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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MIND Mar 15. 2022

미야자키 하야오의 3가지 기술

지브리 스튜디오의 스토리텔링 비법

<결국,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울려야 한다.>


 작가들은 항상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하고자 한다. 그런데 상상해보자. 작가가 갑자기 현관문을 쾅쾅 두드리더니 피켓을 들고서 자신의 메시지를 고래고래 소리지른다면, 누가 그 메시지를 듣고 싶어 하겠는가? 자신의 메시지를 마구잡이로 복제해 여기저기 흩뿌려 놓는다면, 누가 그걸 주어서 읽겠는가? 전하고자 하는 가치들이 아무리 선하고 유익할지라도, 사람들이 외면한다면 다락방에서 먼지 덮여가는 백과사전 신세로 전락한다.

 그래서 작가들은 스토리에 살며시 메시지를 숨겨놓고서, 우리가 스스로 찾아내길 바란다. 메시지를 교묘하게 숨기는 기술, 그리고 우리가 메시지를 찾도록 유도하는 기술, 그것이 바로 ‘스토리텔링 기술’이다.


<스토리텔링 기술의 대가, 하야오>


 미야자키 하야오는 그런 가치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스토리텔링 기술의 대가이다. 그가 추구하는 반전주의, 생태주의, 그리고 인내의 가치는 지브리 스튜디오 애니메이션 곳곳에 녹아 있었다. 그의 숨겨진 스토리텔링 기술 덕에, 그의 애니메이션은 우리 생각에 물 수제비를 던져 여운을 남기고, 어려운 가치일지라도 어린아이도 받아들이기 쉬운 구조로 전달된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스토리텔링 기술에 감명받았고, 그래서 그의 3작품,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하울의 움직이는 성’


을 감상하며 그의 기술을 분석했다. 그리고 3 작품에 공통적으로 적용된 스토리텔링 기술 ‘3가지’를 발견하였다.


<기술 1: 주인공 설정, 평범한 약자가 세상을 구한다.>


 마블의 영화를 보며, 관객들은 아이언맨의 최첨단 슈트, 그리고 캡틴 아메리카의 강력한 육체에 놀라워하고 부러워할 것이다. 그런 그들의 멋진 모습을 보고싶어 우리가 영화관을 찾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주인공과 격차를 느낄 것이다.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가 추구하는 정의, 그리고 자유가 우리의 것이라고 곧바로 받아들이긴 어렵다. 그들과 우리 사이엔 어느정도 거리감이 있기 때문이다.

 미야자키 하야오도 ‘주인공을 어떤 인물로 설정하느냐’에 따라 관객과 주인공간 공감정도가 크게 달라짐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주인공을 ‘평범한 약자’로 설정했다.


‘바람계곡 나우시카’의 나우시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센’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소피’


 세 작품의 세 주인공 모두 소녀이며, 특별한 능력을 갖고 있지 않다. 기존 히어로물에서 약자로 보호받아야 할 대상들이 하야오의 작품 속에선 강인한 인물로 역경을 헤치며 세상을 바꾸는 주도적 인물들이다. 특히 식민제국에 의해 왕이 살해당한 왕국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이나, 엄마 아빠를 돼지로 만들어버리는 주인이 운영하는 목욕탕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나, 혹은 왕자 하나 잃었다고 전쟁을 일으키는 두 왕국 (하울의 움직이는 성)처럼 배경환경이 그렇게 녹록치 않은 곳에서도, 주인공들은 열심히 삶을 이어가고 두려운 미래를 지혜롭게 풀어간다.


 소녀들이 하야오의 작품에서 주인공을 맡게 된 이유는 그 당시 작품이 상영되던 사회적 배경에서 엿볼 수 있다. 세 작품이 나오던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의 시기의 일본은 남성 중심적이며 폐쇄적인 사회였다. 위계질서가 강했으며, 권력중심적 사회에서 여성들은 소시민으로만 전락해갔다. 그리고 여성의 사회진출이 시작되었지만, 여성의 적극적인 사회활동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많았다. 이 사회에서 하야오는, 약자인 소녀를 영화의 주인공으로 삼아 당차고 적극적인 소녀의 모습을 보였다. 


 나우시카는 혈혈단신으로 전함 앞에서 서서 전쟁을 막고자 했고, 치히로는 돼지가 되버린 자신의 부모님을 되찾기 위해 험난한 목욕탕에서 꿋꿋이 맡은 바를 해냈다. 그리고 소피는 황야의 마녀의 저주로 할머니가 되더라도, 굴하지 않고 삶을 이어 나간다.


 약자로 대우받던 소녀들이 주인공이 되어, 공감과 지혜로 세상을 포용하고 바꾸어 나가는 스토리 덕에,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은 특별할 힘과 권력이 없는 대중들에게 ‘누구나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준다. 특히 여성들에게 많은 공감을 얻어내며 메시지 수용층을 더욱 넓혔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야오만의 ‘주인공 설정’이 먹힌 것이다.


<기술2: 강력한 이미지, 화려하고 우아하게, 눈길을 끌어라.>


 스토리텔링 속 가치와 메시지가 독창적이고, 설득력이 있으며 이야기 구성도 잘 짜여 있다면 반은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나머지 반은 이제 사람들이 그 스토리를 ‘이미지’로 떠올릴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 사람들이 잊지못할 한 장면을 선사해야만 그 장면과 함께 작품 속 숨겨진 메시지가 오래도록 관객들 머릿속에 남는 것이다.


 하야오가 지향하는 반전주의와 생태주의, 그리고 인내와 같은 가치의 이미지는 정적이라 자칫 지루해지기 쉽다. 지루하다 보니 관객들이 관심을 오래 두기 쉽지 않다. 그러나 하야오는 세 작품모두에서 ‘3가지 씬’을 넣어 관객들의 시선을 모았다.

 먼저 위태로운 비행전투 씬을 통해 긴박감을 조성하여 사람들이 긴장감을 놓지 못하게 한다. 그리고 여유로운 비행 씬을 통해 아름다운 풍경과 행복감을 관객들에게 선물한다. 그리고 마지막 엔딩 씬에서 다채롭고 압도되는 넓은 미장센을 보여주며, 사람들의 머릿속에 진한 이미지를 각인한다.

 위 세 가지 씬을 통해 하야오는 영상미를 선사하고, 관객들의 머릿속에 잊지못할 이미지를 각인한다. 각인된 이미지를 사람들이 떠올릴 때마다, 영화의 스토리가 떠오를 것이며, 자연스럽게 영화의 메시지도 기억날 것이다. 


<기술3: 결말 설정, 해피엔딩이어야 한다.>


 하야오의 생태주의, 반전주의, 그리고 인내의 가치는 현실의 단기적 관점을 지는 사람들에겐 허황된 이야기로 받아들여지기 쉽다. 위 가치들의 추구하였을 때, 곧바로 긍정적 결과를 얻기 어렵고, 몸으로 직접 느끼기 위해선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하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환경오염, 전쟁, 그리고 탐욕은 즉각적으로 쾌락을 제공하고, 사람들의 니즈를 만족시켜준다.


 그래서 하야오는 세 작품에서 아름다운 해피 엔딩을 제시하고, 주인공들의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며 행복과 사랑의 감정을 영상을 통해 몸으로 느낄 수 있도록 한다. 하야오의 어린 관객들은 그 감정에 공감하며 하야오의 가치들을 가슴에 품고 어른이 될 것이다. 그렇게 불가능해 보이는 생명이 넘치고 전쟁이 없으며, 이해와 공존이 넘치는 하야오의 유토피아가 자라나는 관객들 마음에서부터 하나 둘 새싹을 피울 것이다. 이것이 하야오가 결말 설정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설득한 과정이다.


<잊히지 않는 풍경 사이로, 환히 웃고 있는 나우시카, 센, 그리고 하울>


 정리하자면, 하야오는 잊히지 않는 다채롭고 환상적인 미장센을 관객들에게 선사했고, 그 미장센과 함께 잘 짜인 스토리와 메시지가 관객들 머릿속에 각인되었다. 덕분에 관객들은 쉽게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릴 수 있고, 장면을 떠올리며 그 속에서 사랑과 행복으로 가득 찬 주인공들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주인공들에게서 느껴지는 하야오의 ‘메시지’가 자연스레 관객들의 생각에 파고든다. 이것이 하야오의 3가지 스토리텔링 기술의 작용과정이다. 


 앞으로 애니메이션, 혹은 영화의 대본을 작성하는 작가라면, 이런 하야오의 기술을 염두에 둔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하야오의 작품을 아직 안본 관객이라도, 이런 기술들을 염두해두고 감상한다면, 보이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영화에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Artist DAN:D with Gallery MI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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