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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MIND Mar 15. 2022

'지옥'의 사신이 범죄를 예방해?

신과 반대: 형법학의 아버지와 넷플릭스 '지옥'의 신

<지옥에나 떨어져라! 나쁜 자식.>


 당신을 배신했던 사람, 혹은 정말 질 나쁜 주변 사람을 보고서 한번쯤 해본 생각일 것이다. 악마 같은 사람들을 심판하고 벌을 내리는 ‘지옥’과 같은 존재가 있을 것이라고 믿으면 왠지 모를 통쾌함과 안도감이 든다.


<만약 진짜로 지옥이 존재한다면?>


 넷플릭스의 ‘지옥’이 바로 이런 우리의 일상 생각을 소재로 만들어진 드라마이다. 연상호, 최규석 작가의 원작 만화 ‘지옥’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 드라마는, 시작부터 한 남자가 질색팔색하며 검은 세 괴물들에게 쫓긴다. 서울 도심 한복판임에도, 검은 괴물들은 도로 위의 자동차들을 부수고 날리며 도망가는 남자를 맹렬히 뒤쫓는다. 결국 검은 괴물의 손이 남자의 몸에 닿고, 남자는 종이 마냥 괴물에게 구겨지고 던져지고 찢어진다. 그리고 세 괴물이 손을 모아 남자에게 갖다 대니, 한순간 빛이 일고 그곳엔 검은 재로 뒤덮인 해골만이 남아있었다. 남자의 죽음은 미디어를 타고 전국으로 퍼져 나갔고, 사람들은 공포와 혼란에 휩싸인다.


<의장 왈, “너희는 더 정의로워야 한다.”>


 이전부터 이런 괴현상들을 연구해온 ‘새진리회’의 의장, ’정진수’는 다음과 같은 해석을 제시한다. “동남아, 일본, 니카라과 등등, 세계 각지에서 이렇게 괴물들에게 죽임을 당한 사람들은 모두 중한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살인, 특수강간, 마약 범죄를 저지른 그들은 신의 사신들에게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사신들의 심판을 통해 신은 인간들에게 전합니다. ‘너희는 더 정의로운 존재여야 한다.’”

 그는 덧붙여, “공포가 아니면, 무엇이 인간을 참회하게 만들까요?”라고 한다. 인간의 자율성에 맡겨 둔 법률은 죄인들의 참회를 이끌어내지 못해 세상을 범죄로 얼룩지게 만들었고, 신은 이에 실망하여 직접 사형을 집행하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신의 사형, 형법학의 아버지는 이에 찬성할까?>


 정진수 의장의 해석을 다시 정리하면, ‘신이 보낸 사신들의 심판으로 사람들이 공포에 떨고, 자신의 죄를 참회하며 죄를 짓지 않을 것이고, 그렇게 더욱 선하고 정의로운 존재가 될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 한마디로, ‘나의 사형이 너희의 범죄를 줄일 것이느라.’라고 할 수 있다.

정진수 의장의 신의 의도에 대한 해석이 옳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형법학의 아버지는 과연 ‘신의 사형’에 찬성할까?


<형법학의 아버지의 사형 기준>


 근대 형법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체사레 베카리아’는 형법학 이론의 기본을 다진 철학가이다. ‘범죄와 형벌’이라는 책을 통해, 중세의 무차별적 고문과 마녀사냥 등에 대해 비판을 가하며, 법질서에 의한 정의롭고 합리적인 형벌만이 사회의 범죄를 줄일 수 있다고 처음 제시한 공리주의자이다.

 그는 위 책에서 ‘사형’에 대해서도 언급하는데, 사형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그는 사형이 범죄 예방에 있어 큰 효과가 없다고 단언한다. 그는 단 두가지 경우에만 사형이 허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첫째, 한 시민의 존재를 지우지 않고서, 국가의 위협을 제거하지 못하는 경우.


 오사마 빈 라덴과 같이, 한 시민의 존재 자체가 테러의 상징이고, 테러단체의 수장으로서 국가에 직접적인 위협이 되는 경우가 있다. 그는 주위 사람들을 자극해 테러를 일으키고 국가 전복을 야기한다. 이런 사람은 사회 공동체에 직접적인 위협이고, 그의 존재를 지워야만 국가의 안전을 도모할 수 있기에 사형이 허용될 수 있다.


 둘째, 한 사람의 죽음이 다른 사람의 범죄를 억제할 유일한 방안인 경우.


 예를 들어, 전시에 불복종을 할 경우 상관의 판단 하에 사형을 즉시 집행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다. 만일 이 조항이 없을 경우, 생사를 오가는 전선에서 누가 사선을 향해 달려갈까? 사선을 향해 달려가기 보다, 상관을 살해하고 도망치는 것이 더 유리한 판단일 것이다. 그리고 급박한 전시에서 그런 병사에서 징역, 벌금형을 내린다고 해서 그 병사가 전장에 남을 이유는 없다. 일단 살아남고 보자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다. 결국 전시상황에선 즉결 사형만이 다른 사람의 탈주를 방지할 유일한 수단이고 전쟁의 승리로 이끄는 마지막 선이다.

 그 이외의 경우엔 ‘종신형’이라는 더 효과가 좋은 형벌은 내리면 되지, 사형을 내려선 안된다는 것이다. 사람을 잔인하게 죽이고, 마약으로 사회를 망치고, 강간으로 한 사람의 인생을 망치는 상식 밖의 범죄자들은 오히려 사형이 더 반가울 것이다. 삶에 미련이 없기에, 그들에게 사형은 복수와 폭력으로 세상을 더럽히며 악명을 떨치고 곧바로 세상을 떠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체사레 베카리아는 ‘지옥’의 신과 등졌다.>


 베카리아의 위 주장에 근거해 ‘과연 형법학의 아버지는 신의 심판에 찬성할까?’에 대해 답변하자면, 답변은 ‘NO’다. 

 드라마 ‘지옥’의 신이 심판 내린 사람들이 모두 중범죄자일지라도, 그들 존재 자체가 국가를 전복시킬 정도는 아니었다. 드라마 지옥엔 나라를 전복시키려는 범죄자는 예시로 나오지 않았다.

오로지 잔학한 공개적 사형만이 타인의 동일 범죄를 예방할 유일한 방안도 아니었다. 감옥에서 평생을 갇혀 자유없이 평생 격무와 외로움에 시달리기만 하더라도 주변 사람들은 충분히 범죄에 대해 경각심을 갖게 될 것이다. 죽음보다 무서운 것이 평생의 걸친 외로움과 고통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사형과 효과는 다를지라도 범죄를 예방할 ‘종신형’이란 다른 수단이 있기에, 베카리아는 신의 사형을 반대할 것이다. 차라리 신이 범죄자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사신들이 범죄자를 지옥으로 데려가는 것이며 그곳에서 범죄자들이 평생에 걸쳐 벌받는다고 한다면, 더욱 호소력 있으며 범죄자들이 두려움에 떨게 할 좋은 방안일 것이다.


<그렇다면, 신의 심판이 범죄예방효과는 있을까?>


 신의 심판으로 인해 사람들이 공포에 떨게 되고, 해당 범죄를 저질러 심판 받은 사람을 보고서 ‘나는 그러지 않아야겠다.’하고 어느정도 경각심을 가질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의구심을 가지기 시작할 것이다. 예를 들어 칼을 든 사람에게 위협받은 경찰이 총으로 범죄자를 죽였다. 이것도 살인인데, 과연 신의 심판을 받을 것인가? 아니면 정당방위로 인정되어 살아남을 수 있나? 

다른 예로, 어떤 채무자가 사채업자에게 협박을 당하고 있다. “너가 저 사람을 죽이지 않으면, 너희 집을 다 불살라버리겠어.” 그 협박을 받은 채무자는 결국 전혀 모르는 한 사람을 죽이게 된다. 그렇다면 그는 심판을 받을 것인가? 아니면 가족의 안위를 위해 어쩔 수 없었던 사실이 참작되어 살아남을 수 있나?

 체사레 베카리아는 이런 명시되지 않은 처벌에 대해 일찌감치 경고를 날렸다. 중세시대, 법전 없이 그저 사람들의 감정에 치우치던 형벌은 사람들에게 혼란을 가중시키며 어떤 이유에서 비롯된 행동이 잘못된 것인지 알 수 없는 사회를 만든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범죄의 항목 설명이 성문으로 명확하게 되어있어야 사람들이 그것이 죄임을 인지하고, 범죄를 저지르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신의 심판은 우리 눈 앞에 보이겠지만, ‘어떤 사람에게 심판이 가해지는가?’에 대한 해석은 결국 다시 우리에게 주어지고, ‘신의 계시’라는 종교의 모습으로 또 다른 법전이 생길 것이다. 과연 그 종교적 해석을 사람들이 따르고 범죄가 예방될지는 미지수다. 다만, 이런 종교적 정리가 있기 전까지, 원래 존재하던 법전은 효력을 잃고 사회는 큰 혼돈에 빠질 것이다.


 그리고 신의 심판이 과연 범죄의 경중과 균형을 이루는지도 문제이다. 베카리아는 범죄의 경중과 형벌의 고통이 균형을 이루어야 그만큼 사람들이 적절한 주의를 가지고 조심한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그저 빵 한 조각을 훔쳤는데, 징역 5년이 선고된다면, 범죄자는 사회에 환멸을 느끼고 오히려 더 어긋날 수 있으며, 주위 사람들도 법 제도를 믿고 따르지 못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 법을 믿고 따르더라도, 평소에 지나친 두려움과 공포를 안고 살아야 하기에 사회적으로 결국 손해를 끼친다고 보았다.

 과연 검은 사신들에 의해 공개적으로 내팽개쳐지고, 찢기며 몸이 태워지는 심판이 범죄자가 남들에게 준 피해와 균형을 이루는지 의문이다. 물론 중범죄자들에겐 균형을 어떻게 이룰 수 있을지 몰라도, 그 이외의 사람들에게 벌어지는 심판은 대중들에게 큰 공포라는 정신적 스트레스를 줄 것이다.

사람들은 모두 죄를 짓는다. 그런데, 명확하지 않으며 잔학한 신의 심판이 횡행하는 세상에서 산다면, 죄 지은 자신도 심판 받아 죽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람들은 압도당할 것이다. 결국 삶을 스스로 포기하거나 인간성을 포기하여 막무가내로 살게 될 것이고 그렇게 사회는 무정부상태로 치닫게 된다. 이것이 베카리아가 걱정한 법이 없는 세상, ‘폭주의 시대’이다.


<베카리아가 ‘지옥’의 신에게 전하는 걱정>


신의 심판이 범죄예방효과가 있는가’에 대해 베카리아가 어찌 대답할지 다시 정리하자면, 

“범죄예방효과는 일정부분 있으나, 사람들의 불필요한 불안과 폭동을 일으키며 부수적인 사회 범죄를 일으키는 부작용이 있을 것이다. 이런 부작용으로 인해 법질서가 무너지고 중세로 돌아갈 수 있다.” 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법체계라고 정의로운가?>


 물론 베카리아는 합리적인 법 제도를 전제로 이와 같은 주장을 한 것이다. 하지만 뉴스에서 우린 불합리한 판결들을 자주 마주친다. 정신질환, 음주, 그리고 마약 등 심신미약으로 인한 감형은 우리를 분노에 차게 만든다. 수십억의 돈을 횡령해 기업의 가족들을 길바닥으로 내던지고도, 범죄자는 떵떵거리며 강남에서 슈퍼카를 모는 현실에 좌절할 때도 있다. 그런 불합리한 현실 때문에, ‘지옥’의 정진수 의장의 주장이 우리의 가슴에 계속 울리는지도 모르겠다. 



Artist DAN:D with Gallery MI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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