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피는 며칠, 그 짧은 시간 속의 이야기
봄이 오면 어김없이 벚꽃 여행을 계획한다. 정확히는, 계획을 세우다가 결국 실행하지 못하고 사진으로만 보는 경우가 절반쯤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년 이맘때가 되면 가슴 어딘가가 간질거린다. 그게 설렘이 아니면 무엇이겠나.
벚꽃은 오래 피어있지 않는다. 만개한 상태로 버티는 시간이 고작 일주일 남짓이다. 비가 오면 그보다 빨리 지고, 바람이 세면 꽃잎이 흩날리며 금방 사라진다. 어쩌면 그 덧없음 때문에 해마다 설레는 게 아닐까 싶다. 내년에도 피겠지, 싶으면서도 올해 이 벚꽃은 다시 오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장미는 오래 피고 국화는 가을 내내 볼 수 있다. 그런데 사람들이 벚꽃을 보러 일부러 길을 나서는 건, 그 짧음이 일종의 절박함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지금 안 보면 1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감각. 그 감각이 여행을 부른다.
몇 해 전 처음으로 혼자 벚꽃 여행을 떠났다. 진해였다. 군항제 기간이었는데, 사람이 그렇게 많을 줄은 몰랐다. 기차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인파에 휩쓸렸고, 벚꽃을 감상했다기보다 그냥 흘러다녔다는 표현이 맞다. 그래도 좋았다. 이상하게도.
혼자였기 때문에 발길 닿는 대로 걸었다. 사람이 덜 붐비는 골목으로 빠져 나오니, 낡은 담벼락 위로 벚꽃 가지가 기울어져 있었다. 그 장면을 오래 봤다. 누가 보면 이상한 사람처럼 보였겠지만, 그 순간만큼은 정말로 아무 생각도 없었다. 그냥, 예뻤다.
벚꽃 여행의 묘미 중 하나는 그런 우연한 장면들이다. 계획대로 찍은 사진보다, 골목 모퉁이에서 갑자기 마주친 풍경이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 벚꽃 명소를 정리한 글을 보면서 행선지를 고르지만, 막상 도착해서 좋았던 건 지도에 없는 장소인 경우가 많더라.
설렘을 정의하기가 어렵다. 기대가 불안과 섞인 감각이라고도 하고, 지금 이 순간이 특별하다는 예감이라고도 한다. 벚꽃 여행을 앞두고 느끼는 그 감정은 조금 다르다. 불안보다는 기대 쪽에 가깝고, 특별함보다는 익숙하되 새로운 무언가에 대한 반응 같다.
매년 피는 꽃인데 왜 설레냐고 물으면, 그게 바로 이유라고 답하고 싶다. 매년 보는 꽃이지만, 올해의 나는 작년의 나와 다르다. 그러니 같은 꽃 앞에서도 감정이 달라질 수 있다. 지난해엔 피곤한 상태로 스쳐지나갔던 벚꽃 길을, 올해는 여유롭게 걸을 수 있게 됐다면 그건 전혀 다른 경험이다.
사실 벚꽃 여행은 핑계인 경우도 많다. 벚꽃을 보러 가는 게 아니라, 어딘가를 가고 싶어서 벚꽃을 이유로 삼는 거다. 일상을 잠깐 벗어나고 싶은데 마땅한 구실이 없을 때, 벚꽃이 피어준다. 고맙다는 생각마저 든다.
올봄에는 봄에 가장 먼저 벚꽃이 피는 여행지를 정리한 글을 참고해서 좀 일찍 가볼까 생각 중이다. 남쪽부터 먼저 핀다는 걸 알면서도 매번 서울에서 피길 기다렸는데, 이번엔 꽃을 따라 이동해보는 것도 재밌겠다 싶었다.
여행을 가야겠다는 결심 자체가 이미 설렘의 일부다. 어디를 갈지 검색하고, 기차를 예매하고, 어떤 카페에 들를지 찾아보는 그 과정 전체가 여행이다. 벚꽃은 그 과정의 시작점이 되어준다.
벚꽃이 지고 나면 초록 잎이 올라온다. 화사하던 나무가 갑자기 평범해진다. 그 전환이 조금 쓸쓸하기도 하지만, 그 쓸쓸함 덕분에 벚꽃의 기억이 더 선명해진다는 걸 이제는 안다.
좋은 여행은 끝나고 나서도 오래 남는다. 벚꽃 여행이 특히 그렇다. 꽃잎이 흩날리던 길, 사람들이 웃으며 사진을 찍던 광장, 바람이 불었던 순간의 온도. 그런 것들이 쌓여서 봄이라는 계절의 기억을 만든다. 올봄도 그 기억 하나를 더 만들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