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 속에 음악이 흐르는 곳

제주에서 만난 봄, 미술관에서 만난 오후

by 가글


비행기 창 너머로

제주행 비행기를 타면 늘 창가 자리를 고른다. 이륙하고 한 시간쯤 지나면 구름 사이로 바다가 보이기 시작하고, 곧이어 한라산이 나타난다. 그 순간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무엇이든 간에, 풍경과 묘하게 어울린다. 여행의 시작은 언제나 창밖을 내다보는 것에서부터다.


올봄에도 제주를 다녀왔다. 벚꽃이 만개하기 직전, 봉오리가 막 터지려는 그 시점이었다. 봄 제주 여행 코스를 미리 짜두었던 덕분에 동선이 깔끔했다. 공항에서 바로 동쪽으로 빠져서, 해안도로를 따라 천천히 내려갔다.



미술관이라는 쉼표

여행지에서 미술관을 찾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대부분 맛집, 카페, 전망대를 먼저 검색한다. 나도 예전에는 그랬다. 그런데 한번 여행 중에 미술관을 넣어보니, 그 하루의 리듬이 완전히 달라졌다. 걷고, 먹고, 보고를 반복하던 일정에 미술관이라는 쉼표가 들어간 것이다.


미술관에서 작품을 더 깊이 즐기는 방법이 따로 있다고 하는데, 나는 그냥 느리게 걷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작품 앞에 서서 30초만 더 머물러보면,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색의 미세한 차이, 붓터치의 방향, 작가가 의도했을 법한 여백.



우연히 들린 노래

제주 서귀포의 작은 카페에서 낯선 목소리를 들었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가 유독 귀에 걸렸다. 가사가 선명했고, 목소리에 힘이 있으면서도 과하지 않았다. 사장님에게 물어보니 요즘 주목받고 있는 가수라고 했다.


나중에 찾아보니 김가람이라는 가수의 최근 활동이 꽤 활발했다. 음악은 이렇게 우연히 만나는 것이 가장 좋다. 알고리즘이 추천해주는 곡보다, 여행지 카페에서 우연히 흘러나온 한 곡이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



걷고 나서야 보이는 것들

제주에서는 많이 걸었다. 올레길 한 코스를 완주하고 나니 무릎이 뻐근했다. 평소 운동을 안 하는 사람이 갑자기 하루에 2만 보를 걸으면 몸이 먼저 항의한다. 여행 다녀온 뒤에 무릎 관절 건강을 지키는 방법을 진지하게 검색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그래도 걷고 나서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차를 타고 지나치면 그냥 바다인데, 걸어서 해안을 따라가면 파도 소리의 높낮이가 구간마다 다르다는 걸 알게 된다. 바람의 방향도, 풀 냄새도, 돌담의 높이도 전부 다르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이어폰을 끼고 카페에서 들었던 노래를 다시 틀었다. 창밖에는 구름이 깔려 있었고, 해가 지고 있었다. 노래가 끝날 때쯤 김포공항 불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여행이 끝나면 늘 아쉽다고들 하는데, 나는 조금 다른 감정이 든다. 아쉬움보다는 충만함에 가까운 것. 풍경 속에 음악이 흐르고, 미술관에서 시간이 멈추고, 걷다가 무릎이 아프고 - 그런 것들이 모여서 하나의 여행이 된다. 다음에는 가을 제주를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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