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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다시 돌아온 그곳

모든 시간은 지나간다.


동동이는 21년생 코로나 베이비다. 코로나만 겪었어도 힘들었을 텐데, 엄마만 됐어도 힘들었을 텐데. 둘 다를 한꺼번에 겪다 보니 그때는 세상이 참 무서웠다.


육아를 하던 시절 눈만 감으면 여행을 떠날 수 있었다. 혼자 집에서 눈을 감으면 여행의 순간들이 떠올랐다. 그때의 감정이 냄새가 훅 끼쳐와서 마치 그곳에 가 있는 것 같았다.


그 시절 결혼한 친구들은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갔다. 모두가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코로나에 힘들어하던 시절이었다.




이제 우리 가족은 두 명이 아닌 세 식구가 되어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가게 되었다. 첫 여행지는 베트남 나트랑이다.


나트랑은 임신 전에 엄마를 모시고 효도여행을 갔던 곳이라서 여행 준비를 하는데 많은 노력이 필요하지 않았다. 4살 아이와 가는 여행이다 보니 잘 아는 곳부터 도전했다.


여행을 계획을 짜는 것도 효도 여행과 많이 다르지 않았다. 에어컨 바람 빵빵 나오는 곳, 편안한 곳으로 모시고 다닐 수 있도록 노력했다.




동동이는 짐 쌀 때부터 콧노래를 부르더니 5시간의 긴 비행도 잘 해냈다. 호텔에서도 잘 놀고 마트에서는 장난감을 사달라고 졸랐지만 사준 장난감들을 알뜰히 가지고 놀았다.



워낙 더위를 많이 타서 밖에는 나가고 싶지 않다고 했지만 막상 나가면 수영장에서 수영도 한참 했다.


행복하다, 그치?


두명일 때는 어떻게 세 가족이 될 수 있는지 궁금했다. 임신을 했어도 마지막 병원에 아이를 낳으러 갈 때까지 세 가족이 된다는 게 실감이 안 났다.



이제는 동동이가 엄마 아빠도 발로 뻥뻥 차고 잠꼬대도 해 대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느끼게 해 준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커다란 침대 하나에 세 식구가 함께 누워 자며 밤을 보냈다.




그 와중에 동동이는 드디어 계란 알레르기를 졸업했다. 마지막 피검사에서 의사 선생님이 결과지를 읽어주시면서 익은 계란은 먹어도 된다고 하셨다.


계란 알레르기로 음식을 가려먹고 비건 식당을 찾고 비건 빵을 찾아 먹었는데 그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행하는 동안 계란이 들어있는지를 묻지 않아도 되서 정말 행복했다.




나에게는 코로나도, 육아도 계란 알레르기도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무언가였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지나갔다.


힘든 시간 속에 있을 때는 끝이 잘 보이지 않았다. 얼마나 더 가야 이 길이 끝나는지 알 수 없어서 더 힘들었다.




여행을 다신 못할 것 같았다. 아이는 자라지 않을 것만 같았고, 계란은 영영 못 먹을 줄 알았다. 하지만 코로나는 끝났고. 아이는 말을 하고 뛰어다닌다. 계란이 들어간 음식도 조금씩 도전 중이다.


이 첫 여행은 다시 여행을 다닐 수 있다는 증거이고, 앞으로 더 멋진 곳들에 갈 수 있다는 희망이기도 하다. 우리는 떠났고 이제 무사히 여행을 마치고 있다.



앞으로 나의 인생에 더 멋진 날들이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대에게도 멋진 날들은 올 것이다.


비록 힘든 어느 순간을 지나친다고 해도 잊지 않았으면 한다. 곧 모든 것은 지나갈 거고, 꿈꾸는 날이 꼭 올 거라고!


나는 그렇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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