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고 나서도 후회가 없는 화
화를 현명하게, 지혜롭게 내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화를 꼭 내야 하는 순간에는 내야 합니다. 그런데 화를 내다보면 자꾸만 내가 전하려고 하는 내용이 벗어날 때가 많아요. 감정이 앞서 원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죠.
화라는 감정이 부정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이고, 나를 지켜주는 보호의 역할도 하죠.
아이는 가정에서 ‘화’라는 감정을 다루는 법을 배웁니다. 엄마가 화를 잘 내는 방법을 보여줘야 아이도 엄마를 통해 배울 거예요. 나를 불쾌하게 하는 사람이 있다면 화를 내야 하고, 해선 안 되는 행동을 할 땐 확실하게 표현해야 합니다. 아이가 밖에서 자기를 함부로 대하는 타인에게 상처받고는 한마디도 못하고 집에서 힘들어한다면 부모 마음은 더 힘들 거예요. 요즘 사회가 가만히 있으면 가마니인 줄 알아요. 호구 잡히지 않으려면 필요한 순간에 화를 내야 합니다. 엄마를 통해 화를 잘 내는 법을 배우면 우리 아이도 어디 밖에서 엄하게 당하고 오지 않을 거예요.
화를 잘 못 낸다는 건 어떤 것일까요?
- 분에 못 이겨 마음에도 없는 심한 말을 하고 후회하는 일
- 과거 얘기부터 시작해서 부분을 전체로 싸잡아 비난하는 일
- 당장 행동을 멈추게 하기 위해 윽박지르거나 물건을 던지거나 때리는 일
- 아이의 작은 잘못이 도화선이 되어 내 화풀이를 하는 일
- 말꼬투리를 잡아 논제를 벗어나는일
- 상대의 약점으로 후벼파는일
엄마가 화를 잘 못 내면 아이는 엄마가 왜 화가 났는지 이유도 모른 채 공포심과 상처만 생겨요. 엄마가 화낸 후 후회할 것도 뻔하고요. 또한 이런 화를 엄마로부터 아이가 배우지 않길 바랄 겁니다. 부부싸움 중에도 화를 내는 방법이 잘못되어 문제가 생기는 경우도 많아요.
1. 나와 타인을 해치는 행동이라면 단호하게.
화는 꼭 내야 하는 순간에, 단호하게 상대가 잘못을 인식하게끔 말하면 됩니다.
엄마가 아이에게 꼭 화를 내야 하는 때가 있습니다. 위험한 행동을 할 때, 남에게 피해 주는 행동을 할 때. 아이도 혼날 짓 했으면 혼나야죠. 엄마 때리면 화내야 합니다. 동생이나 친구 때리면 그 자리에서 바로 따끔하게 말해야 합니다. 엄마가 꼭 주의할 점은 ‘화풀이를 하지 말자’. 그럼 또 엄마가 후회하게 되니까요. 후회하지 않는 화가 잘 낸 화라고 생각해요. 정당하게 화를 꼭 내야 할 상황에서, 아이에게 애정이 있어서 낸 화는 ‘잘 낸’ 화입니다. 아이를 위해 혼을 낸다거나 훈육을 한다는 것과 비슷한 개념이죠.
아이들이 생각보다 남을 잘 때립니다. 엄마도 잘 때리고, 동생도 잘 때리고, 어린이집에서 친구도 잘 물어요. 첫째 딸과 둘째 아들이 연년생이다 보니 점점 덩치가 비슷해지면서 둘이 엄청나게 싸워요. 장난감(흉기)을 가지고 상대방 머리를 내리친다던가, 상대방 위로 올라타서 깔아뭉개는 경우가 있어요. 엄마가 바로 개입합니다. 즉각 둘을 분리시키고 매번 강하게 말합니다. “때리면 안 돼.”, “위험해.” (한시도 눈을 뗄 수가 없어요…ㅋ)
엄마도 아이한테 자주 맞아요. 특히 머리카락 뜯거나 얼굴 공격. 잠들기 전 뒹굴거리다가 자기도 모르게 퍽 친 거라면 아프고 화가 나도 지나갈 수 있지만 일부러 때린 것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첫째가 잠투정이 심한 편이라 졸린데 안 자려고 발악할 때마다 소리 지르면서 엄마를 잘 때려요. 즉각 아이의 눈을 마주하고 말합니다. 분명하고, 단호하게. “아, 이 행동은 하면 안 되는구나” 하고 바로 알아들을 수 있도록요.
첫 발령 때 중학교 2학년 담임을 맡았어요. 중2병이 뭔지 제대로 알게 되었죠. 담임선생님들이 정말 말 안 듣고 제멋대로로 구는 아이들 때문에 다들 힘들고 지쳐하고 있었어요. 어느 날 부장선생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아이들이 한 번만에 바뀔 거라 생각하지 마라. 절대 쉽게 안 바뀐다. 선생님이 계속 올바르게 인도하면 열명 중에 한 명은 바뀔 거다. 백번 말하면 한 번은 귀 기울일 거다. 계속 끊임없이 말해줘야 한다. “
중학생도 그런데 아직 어린 우리 아이들은 훨씬 더하겠죠. 알지만 잘 고쳐지지 않는 행동들, 끊임없이 여러 번 단호하게 알려주면 되는 거예요.
2. 욱하고 때리고 폭언을 했다면 꼭꼭 사과한다.
정문정 작가님의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 책을 재밌게 본 기억이 있습니다. 나에게 갑질을 하는 누군가에게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대한 내용이죠. 지금은 이런 생각이 드네요. 내가 아이에게 무례하게 대하고 있지는 않는지. 갑질하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보게 됩니다.
화를 ‘잘 못’ 냈다면 아이에게 상처가 되지 않도록 꼭 사과해야 합니다. 문제 행동을 즉각 중지하기 위해서 아이를 때리는 경우도 있죠. 저도 급할 때는 손이 나가던 때가 있었습니다. 동생을 때린다던가, 정말 엄마가 참다 참다 뚜껑 열릴 때. 예전에는 가정에서든 학교에서든 말 안 들으면 맞아야 되는 시절이 있었죠. 지금은 세대가 바뀌었어요. 때리는 것은 결국 아무리 좋은 의도였어도 위계에 의한 폭력인걸로요. 2011년 3월부터 초중등교육법이 개정되어 학교에서도 체벌금지가 생겼어요. 현재 30대 이상의 성인들은 (특히 군대 다녀온 남자들은 더욱) 잘못하면 맞은 적이 있어서 ‘아이가 말 안 들으면 맞아야지’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어요. 좀 맞아야 정신 차린다고요. 저도 그랬거든요.
아이가 맞으면 진심으로 자기 행동을 반성을 하는 게 아니라, 공포감에 그 행동을 그만둘 때가 대부분이에요. 아이를 때려서 바로잡는 것 말고 교육적인 다른 방법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때리는 것은 더 이상 정당화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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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적으로, 이상적으로는 그래요. 머리로는 암요 알지요. 구구절절 옳은 말입니다…ㅎㅎㅎㅎ
하지만 현실적으로 매일 아이와 씨름하는 엄마는 결국 폭발할 때가 있어요.
훈육의 차원이 아닌, 엄마 마음이 조급해서, 엄마가 너무 힘들어서 막말이나 욱하거나 짜증 섞인 화를 낼 수 있죠. 그랬다면 아이에게 사과해야 합니다. 윽박지르고, 아이에게 비난의 말을 퍼붓거나, 아이의 잘못이 아닌데도 아이에게 화풀이했다면 엄마들은 자책하게 됩니다. 꿀밤만 한 대 때려도 내 마음이 더 아픕니다. 엉덩이만 한 대 때려도 이것이 아동학대인가 싶어 엄마 혼자 가슴이 철렁해요. 그걸 엄마 혼자 생각할 것이 아니라 진심을 담아 아이에게 표현해야 합니다. 따뜻하게 안아주고 엄마가 잘못했다고 미안하다고 말하면 아이도 금방 누그러져요.
사실은 아이들도 알고 있어요. 엄마가 왜 화가 났는지. 자신이 정말 무언가를 잘못했고, 그 과정에서 엄마가 화를 냈다는 걸요. 사과를 한다면 아이는 엄마가 불같이 화를 냈더라도 금방 용서하고 마음을 풉니다. 엄마가 잘못을 인정하는 모습을 보이면 아이도 엄마의 마음을 더 알아줍니다. 그리고 더 잘하려고 노력하더라고요.
아이들은 마지막 장면을 잘 기억한대요. 육아에는 항상 엔딩이 중요한 거죠. 하루종일 잘 놀아주고 마지막에 재우면서 버럭 화내버리면 말짱 도루묵이에요. 반대로 아이에게 못 참고 화풀이를 했다면 자책은 그만하고 마무리를 잘하면 됩니다. 마지막 장면을 엄마가 미안하다고 사과하며 꼭 안아주는 걸로 기억하도록요. 미안하다는 한마디가 가지는 힘은 생각보다 큽니다.
아이와 엄마도 어짜피 인간관계이기 때문에 서로 불편한 상황이 생기면 화를 잘 내고, 잘 푸는게 맞아요.
“화를 낼 때는 단호하게, 욱했다면 꼭 사과하기.”
후회하지 않는 화가 잘 낸 화라고 생각해요. 화를 꼭 내야 할 상황에서, 아이에게 애정을 가지고 낸 화는 ‘잘 낸’ 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