면 덜 외로웠을 텐데 대학 동기들은 대부분 집안 사정이 넉넉했다.

태어나자마자 모든 사람들에게 하루 24시간이 공평하게 주어진 줄 알았는데 누군가에겐 하루가 온전히 내 것으로 허락되지 않았음을 20살이 됨과 동시에 알게 되었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직장생활을 하면서 하루 8시간 이상의 시간을 다른 누군가에게 헌납하며 살아간다. 돈을 벌기 위해 시간을 투입하는 쳇바퀴 같은 삶을 좀 더 일찍 시작하면서 나에게 ‘시간’이란 좀 더 특별하고 귀한 것이 되었다.

24시간이 온전히 내 것이 아니라는 전제조건에서 비관적인 마음은 묻어두고 조금이라도 희망차게 살아가기 위해 다짐했던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남들과 같은 시간에 같은 것을 누릴 수는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조건이 다를지언정 남들과 삶의 목표를 비슷하게 설정했다면 남들보다 시간을 더 쪼개서 살면서 ‘쓸모 있는’ 시간을 더 많이 확보해 가는 것이다.


이런 다짐을 통해 대학생시절 과외와 카페알바를 병행하면서 맞이한 중간, 기말고사 시험기간에는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공부시간을 조금이라도 확보하기 위해 밥 먹는 시간을 줄이고 도서관 화장실 부스에 들어가 빵을 먹기도 했고, 알바를 하러 이동하는 시간도 허투루 쓰지 않고 모든 교통수단들을 이동 독서실로 활용했다.


이렇게 시간을 쪼개서 사는 삶의 장점은 잡생각이 들 수가 없는 구조란 것이다. 왜 나는 부자인 부모 밑에서 태어나지 못했을까, 왜 나는 이렇게 치열하게 살고 있을까 등등의 생각조차 사치로 여겨졌다.

그렇게 시간을 쪼개서 만든 ‘쓸모 있는’ 시간들은 내가 알아채지도 못하는 사이에 나를 ‘쓸모 있는’ 인간으로 만들어 가고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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