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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행복한 육아는 판타지다

힘든육아, 유쾌하게 살아남기

by 이경희

당신의 육아는 안녕한가요?

당신은 당신의 육아상황이 마음에 드시나요?


분명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하게 같이 살고 싶어 결혼했어요. 세상살이가 너무 재밌다는 것을 내 아이도 느끼며 살았으면 하는 생각으로 두 아이를 낳았네요. 그런데 어느 순간 돌아보니 현실은 엉망이 되어 있었습니다. 육아 스트레스에 지쳐있고, 아이와 남편에게 늘 화가 나있는 내 모습… 이건 내가 원하던 게 아닌데!

출산 전까지는 매일 사는 게 너무 재밌어서 그냥 죽어도 별로 여한이 없겠다 싶었는데. 이제는 남편과 아이들 때문에 자유의 몸이 아니네요. 엄마와 아내로서 매일 해내야 하는 의무와 책임이 너무 커서 내 맘대로 아플 수조차 없어요.


짜증 게이지가 솟구쳐 아이에게 욱하고 손지검 하던 엄마 여기 있어요. 특히 아이와 나만 있는 경우는 나도 모르게 더 자주요. 내 앤 데 아예 쳐다보기도 싫은 적도 있고요. 하원시간 다돼서는 데리러 가기 싫어 엉엉 울기도 했어요. 아이 울음과 떼쓰기에 질려서 우울증 약도 진지하게 고민했네요.

부끄럽지만 제 직업은 고등학교 교사입니다. 학교 다닐 때 아이들이 저를 좋아했고 초긍정 모드의 좋은 선생님이었어요. 관대하고 무슨 일이 있어도 화를 잘 안내서 “선생님! 화 좀 내세요!”라는 말을 들을 정도였답니다. 사람 좋아하고 나름 해피 바이러스 전파하며 살아와서 제 스스로 세상 나이스한 사람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웬걸.. 두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또 다른 내 모습을 보았습니다. 내 안의 악마를 만났다고 하는 게 맞겠어요. 아이들에게 화를 자주 내고는 죄책감과 우울감에 시달렸어요. 당장 나 힘든 것만 보이니 남편과의 관계도 악화되고요.


행복하기만 한 육아는 판타지예요. 아무리 정신수양해도 별의별일이 다생기는데 엄마도 별수 없어요. 특히 애들 어릴 때 얼마나 자주 아픈데요. 병원을 안 간 달이 일 년 중에 한 번도 없어요. 감기 고생하다 나았나? 싶으면 새로운 감기 또 걸리고, 나았나? 싶으면 장염 걸리고. 두 명이면 돌아가면서 아프고, 엄마 피곤해지면 엄마까지 옮아요. 힘들어 죽을 거 같은데 그나마 천사 같은 아이의 웃음에 한 번씩 힘나는 정도가 리얼이죠. 현실적으로 덜 힘들게, 할 만하게 하는 방법이 최선입니다.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수많은 일을 해내야 하는 엄마에게는요! 엄마가 하는 일들을 리스트로 적어보면 놀랄 만큼 빽빽할걸요. 우리는 이미 엄청 대단한 일을 해내고 있어요. 더 잘하려는 마음은 이제 접어둬요. 책에서 말하는 대로 육아하는 사람은 아마 아무도 없을 거예요. 애들이 그렇게 되기가 어려우니까, 엄마들도 잘 안되니까 자꾸 책에서 언급하는 거뿐이죠.


일관된 육아가 중요하다네요. 육아해 본 사람은 알 거예요. 애초에 말이 안 되는 소리입니다. 어떨 때는 버럭 하고, 어떨 때는 허용하고. 엄마 컨디션 따라 이랬다 저랬다하죠. 당연한 거예요. 무슨 엄마가 기계인가요? 엄마가 얼마나 지치고 힘들면 그러겠어요. 엄마도 사람인데 엄마가 먼저 살아야 그다음 육아가 되죠. 가끔 어렸을 때 친정엄마한테 맞았던 기억이 떠올라요. 엄마가 달력 말아서 때리고 빗자루로도 때리며 버럭 하던 거. 지금은 우리 엄마가 그때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랬을까 싶네요. 모든 엄마들은 이미 존재만으로도 충분히 잘하고 있는 거예요. 좋은 엄마는 특별한 게 아니라 아이 옆에 있어주는 엄마래요. 당신을 대신할 사람은 당신 아이들에게는 아무도 없잖아요. 저는 너무 버거운 날엔 진짜 진심 사라지고 싶다고 많이 생각했는데, 진짜로 사라진적은 한 번도 없어요. 그것만으로 잘했다고 스스로 칭찬합니다. 우리 이제 필요 없는 죄책감 따위는 갖지 말자고요.


육아가 힘든 가장 큰 이유는 매일 하기 때문입니다. 딱 하루 이틀이라도 육아모드에서 오프 하면 살 것 같은데. 엄마는 휴가도 없고, 주말도 없어요. 365일 24시간 대기조로 밀착 케어 하는 사람입니다. 아이 어릴 때는 외출도 어렵고 화장실도 편하게 못 가요. 어린이집 보내도 갑자기 연락 오면 엄마가 바로 데리러 가야 하잖아요. 애가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무조건 엄마 책임이니 늘 마음도 무겁죠. 남들은 다들 멀리서 잠깐씩 보니까 아이가 예뻐 보이고 이래라저래라 훈수 두는 거예요. 잠깐 봐주는 사람들은 다 예쁘다며 잘 봐줘요. 힘들어질 때쯤 “안녕~”하고 집에 가면 끝. 애 다 키운 사람들은 지나간 육아의 미화된 기억 한 자락으로 한 마디씩 거들 뿐이죠. 좀 잘 키워 보겠다고 육아서라도 읽으면 영상 많이 보여주지 마라, 밥은 돌아다니면서 먹지 마라, 이렇게 키워라, 저렇게 키워라… 각종 육아서적과 티브이에서 떠들어대는 이야기들은 왜 이렇게 이상적 건지. 밥 해먹이기도 버거운데 엄마표 00은 도대체 언제...?




애 한 명도 힘들었는데 두 명이 되니 진짜 딱 힘들어 죽을 것 같더라고요. 물론 힘들 거라는 각오는 했습니다만. 진짜 닥쳐보니 맨 정신으로는 못 버티겠는 연년생 육아. 이래서는 도저히 안 되겠다, 나부터 살아야겠다 싶어 각종 육아서, 육아강의, 스님 강의, 심리학책 등을 보고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육아가 왜 이렇게 힘들까, 남편이랑은 왜 자꾸 부딪힐까, 어떻게 하면 좀 나아질까.. 그 와중에 내가 가장 행복한 순간은 애가 예쁜 짓 할 때도 아니고 나 혼자 자유시간 즐길 때구나...(ㅎㅎ) 육아는 그냥 아이를 키우는 게 아니더군요. 나라는 인간을 계속 돌아보게 만들어요. 계속 일기를 쓰고 생각을 정리하며 깨달았습니다.


아이를 바꿀 수도 없고 남편을 바꿀 수도 없어요. 애들 케어하고 살림도 해야 하는 상황도 못 바꾸죠. 오직 이 힘든 상황을 바꿀 수 있는 건 나 자신의 멘탈뿐. 내가 가장 고통스럽고 힘들 때는 언제인가 곰곰이 생각해 보았어요. 첫째는 내가 화를 주체하지 못해서 연약한 아이에게 욱하고, 자괴감에 빠지며 후회하는 일. 둘째는 남편과의 갈등이 생겨 육아동지를 잃고 괴로워하는 일. 이 두 가지는 에너지를 극도로 소진하는 일이라 내가 더 힘들게 되더라고요. 안 그래도 육아와 살림하느라 힘없는데 말이죠. 이 두 가지를 줄여도 훨씬 편안해져요. 그리고 육아로 없어져버린 나를 다시 찾아야만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어요. 그 노력과 해결은 오직 나만 할 수 있어요. 다들 자기 삶이 바쁘고 힘들어서, 내가 죽을 것 같아도 오구오구 안 해줘요. 남편조차도요. 내가 나를 살려야 해요.


엄마라는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일을 합니다. 아이를 낳고 인간답게 키우는 일. 근데 그에 맞는 대우는 아무도 안 해줘요. 뉴스에서는 그렇게 저출산이 문제라는데 막상 낳아보니 ‘니 애 당연히 네가 알아서 키워야지’ 하고 모두가 나 몰라라 느낌이에요. 학창 시절 이 정도로 인내하고 나를 갈아 넣었으면 서울대라도 갔을 텐데. 어디 직장에서 이 정도의 강도로 일을 했으면 뭐 한자리라도 했을 텐데 말이죠. 다들 내 수고를 당연하게 여기고 심지어 경력단절에 돈까지 못 버니… 이렇게 큰 일을 하면서도 서글플 때가 있어요..


82년생 김지영이 빙의되는 병에 걸리고, 죽을 것 같은 기분이 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아이가 셋도 아니고 한 명에, 낮에는 유치원도 보내고, 남편도 잘해주는데 말이죠. 상황이 엄청 힘들어 보이지 않아서 공감이 잘 안 된다는 주변인의 후기를 들었어요. 김지영은 자기 자신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힘들었던 거예요. 경력이 단절되고, 엄마와 아내로서의 의무만 남은 삶.


그동안은 지쳐버린 내가, 나도 모르게, 나를 더 힘들게 만들고 있었던 거예요. 이제는 그 힘든 악순환의 굴레에서 벗어나자고요. 그나마 할만해지는 저의 육아의 비법은

“아이에게 화내지 않고, 남편과 싸우지 않고, 나를 잃지 않는다”


당연히 두 아이 먹이고 씻기고 입히고 재우고.. 치워도 치워도 제자리인 집안일은 힘들죠! 거기다 애들은 내 맘대로 전혀 되지가 않아요. 아침 등원부터 “이 옷 싫어”, “과자 먹을 거야”, “싱싱 탈래”, “자전거 탈래” 하며 전쟁이에요. 아이 양치 하나 하기도 힘든걸요. 하지만 더 이상 정신적으로 진 빼는 일은 없어요. 힘들수록 틈틈이 나에게 보상해 주고 좋은 생각으로 채워주니 감정적으로도 괴롭지 않아요.

이제 더 이상 아이에게 욱하며 상처 주지 않고요. 남편과 싸울 일도 별로 없어요. 매일 아이들과 포옹하고 사랑의 말을 주고받아요. 예전엔 버겁게만 느껴지던 아이의 떼쓰기, 징징거림조차 안쓰럽고 어떨 때는 귀엽게 느껴져요. 일어나지도 않을 일들을 걱정하며 심각해지지 말아요. 저는 첫째와 둘째 과감히 돌 쯤부터 다 어린이집 보냈어요. 그리고 파도가 있는 날이면 가까운 바다에 서핑하러 갑니다. 나부터 살아야겠어서요.


저도 아직 성장하는 과정에 있고 제가 쓴 이야기가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될 수는 없겠지만, 평범한 저도 이렇게 긍정적으로 변화되었으니 당신에게도 꼭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초보 엄마들, 육아가 힘든 사람, 한 번쯤 저와 같은 고민을 하신 분들을 위한 글이에요. 누군가가 아이를 손님처럼 귀하게 대하래요. 맞아요. 그런데 그전에 제일 고생하는 나부터 먼저 귀하게 대해주자고요. 제일 중요한 것! 내가 나를 아끼고 잘해주고 즐겁게 해 주기! 엄마가 유쾌하게 살아남으면 나머지 것들은 알아서 굴러갑니다.




육아가 힘든건 팩트다. 그나마 덜힘들게 해야한다.

내가 찾은 그방법은 “아이에게 화내지 않고, 남편과 싸우지 않고, 나를 잃지 않는다”


지쳐버린 내가, 나도 모르게, 나를 더 힘들게 만들고 있었다.

오직 이 힘든 상황을 바꿀 수 있는 건 나 자신의 멘탈 뿐.

가장 먼저 나부터 아끼고, 잘해주고, 즐겁게 해줘야 한다.



이제부터 "힘든육아, 유쾌하기 살아남기"의 연재를 시작하려합니다 ^^


- 감기로 2주 동안 데리고 있던 두 아이 드디어 등원시키고 간만에 평화로운 집에서 이경희 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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