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에서 버틴 임신, 출산, 육아의 시간
아기와 산책을 하면서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어. 밖에 나온 사람들을 보는 눈빛이 달라졌지. 전에는 누가 아기가 예쁘다고 말을 걸어도 멀찌감치 떨어져서 예의상 인사를 받을 뿐이었어.
인사를 해보기로 마음먹은 첫날, 이렇게 많은 사람이 말을 걸어온다는 것에 놀랐어. 그전에는 내 표정이 좋지 않아서였을까. 말을 건네는 사람도 없었거든. 엘리베이터에서 인사를 나누기도 하고 잠깐 멈추는 건널목에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어.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기쁜 마음으로 인사를 하니 마음도 가벼웠어. 특히 나처럼 유모차를 밀고 있는 엄마와 또래의 아기들을 보면 먼저 ‘안녕’하고 손을 흔들기도 했지. 아기들은 나에게 동그란 눈을 맞춰 주었어.
원래의 나는 말을 거는데 참 인색한 사람이었어. ‘나는 나, 남은 남’을 충실히 지키며 인생을 살아왔거든. 여기에서 ‘나’는 오롯이 나 한 사람만을 의미했어. 가깝다고 생각되는 가족 사이에도 예외는 없었어.
가족이 나의 길에 걸림돌이 될까 봐 일부로 거리를 뒀어. 독립을 한 이후에 단 한 번도 가족에게 손을 빌린 일이 없었지. 반대로 가족을 위해 손을 내밀어 주지도 않았어. 우리 집은 작은 농사를 지어서 농지를 담보로 대출받은 빚이 항상 존재했거든. 사회인이 되어 완전히 독립한 건 가족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듣거나 가족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을 못 하는 게 싫었기 때문이야.
경제적인 지원뿐만 아니라 마음도 거의 쓰지 않았어. 동생이 대학을 가거나 휴학을 하거나, 나와는 상관없는 그들의 삶이라고 생각했지. ‘나의 삶’에 대해 고민하기도 바빴거든. 인천으로 막내 남동생을 데려왔을 때도 나보다 신랑이 더 적극적이었어.
이런 마음가짐으로 살다 보니 대학교 때 몇 차례 무너질 때도 있었어. 다른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방학에도 나는 집에 가지 않았어. 강원도 산골에 갇혀서 며칠을 보내다 보면 좀이 쑤셔서 버틸 수 없었지. 대학생 이후에 집에서 이틀 밤을 잔 게 아마 가장 오래 있던 걸 거야.
엄마는 월세만큼은 잘 넣어 주었지만 용돈은 항상 빠듯했어. 아르바이트나 과외, 멘토링으로 근근이 돈을 벌어 모자란 생활비를 마련했지. 마음이 힘든 날이면 집에 전화해서 마음을 털어놓기보다는 자취방에서 혼자 울었어. 그럴 때면 이 세상에 정말 나 혼자만 남았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 인생은 혼자야. 나는 내가 챙겨야 해.’
그런 내가 인사를 건네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었어. 그저 한번 부딪혀 보자는 마음으로 간신히 인사를 건넬 수 있었지. 그 사람을 나의 가장 가까운 누군가라고 생각해 보았어. 항상 같은 길목을 지나다녔으니 아마 오늘만 마주치지는 않았을 거야. 여태까지는 모르고 지냈지만 ‘사실 우리는 예전부터 가까운 사이였어요.’ 그런 느낌으로 건네는 인사였어.
그렇게 인사를 하고 다닌 지 좀 지났을 때 계속해서 마주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게 됐어. 맨 처음 만난 건 엘리베이터에서였지. 그날은 휴일이라 남편과 함께 유모차를 밀고 산책 나가는 중이었는데 17층에서 엘리베이터가 섰어. 커다란 웨건을 끌고 나가는 부부가 탔지. 한눈에 봐도 안에 있는 아이는 딱 우리 아기 또래였어. 아이는 안아달라고 보채다가 결국 아빠 품에 안겨서 만족스럽게 웃었지.
“몇 개월이에요?”
자연스럽게 개월 수를 물었는데 우리 아기보다 딱 한 달 늦게 태어난 같은 나이의 친구였어. 우리는 그렇게 엘리베이터에서 만나 얼굴을 익혔어. 그런데 그다음부터 이상한 일이 생겼어.
산책하러 갈 때마다 그 아기를 마주치는 거야. 집 근처 놀이터에서도 만났고 멀리 공원까지 갔을 때도 보였어. 남편이 3개월의 육아휴직을 하고 있어서 항상 부부가 함께 산책하는 모습이었지.
그렇게 엄마 아빠가 나란히 있는 걸 보면 사실 마음속으로는 부러움이 올라오기도 했어. 하루는 인사를 건넸더니 아기 아빠가 웨건에 매달려 있는 커다란 가방에서 이것저것 꺼내기 시작했어.
“당 떨어지죠? 저희는 이런 거 항상 가지고 다녀요.”
아기 아빠는 청포도 맛이 나는 동그란 알사탕 몇 개와 커다란 페트병에 든 아메리카노를 건넸어. 사탕을 입 안에 넣고 이리저리 굴리고 있으니 한결 기분이 나아지는 것 같았어. 멀어지는 부부의 뒷모습을 보면서 결심했어. 한 번만 더 만나면 운명이라고. 아기 엄마와 핸드폰 번호를 교환해야겠다고 말이야.
*사진: Unsplash의Holger Woizi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