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경희 Mar 03. 2023

2. 유일한 전우, 남편과 싸우지 않기로 다짐하다.

희생 따위 개나 줘 버려

육아맘에게 남편과의 관계는 너무 중요해요. 힘든 하루하루에 남편의 퇴근은 한줄기 빛과 같죠. 내 인생의 중요한 이 과정을 함께 하는 이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든든합니다.  

남편과 잘 지내면 육아 전우가 제 할 일을 잘해주고 같이 으쌰으쌰 모드가 발동됩니다. 그럼 훨씬 덜 힘들게 육아할 수 있고, 진짜 내편과 싸움으로 인한 에너지 낭비가 없어 좋아요. 남편과 싸워서 집안 분위기 안 좋아지면 애들도 피해봐요. 위축되고 눈치 보게 되죠. 아이가 화풀이 대상이 되면 안 되는 것처럼 남편도 내 육아 스트레스의 화풀이 대상이 되면 안 됩니다.


육아 동지를 잃으면 노동의 측면에서도 힘들지만, 정신적 기쁨을 잃어버리는 것도 힘들어져요. 육아의 힘듦을 버틸 수 있는 이유 중의 하나가 아이의 사랑스러움을 함께 보는 거잖아요.

웃긴 게요. 아이의 예쁜 짓은 남편이랑 같이 봐야 제맛이에요. 혼자서는 그냥 넘어갈 작은 행동도 남편이랑은 깔깔 넘어가게 돼요. 아이의 작고 고운 말 한마디, 재롱도 남편이랑 같이 봐야 재밌어요. 혼자 보면 영~ 감흥이 떨어져요. 확실히 지랑 나랑 같이 만든 애가 맞나 봐요. 


엄마들은 힘들수록 남편에게 화를 내요. 남편 퇴근만 기다렸으면서, 웃으면서 반겨주는 게 아니라 이미 머리끝까지 화가 나서 도깨비눈으로 맞이를 하죠. 힘든 날일수록 더욱요. 그런데 화를 내면 낼수록 남편이 내가 원하는 그깟 우쭈쭈 좀 안 해주고 되려 되받아 치면서 싸움이 시작됩니다. 남편도 힘드니까요. 사람은 자기 힘든 것만 보여요. 내 코가 석자인데 타인의 힘듬까지 배려가 잘 안 됩니다. 작년에 월드컵 때 안정환 해설위원이 한 말이 떠오르네요. “내가 힘들면 상대도 힘들다.”


고생하고 희생할수록 남편을 향한 화는 커집니다. 안 해도 되는 고생은 괜히 사서 하지 마세요. 나는 아니겠지 해도 ‘보상심리’가 결국은 남편과의 관계를 망치게 하더라고요. 남편이 회사에 그냥 일하러 가는 거지 엄청난 희생을 하러 가는 건 아니잖아요. 딱 그만큼의 직업정신으로 엄마도 집에서 일하면 됩니다. 휴가도 안주는 거지 같은 회사네~ 하고 말이에요. 회사에서는 시키지도 않은 일 알아서 찾아서 하는 사람 잘 없잖아요. 그런데 엄마들은 상대방이 해달라고 한 것도 아닌데 너무 열심히 하고서는 결국 폭발하게 됩니다.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희생은 개나 줘버리고 보상은 내가 스스로 하는 게 빨라요. 남편에게 어떤 걸 기대했다가 되려 싸움 만들어서 내 유일한 전우를 잃는 바보 같은 짓은 하면 안 됩니다. 남편이랑 싸우는 건 아이들에게도 너무 큰 고통이에요. 엄마 아빠가 싸우는 게 트라우마로 된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그 순간들을 초단위도 기억하기도 한대요. 방황하는 아이들의 큰 이유가 부모님의 불화잖아요. 


저에게는 그놈의 회식이 늘 싸움의 발단입니다. 육아맘에게 남편의 부재는 너무 큰 시련이니까요. 아기 둘을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하는 일이 말이 쉽지 실제로 해보면 진짜 극한직업이에요. ‘먹인다’이 세 글자에 들어가는 노동이 어마어마하죠. 온 집안이 애가 먹다 뱉은 것, 손에 쥐고 도망가다 으스러진 것, 찐득찐득 한 밥풀이 식탁 밑에 우수수수. (이하 생략하겠습니다.) 특히 잠드는 시간이 다른 첫째와 둘째를 혼자서 각각 재우는 일이 제게는 너무 큰 미션입니다.


도돌이표처럼 주기적으로 돌아오는 회식날의 다툼이 싫어서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봤어요. 다들 나와 비슷한 마음이더군요. 그렇다고 사회 생활하는 남편을 막을 수도 없고요. 자기도 내키지 않는데 가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상황을 바꿀 수 없으면 내 생각을 바꾸는 게 제일 빠릅니다. 남편과 싸우지 않고 현명하게 잘 지내는 방법을 자꾸 연구하고 실천해 보니까 훨씬 낫더라고요. 그 외에도 남편을 바꾸려 할 때는 오히려 싸움만 생겼는데, 내가 살짝만 바뀌어도 남편과의 관계가 훨씬 좋아졌어요. 신기하더라고요. 


남편 회식날 싸우기는 싫지만 짜증 나는 마음은 달래지지가 않아서 정신분석가 박우란 님의 <남편을 버려야 내가 산다> 책을 사서 읽었어요. 회식 다음날 무언의 압박처럼 책을 잘 보이는 곳에 일부터 올려두었습니다. “남편을 버린다”는 문구를 보고 남편이 약간 움찔하는 듯했어요. 쿨하게 “아~ 그런 내용 아니야. 여자의 독립에 관한 책이야~” 하고 말았어요. 괜히 통쾌한 거 있죠. ㅎㅎ 


이 챕터에서는 육아맘들이 남편에게 왜 화가 나는지, 갈등을 어떻게 줄일 수 있는지, 어떻게 잘 지낼 수 있는지에 대해 얘기해보려 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