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쓰는 요가 수행자 Jul 05. 2024

다행이다. 장마라고 계속 비가 내리지는 않아서

장마를 맞이하는 옥수수집 딸내미의 자세

인터넷 뉴스를 가급적 보지 않은지 좀 됐습니다. 집에 TV를 없앤 지도 1년쯤? 가장 믿을만한 소식통은 세상 돌아가는 걸 알기 좋아하는 신랑이 전해주는 말들입니다.


이번주는 장마가 시작된다고 합니다. 이 소식마저 에어컨 청소를 하러 오신 아줌마를 통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내일부터는 비가 온데요. 장마 시작이라는데."


벌써 그렇게 됐나 생각하기 무섭게 다음날 아침 비가 퍼붓기 시작합니다.




비가 내리던 첫날 저는 사실 좀 무서웠습니다. 학교에 도착해서 수업을 하는데 창 밖의 빗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옵니다. 초등학교 시절 비가 이렇게 내리던 날들이 있었습니다. 그때의 나는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빗소리를 들었습니다.


신발이 질척이는 물에 빠질 것은 당연했고, '집까지 잘 갈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었죠. 비가 오다 보니 학교는 어둡습니다. 아이들이 왜 오늘은 복도가 어둡냐고 묻습니다. 맞아, 바로 이 느낌이었지. 어두운 학교 쏟아지는 비.


종례를 하고 아이들을 배웅하러 나가서 비소로 장맛비와 얼굴을 마주했습니다. 8살짜리 손에 쥔 작은 우산. 그 위로 세차게 내리치는 빗줄기. 어른인 내가 커다란 우산을 쓰고서도 몇 걸음 걸어가기 어려운 비가 내리치고 있었습니다.




다행히도 대부분은 장화를 신었고, 몇몇은 그냥 신발이었습니다. '이 비에 저 신발을 신고 가면 다 젖을 텐데.' 마중 나온 학부모 한 명이 다른 아이를 보고 걱정스레 말합니다.


비를 앞에 두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잘 가라고 조심히 가라고 손을 흔드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빗속으로 뛰어들었고 씩씩하게 걸어갔습니다.




비가 일주일이고 계속되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잠시 들었습니다. 마침 쉬는 시간에 한 아이가 와서 "선생님 일주일 내내 비가 온대요!"하고 말하고 간 참이었습니다.


그런 걱정을 하면서 하루를 지내고 나니 뜻밖에도 다음날은 비가 그쳤습니다. 습기는 여전하지만 비가 그친 하늘을 만나니 감사하기까지 합니다. 비 대신 바람을 맞으니 기분이 훨씬 좋습니다. 다음날에는 햇빛도 잔잔히 들었습니다. 아, 장마라고 계속 비만 오는 건 아니구나.




밭에서 자라는 옥수수는 늘 그 자리에 서 있습니다. 뜨거운 여름의 햇빛도, 하늘이 뚫린 듯이 내리는 장맛비도, 몰아치는 바람도 그 자리서 버텨낼 수밖에 없지요. 그래도 다행입니다. 장마라고 해서 계속 비가 내리지는 않아서.


가물었을 때 참 반가웠던 소나기

그러니까, 하늘에 구멍이 뚫려서 세상이 물속에 떠내려 갈 것 같은 날이 오더라도 딱 하루만 더 눈감고 참아보면 어떨까요? 다음날은 비가 그치고 바람이 불어올 수도 있으니까요.


*사진: UnsplashRyoji Iwata

이전 03화 옥수수 씨앗이 쏙쏙 들어가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