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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먼지민 May 13. 2022

네가 무당이라고?

무지개떡에서 굿판까지

어제는 집에 무지개떡이 도착했다. 전주에서 티노, 루시, 엘리엇님이 보내준 신내림 축하 선물이었다. 사실, 며칠 전 신내림 글을 올리고는 한참 손을 떨었다. 습관처럼 자기의심이 스멀스멀 피어올랐기 때문이다.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트랜스젠더나 폴리아모리 커밍아웃보다 무밍아웃을 할 때가 유독 더 힘들게 느껴졌다. 정작 신경 쓰는 사람도 없는데, 어떤 시선들이 나를 옥죄는 기분이었다. 문제는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도 있었다. 당장 내일부터 손님들을 받을 텐데 내가 잘할 수 있을까. 내가 그럴 자격이 있을까. 그렇게 끝없는 의심에 허덕이던 중 따스한 응원으로 도착한 무지개떡이었다. 선물을 보낸 루시는 말했다. “무무를 믿는 우리를 믿어요”


실은 아직도 떨떠름하다. 내가 무당이라니. 식구 중 무당이 있어도 어디까지나 내 일은 아니었다. 칼리가 신내림을 받을 때도 신기한 눈빛으로 쳐다보며 경외심이 들뿐이었다. 내가 받은 건 아니니까. 신내림을 받기 전까지 칼리가 어떻게 지냈는지도 잘 알았다. 나와 닮은 면이 있었지만 어쨌든 나는 아니었다. 스스로를 무당이라고 소개하기 시작한 뒤 칼리가 어떤 일을 해왔고, 하고 있는지도 알고 있다. 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무당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정도. 이 역시 내 일은 아니었다. 그저 가까운 거리에서 기꺼이 함께하는 사람일 뿐이었다.


저건 특별한 사람만 하는 일이야. 아마 다들 신내림 같은 걸 받았겠지. 귀신도 무서워하는 내가 무슨. 나는 할 수 없는 일일 거야. 상상도 해본 적 없어. 목사, 스님, 무당 같은 종교인은 내 삶의 길에는 없던 이정표들이야. 신기(끼)? 그런 거 다들 조금씩 가진 거 아냐? 아니면 그런 게 있긴 해? 내 우울이나 조현이 무당이랑 무슨 상관이야. 다들 가위 정도는 눌리잖아. 환각이나 환청도 많이들 겪어. 아니, 그런 걸 다 떠나서 자신 없어. 다른 할 일도 많고.


몇 년 동안 주고받은 대화 중 무당과 관련해 내가 한 말들이다. 당시나 지금이나 나는 무속에 관한 편견이 있다. 어쩌면 종교 전반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이 있을지도 모른다. 미신이라며 하대하거나 비난하지는 않았(다고 믿)지만, 뼛속 깊은 곳에 어떤 두려움과 의혹이 숨어 있다. 그런데 덜컥하게 됐다. 귀신을 섬겨 길흉을 점치고 굿을 하는 것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 그 정의도 무시무시한 무당.


왜. 어떻게. 어쩌다. 이런 종류의 질문에 답을 하려면 온갖 보따리를 다 풀어야 한다. 삶이 복잡한 만큼 어떤 방식으로 설명할지도 제각각이다. 그러니 근원을 찾을 바에 지금 내가 서 있는 위치를 점검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 나는 현재 무지개신당의 무무다. 무지개 무당의 줄임말 무무. 나에게는 일종의 ‘신 선생님’이라 할 수 있는 칼리가 ‘칼리신당’으로 먼저 시작했던 곳을 협동조합처럼 꾸린 곳이 무지개신당이다. 담임목사와 부목사쯤 되려나. 이렇게 쓰고 보니 내가 가진 편견의 일부는 확실히 기독교에서 왔다는 사실이 새삼 떠오른다.


어릴 적부터 나는 거대한 사물 앞에서 눈과 귀를 막았다. 물론 십자가는 제외하고. 거대한 절 안에서, 부처상 옆에서, 인천의 맥아더 장군 동상 뒤에서, 연등이 잔뜩 달린 신당 앞에서 그랬다. 교회에서 끊임없이 울려 퍼진 ‘우상숭배’라는 단어 때문이다. 그때 내가 배운 세계는 교회 밖 세상은 곧 속세, 속세 안에는 위험한 것들이 가득한 곳이었다. 속세, 이단, 미신, 지옥, 천벌 따위의 글자들이 매주 겁을 주던 어린 시절의 기억은 현재에도 영향을 미칠 게 분명했다. 처음 신병, 신내림, 무당 같은 단어들이 내 삶 속으로 들어올 때도 그 영향은 계속됐다.


강신무와 학습무가 있다고 한다. 신이 내려서 된 무당 강신무. 경문이나 점서 따위를 공부하여 된 무당 학습무. 얼핏 보면, 선천적 무당과 후천적 무당처럼 들린다. 그렇지만 <신령님이 보고 계셔>에서 칼리가 말했듯, 이 둘을 구분하는 일은 의미가 없거나 때론 유해하다. 학습하지 않는 강신무는 위험한 칼이 될 수 있고, 세상 만물에 깃들여있는 신을 경외하지 않는 학습무는 헛똑똑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여기서 그 둘의 위계마저 나눈다면, 그 유해함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나는 강신무일까, 학습무일까. 칼리는 둘 다라고 한다. 이런 질문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그저 어떤 이름표에 특정한 권위를 붙이고 자격을 논하기보다, 그 이름표로 무엇을 어떻게 하는지에 더 집중하기로 했다. 여전히 갈팡질팡하며 망설이던 나는 승은의 말에서 힌트를 얻었다. “무무는 행사를 기획하고 모임을 진행하고 사람들 상담해주고 공동체 만드는 일에 진심이잖아. 잘 맞기도 하고 잘하기도 하고. 근데 왜 무당이 하는 일은 다르다고 생각하는 거야? 혹시 무당이라고 부르는 순간 어떤 생각들이 끼어들어 오는 건 아니야? 잘 생각해보자. 나는 무당이, 지금까지 무무가 하던 일들을 다른 방식으로 하는 거라고 생각해.”


5년 전, 스스로를 하나님의 대학이라고 부르던 기독교 대학에서 쫓겨난 뒤 한참을 배회했다. 생계와 운동을 같이하는 전업 활동가로 살아보려고도 하고, 사교육 시장에서 강사로 일해 보려고도 했다가, 노무사가 되어 생계와 활동을 같이 하는 꿈을 꿔보기도 하고, 책방에서 소소한 일들을 함께하며 문화기획으로 세상을 바꾸는 꿈을 꾸기도 했다. 이외에도 생계를 위해 이런저런 일들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때마다 나는 질문했다. 지금 뭘 하고 있는 걸까. 앞으로 어떤 일을 누구와 어떻게 하며 살고 싶은 거지. 포기할 수 있는 것과 포기할 수 없는 건 뭘까. 지금,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뭘까. 답 없는 질문들 속에서 허우적댔다. 우울은 깊어졌고, 몸은 바닥에 가까워졌다. 사경을 헤매듯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했다. 희망은커녕 내일도 그려지지 않았다. 그때 칼리가 손을 내밀었다. 조심스레 자신의 보따리에서 경험을 풀어내며 함께 하자고 말했다. 당연히 거절했다. 친절하게. 앞서 몇 년 동안 무당에 관해 내가 한 말들을 고스란히 반복했다. 난 어차피 안 돼. 못 할 거예요. 죄송해요.


몇 달이 지났다. 몇 년인가. 여전히 같은 일상을 보내고 있던 나는 어느 새벽 두 시에 눈이 떠졌다. 한 번 잠에 들면 거대한 바늘로 찔러도 안 일어나는 내게는 흔치 않은 일이었다. 기대도 되지 않는 하루로 들어갈 바에 다시 잠드는 걸 택했지만, 한 번 달아난 잠은 돌아오지 않았다. 어슬렁어슬렁 책상에 앉아 컴퓨터를 켰다. 뜬금없이 눈물이 났다. 닦아도 훔쳐도 계속 쏟아졌다. 막연했다. 고요한 새벽빛에 압도됐다. 죽음을 생각했다. 다 놓아버리거나 사라져 버리고 싶었다.


다행인지 뭔지. 다음날 발견된 나는 울다 지쳐 소파에 잠들어있었다. 오전 10시 30분. 곧 있으면 칼리의 대면상담 시간이다. 칼리신당과 생활공간을 공유하던 나는 생각할 틈도 없이 몸을 움직였다. 손님이 오는 길목을 청소하고 향을 피웠다. 신당 내부를 점검하고 칼리와 손님 맞을 준비를 했다. 곧이어 칼리가 들어왔고, 손님은 11시 정각에 도착했다.


신당으로 들어간 손님은 11시 50분이 다 돼서야 나왔다. 들어올 때와 나갈 때 기운이 달라졌다는 걸 나도 단숨에 느낄 수 있었다. 세상 모든 짐을 다 진 것만 같은 표정이 이삿짐을 다 옮기고 난 후 상쾌한 표정으로 변해 있었다. 신당 안에는 손님이 꼭 쥐고 있던 눈물 묻는 휴지가 가득했다. 이런 일, 나도 하고 싶다. 누군가에게 위로의 공간을 내주는 일. 당장의 해결이 어렵더라도 다음을 함께 도모하는 일.


나조차도 못 챙기는 내가 이런 생각을 한 게 우습지만. 그것도 불과 네 시간 전에 죽음을 생각하던 게 더 우습지만. 그때 무슨 바람인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전부터 식구들과 세상을 바꾸는 일에 관해 대화를 나눌 때마다 내가 하던 말이 떠올랐다. “저는 운동이 뭔지 잘 모르겠지만, 하고 싶은 건 있어요. 당장 법과 제도를 바꾸는 일만큼이나 당장의 공간과 관계가 절실한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공간을 마련하는 거요. 그게 어떤 형태이든, 지금부터 조금씩이라도 하고 싶어요. 그러다보면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위안을 얻는 곳이 되지 않을까요.” 왜 이 생각들이 우르르 몰려왔는지는 아직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무무가 됐다. 무지개신당은 삶의 거처이자 활동 근거지가 될 예정이다. 내가 살고 있고. 네가 살고 싶고, 우리가 꿈꾸는 세상을 만들어나가기 위한 울타리. 여기서 나는 칼리와 함께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듣고 작은 위로를 건네며 한 발짝씩 나아가려고 한다. 많은 종교들이 운동과 함께 하듯, 무지개신당도 무속인들의 운동판, 굿판이 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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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와 응원, 축하를 보내준 모든 분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오늘부터 6월 예약이 시작됐어요. 네이버에서 ‘무지개 신당’을 검색하시면 됩니다. 많은 분들과 신명 나는 굿판에서 만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오늘도 따스운 하루 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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