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트라우마

최후의 만찬으로 끝난 첫 연애

by 윤유은

20살에 사귄 첫 남자친구와 4년을 만났다. 4년의 종지부를 찍은 날은 모처럼 좋은 곳을 데려가주겠다며 데이트한 날 중 가장 비싼 음식을 사 먹은 날이기도 했다. 음식점을 찾아가는 내내 남자친구의 시선은 길거리 간판들을 헤맸고 나에겐 잠깐의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좋은 음식을 먹으러 간다는데 왠지 모르게 불안했던 마음들은 남자친구가 그날 반드시 해결해야만 했던 숙제를 조금은 예감해서일지도 모르겠다.

어느 정도 식사가 마무리된 시점에 남자친구 입에선 이별 통보가 흘러나왔다. 무슨 상황이 벌어진 건지, 무슨 말을 들은 건지 파악하기도 전에 그리고 헤어짐의 이유를 채 묻기도 전에 남자친구는 자리를 떠나 버렸다. 그렇게 텅 빈 테이블에 혼자 남겨졌다.


연인 사이에 식어가는 마음을 들키지 않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팽팽한 애정전선의 줄다리기에서 어느 순간 한쪽이 느슨하게 줄을 잡게 되면 이전과 같지 않은 파동이 상대방에게 고스란히 전달되기 때문이다. 한쪽의 애정에 변화가 생긴 것을 눈치챘다면 상대방은 크게 두 가지 행동을 취할 수 있을 것이다.


첫 번째는 연인의 식어버린 애정을 모른 척하기다. 이는 관계를 일정기간 연장시킬 수는 있다. 끝은 어차피 헤어짐이더라도 관계 변화와 균열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시간을 버는 것이다. 하지만 그 기간 동안 자존감이 깎이며 결론적으로 ‘나’를 잃어버리는 행동이 될 것이다.


두 번째는 연인의 변화된 마음을 받아들이고 놓아주는 것이다. 다수의 연애경험으로 헤어짐에 익숙해졌다면 좀 더 이별을 받아들이기 쉬었을까. 처음 사귄 남자친구였기에 애정이 식을 수 있다는 사실조차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식어버린 마음을 이미 눈치챘는데도 끝내 인연의 끈을 못 놓고 내 마음만 강요해서 상대방을 힘들게 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연락할 수도 만날 수도 없는데 그리움에 못 이겨 함께 했던 거리를 혼자 거닐었던 20대 초반의 그림자들이 때때로 어두운 밤 조명 밑에서 나를 밝힌다.

미움만 남을 줄 알았던 최후의 만찬 위에 놓고 떠나버린 4년의 시간은 시간이 지날수록 순수하게 좋아해 준 마음만으로도 참 고마운 일이라고 생각되며 가끔씩 추억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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