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에서 버틴 임신, 출산, 육아의 시간
우리는 같은 동의 다른 층에 살았지만 처음 마주친 그전에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어. 정말로 마주친 적이 없는 걸까, 아니면 몰랐던 걸까. 우리는 일주일 만에 3번을 만났고 자연스럽게 핸드폰 번호를 물어볼 수 있었어.
아기 엄마에게 이름을 물어서 핸드폰에 꾹꾹 눌러 저장을 했어. 키가 크고 늘씬한 아기 엄마는 나보다 한 살 어린 동생이었지. 모르던 사람에서 언니 동생이 되는 순간이었어. 나는 우리 신랑과 엄마에게도 하트를 한 개 붙여서 저장했지만 나중에 이 동생에게는 하트를 두 개나 붙여버렸어.
연락을 하지 않아도 일단 밖에 나가면 마주쳤어. 심심하다 싶으면 저 멀리에 유모차를 끄는 익숙한 뒷모습이 보였지. 그러면 반갑게 손을 흔들었어. 유모차를 밀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 아이가 징징거려도 웃어넘길 수 있었어. 아장아장 걷는 아기의 손을 잡고 걸음마를 하는 길이 둘이라서, 바로 저기에 그 애가 있을 걸 알기에 의지가 됐어.
세 명이던 채팅방에 한 명이 늘어 네 명이 되었어. 낯설어하던 것도 잠시, 우리는 언제 처음 만났냐는 듯 함께 하는 친구들이 됐지. 마지막 조각이 드디어 맞춰졌다는 느낌이 들었어.
세 명이 있을 때 아들 엄마는 나 하나였거든. 딸들만 살 수 있는 머리핀이나 원피스, 프릴이 달린 아기자기한 옷들을 맞춰 입기라도 할 때면 왠지 아들이라서 혼자 슬펐어. 하지만 이제는 나도 짝이 생긴 걸!
“언니, 우리도 하나 사자. 아들도 할 수 있어.”
당장 아들이 함께 입을 수 있는 청 멜빵바지를 하나 샀어. 쇼핑을 짐으로 여기는 나에게 직접 골라 치수까지 맞춰 주는 그 애는 한 줄기 빛이었어. 그렇게 커플 옷이 하나 생기니 그 옷을 아이에게 입히고 여기저기 잘 돌아다녔어.
알고 보니 남편들은 정말 같은 나이의 친구였어. 항상 회사에만 있었던 신랑은 집 근처에서 만날 동네 친구가 하나도 없었지. 신랑은 회사 사람 말고 누군가 이야기를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는데 그런 신랑에게도 친구가 생기게 됐어.
기회를 보던 어느 날, 아기를 재우고 아랫집에서 만나는 거사를 이루었어. 그날은 정말이지 아기를 낳고 가장 행복한 날이기도 했어.
따스한 조명이 하얗고 깨끗한 집을 은은하게 비췄고, 커다란 텔레비전에서는 좋은 노래가 흘러나왔지. 드디어 길고도 길었던 모유 수유를 끝내고 처음으로 술을 마셔볼 수 있었어. 임신한 이후로 2년 만이었지.
“우리는 왜 이제야 만난 걸까? 그동안 분명 같이 아기를 키우고 있었을 텐데.”
우리는 서로에게 물었어. 아랫집 부부 역시 도움을 받을 곳이 아무 데도 없었대. 친정도 시댁도 멀리에 있었고 남편이 교대근무로 새벽 근무와 밤 근무를 번갈아 했거든. 최근에 와서야 육아휴직을 내고 함께 다니는 거라고 했어.
다른 아기 엄마들이 친정엄마가 오거나 일찍 퇴근한 남편 찬스가 있을 때도 나는 대부분 집에 혼자 있었어. 그럴 때면 혼자만 집에 있다고 속상해하곤 했는데 이젠 그럴 필요가 없어졌어. 우리는 언제든 놀이터에서 만났고 날이 좋으면 공원으로 유모차를 끌고 나갔어.
아쉬웠던 건 우리가 조금만 더 일찍 만났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거였어. 집에서 두려움에 떨며 아이랑 단둘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아래층에 오늘은 또 어떻게 보내야 하나 고민하는 엄마가 있다는 건 생각지도 못했어. 우리가 조금만 더 일찍 만났으면 덜 울지 않았을까.
*사진: Unsplash의Austin Kehmei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