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밍아웃, "그래, 나 더럽다. 어쩔래?"
어린이날, 나는 신내림을 받았다. 장소는 계룡산, 태백산, 일월산도 아닌 국회 앞.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단식농성 현장이었다. 나의 ‘신선생님’은 퀴어무당 홍칼리. 집회 현장에 가기 전, 정성스레 준비한 음식과 의례 도구들, 각종 의식으로 나를 정화해주던 칼리는 말했다. “신내림을 일종의 자격이나 미신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데 우리 모두는 이미 신이고, 신내림은 하나의 의례에 불과해요. 만물에 신이 깃들어 있는걸요. 그래서 오늘은 만물을 되살리는 붉은 정령들 퍼포먼스를 함께 하며 신내림을 할 거예요. 우리 오늘 집회 현장을 굿판으로 만들고, 신명 나게 놀아 봐요.”
붉은 정령들(Red Rebel Brigade) 퍼포먼스는 2019년 영국에서 진행된 기후위기 대응 촉구와 멸종 반란을 위한 대규모 시위에서 비롯됐다. 내가 발 딛고 있는 공간을 적극적으로 지켜내고 돌보는 일, 그리고 나 역시 연루된 인류의 폭력으로부터 사라져가는 존재들을 위한 시위. 그로부터 시작된 퍼포먼스를 매개로 신내림을 한다니. 이보다 더 적절하고 뭉클할 수는 없었다.
해가 중천을 지날 때쯤, 나는 온몸에 새빨간 천을 두르고 있었다. 코끝부터 발끝까지 온통 빨간색으로 뒤덮였고, 머리에는 면사포처럼 생긴 빨간 천이 올려졌다. 온몸에 피를 두른 것 같기도 하고, 어떤 정령을 몸속으로 들이는 것 같기도 하고, 악마와 결혼하는(?) 듯한 묘한 기분이 들었다. 준비를 마친 붉은 정령들은 서서히 원을 그리며 한 자리에 모였다. 왼 손바닥은 위로, 오른 손바닥은 아래로 향하게 편 뒤 팔을 벌려 원의 틈을 채웠다. 서로의 기를 나누는 시간이다. 잠시 눈을 감고 호흡을 내쉬었다. 세 번의 호흡이 이어졌다. 오롯이 나를 위한 호흡 한 번, 손바닥을 통해 연결된 우리들을 위한 호흡 한 번, 발 딛고 있는 이 지구의 온 존재를 위한 호흡 한 번.
명상이 끝난 후 정령들은 집회 현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평소 걸음걸이의 0.25배쯤 되는 속도로 한 걸음 한 걸음 발자국을 떼며 일렬로 걸어갔다. 팔을 벌리거나 오므리거나 위로 뻗거나 기도를 하면서 온 우주를 느꼈다. 발밑의 땅을 느꼈다. 삼십 분이 지났을 때쯤, 정령들은 국회 정문 앞에서 다시 원을 그리고 있었다. 하늘을 향해 온몸을 뻗어내기도, 땅바닥에 몸을 바짝 엎드려 귀를 기울이기도 하며 지금 이 순간에 집중했다.
느린 발걸음을 옮겨 집회 본부에 도착했을 때, 퍼포먼스는 끝이 났다. 천천히 옷을 벗었지만, 여전히 영혼은 멍했다. 어질어질한 기분에 눈두덩이 뒤로 무언가가 보이는 것만 같았다. 이게 칼리가 말한 ‘트랜스 상태’일까. 바로 자리를 옮겨야 하는 바람에 친구의 부축을 받았지만, 내내 여운은 가시질 않았다. 첫 발걸음을 떼며 느낀 묘한 감정들, 느린 발걸음 속에 울컥 나온 눈물들, 국회 정문 앞 땅바닥에 귀를 대고 느낀 이질감들. 지금 이 글처럼, 뭐 하나 명료하게 설명되는 게 없었다.
평생 내게 신내림 같은 건 없는 단어라고 생각했다. 무속인, 무당, 점집. 이런 단어들도 마찬가지다. 그간 내 삶을 찾아온 수많은 신령은 우울증, 조현증세, 공황장애, 환각, 환청, 기력 없음 등의 이름을 부여받고 떠나갔다. ‘페미니즘 강연을 주최한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기독교 대학에서 쫓겨난 후에도 그랬다. 내가 지금 아프고 힘들고 동굴 속에 갇힌 건, 그저 부당한 현실에 저항하다가 몸과 마음이 상한 거야. 일면 맞는 말이지만, 그렇게만 설명할 수 없는 시간들이 이후에도 이어졌다. 갑작스레 공황을 느껴 이 세계 바깥으로 튕겨져 버리거나 귓가에 안 들리던 소리가 들리던 것처럼.
어릴 때로 거슬러 올라가면 더 설명하기 어려운 장면들을 마주한다. 원가족이 사는 집에는 아직도 원 모양에 묘한 문양이 새겨진 딱지 같은 것들이 붙어 있다. 대부분은 내가 살던 방 앞에 있는 화장실에 자리 잡고 있는 것들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수맥을 바꾸는 일종의 치료 조치였다. 10년 전, 지금 살던 집으로 이사를 했을 때 나는 일 년 가까이 곤욕을 치르고 있었다. 수시로 보이는 ‘헛것’들과 가위눌림 때문이다. 잠을 제대로 자는 날을 손에 꼽았고, 대부분은 멍한 상태로 보냈다. 처음에는 사소한 일로 치부하던 부모님도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자식이 눈에 띄게 망가지고 있었으니까.
그로부터 몇 달 뒤, 평생 ‘기독교 집안’이라고 자부해 온 부모님도 끝내 무언가를 결심한 듯 보였다. 내가 학교 간 사이를 틈타 수맥 관련 전문가를 부른 거다. 어느 날 못 보던 설치물들이 집안 곳곳에 생긴 걸 발견한 나는 아빠에게 물었다. “무슨 공사했어요?” “응, 뭐 집안 보수 때문에 여기저기 뭐 붙어 있으니까 절대 떼지 마.” 당시엔 정말 그런가 보다 했지만, 훗날 술을 걸친 아빠는 부끄러운 고백인 듯 말했다. “사실 그때 그거, 네 방 수맥 치료한 거야.”
내 방 위로 거대한 수맥이 십자(十) 모양으로 흐르고 있었다고 한다. 그것도 정확히 내가 잠드는 침대 위로 교차로가 생겨서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들었다. 끝내 취한 조치는 그 수맥의 흐름을 약간 틀어서 교차로를 바꾸는 일. 결과적으로 나는 아빠의 거짓말 이후로 거짓말처럼 일상을 회복했다. 그 설치물이 뭔지도 모른 채로 평소처럼 잠에 들었고, 평소처럼 휴식을 취했다.
왜 이런 경험들이 우르르 떠오를까. 분명 나는, 그리고 많은 사람은 기존의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많은 현상들을 보고 듣고 겪는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경험을 무시하거나 다른 언어를 찾거나 신기한 일 정도로 남겨놓는다. 혹은 병원을 찾아다니며 진단명을 찾거나 신의 힘을 빌린다. 그런데 이때 어떤 방법을 찾았는지, 그리고 어떤 언어를 만났는지에 따라 이상한 위계질서 하나가 비집고 튀어나온다. 진단명을 찾지 못한 만성질환자는 쉬이 ‘꾀병’이 되고, 끝내 무속의 언어를 찾아 삶을 회복하고 타자를 위로하게 된 사람은 ‘사기꾼’이 되는 사이, 양의학에 의한 진단명은 병으로 승인되어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기성 언어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은 학문이 되어 권위를 인정받는 것처럼 말이다.
나 역시도, 내가 ‘신병’을 앓고 있다고 말하는 건 생경했다. 여태껏 나는 책을 쌓아놓고 정신질환, 아픈 몸, 인정과 분배의 문제, 소수자와 자본주의의 문제를 공부하고 고민하며 내 삶을 설명하기 위해 노력했다. 덕분에 많은 언어를 만났고, 그 언어들이 나를 살렸다. 그렇지만 우리가 살기만 하려고 숨 쉬는 건 아니다. ‘잘’ 살고 싶었다. 살려내고 싸우는 언어를 얻었다지만, 그 이후의 일상에서는 자주 헤맸다. ‘피해자’라는 단어로 나를 설명하기 꺼리지만, 동시에 피해자에게 피해 이후의 일상은 어떻게 가능할까 고민했다. 한껏 싸우다가 남은 일상을 어떻게 꾸려야 할지 질문하며 나는 자주 멈칫했고, 결국 침대 속에 파묻혔다.
나의 ‘신선생님’, 퀴어무당 칼리를 만난 후 나는 일상 되살리는 법을 조금씩 익히고 있다. 이제는 인정해야 했다. 내게는 신병이 있었고, 그러한 신병을 통해 삶을 살리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신병은 별것 아닌, 다름 아닌 지금의 나를 설명해주는 중요한 키워드라고. 이걸 풀어 내줘야 내가 그 다음 삶을 꾸려나갈 수 있다고. 그렇게 나는 무지개 무당, 무무가 됐다.
기독교 대학을 쫓겨(찢고)나온 무당. 늘 그랬듯 이 글도 바람을 타고 어디선가 때 묻은 소음을 낳을 거다. 소곤소곤, 비웃음, ‘역시 음란의 영이었어’ 같은 합리화가 벌써부터 들리는 것 같다. 꼭 학교나 기독교 관련한 소음이 아니더라도 이 이야기를 꺼내는 게 쉽지는 않았다. 여전히 만연한 무속인, 미신, 무당에 대한 납작한 인식들 때문이다. 나조차도 버리지 못한 편견과 의심들. 누구에게나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들이 있다. 일부일처를 벗어난 폴리아모리나 섹슈얼리티의 위계를 깨는 섹스들처럼 무당도 그렇다. 오죽하면 커밍아웃에 빗댄 ‘무밍아웃’이란 말이 있을까. 여기선 나 역시도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서 나를 이런 방식으로 드러내는 게 여전히 괜찮을지 잘 모르겠다.
이미 오물을 잔뜩 뒤집어썼는데 조금 더 묻으면 어때, 싶으면서도 여전히 두려운 마음. 그럼에도 지금 이 이야기를 조심스레 펼쳐낼 수 있었던 건, 순전히 식구들 덕분이다. “스스로를 못 믿겠으면 너를 믿는 우리를 믿어. 믿지 못한다면 그건 네가 아니라 우리를 믿지 못 하는 거야. 알았지?”라는 한 마디. 소중한 마음들에 화답하며 이제 나도 끝내 말하고 싶다. <붉은 선>의 칼리처럼. “그래, 나 더럽다. 어쩔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