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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요가 수행자 Jul 05. 2024

다행이다. 장마라고 계속 비가 내리지는 않아서

장마를 맞이하는 옥수수집 딸내미의 자세

인터넷 뉴스를 가급적 보지 않은지 좀 됐습니다. 집에 TV를 없앤 지도 1년쯤? 가장 믿을만한 소식통은 세상 돌아가는 걸 알기 좋아하는 신랑이 전해주는 말들입니다.


이번주는 장마가 시작된다고 합니다. 이 소식마저 에어컨 청소를 하러 오신 아줌마를 통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내일부터는 비가 온데요. 장마 시작이라는데."


벌써 그렇게 됐나 생각하기 무섭게 다음날 아침 비가 퍼붓기 시작합니다.




비가 내리던 첫날 저는 사실 좀 무서웠습니다. 학교에 도착해서 수업을 하는데 창 밖의 빗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옵니다. 초등학교 시절 비가 이렇게 내리던 날들이 있었습니다. 그때의 나는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빗소리를 들었습니다.


신발이 질척이는 물에 빠질 것은 당연했고, '집까지 잘 갈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었죠. 비가 오다 보니 학교는 어둡습니다. 아이들이 왜 오늘은 복도가 어둡냐고 묻습니다. 맞아, 바로 이 느낌이었지. 어두운 학교 쏟아지는 비.


종례를 하고 아이들을 배웅하러 나가서 비소로 장맛비와 얼굴을 마주했습니다. 8살짜리 손에 쥔 작은 우산. 그 위로 세차게 내리치는 빗줄기. 어른인 내가 커다란 우산을 쓰고서도 몇 걸음 걸어가기 어려운 비가 내리치고 있었습니다.




다행히도 대부분은 장화를 신었고, 몇몇은 그냥 신발이었습니다. '이 비에 저 신발을 신고 가면 다 젖을 텐데.' 마중 나온 학부모 한 명이 다른 아이를 보고 걱정스레 말합니다.


비를 앞에 두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잘 가라고 조심히 가라고 손을 흔드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빗속으로 뛰어들었고 씩씩하게 걸어갔습니다.




비가 일주일이고 계속되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잠시 들었습니다. 마침 쉬는 시간에 한 아이가 와서 "선생님 일주일 내내 비가 온대요!"하고 말하고 간 참이었습니다.


그런 걱정을 하면서 하루를 지내고 나니 뜻밖에도 다음날은 비가 그쳤습니다. 습기는 여전하지만 비가 그친 하늘을 만나니 감사하기까지 합니다. 비 대신 바람을 맞으니 기분이 훨씬 좋습니다. 다음날에는 햇빛도 잔잔히 들었습니다. 아, 장마라고 계속 비만 오는 건 아니구나.




밭에서 자라는 옥수수는 늘 그 자리에 서 있습니다. 뜨거운 여름의 햇빛도, 하늘이 뚫린 듯이 내리는 장맛비도, 몰아치는 바람도 그 자리서 버텨낼 수밖에 없지요. 그래도 다행입니다. 장마라고 해서 계속 비가 내리지는 않아서.


가물었을 때 참 반가웠던 소나기

그러니까, 하늘에 구멍이 뚫려서 세상이 물속에 떠내려 갈 것 같은 날이 오더라도 딱 하루만 더 눈감고 참아보면 어떨까요? 다음날은 비가 그치고 바람이 불어올 수도 있으니까요.


*사진: UnsplashRyoji Iwa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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