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정원, 봉황대
운동화끈을 질끈 묶고 집을 나섰다. 벗어날 수 없는 일상 속에서 내가 최대한 칠 수 있는 발버둥은 두발로 동네를 열심히 돌아다니는 것 뿐이었다. 몸도 마음도 회복이 필요한 순간. 마침 봉황대가 나를 부르고 있었다. 살아야겠다는 마음으로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도 모른채 봉황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곳으로 가는 길과 그곳에서 볼 수 있는 꽃과 나무, 그리고 나를 모든 방향에서 둘러싼 하늘빛의 변화를 보면 시계도 달력도 전혀 필요가 없었다. 계절의 흐름 속에 내 근심도 쉬이 흘러가는 곳. 멈춘 줄 알았던 내 시계가 다시 돌아가게 해준 곳.
아무리 애를 써도 아무것도 내맘대로 되지 않는 일상 속에서 산책을 나가는 것 만큼은 내 마음대로 되는 자유로운 일이었다. 세상의 빠른 흐름 속에서 어슬렁거리고 싶을 때는 한없이 어슬렁 거릴 수 있었다. 보란 듯이 나도 할 수 있다고 소리치고 싶을 때는 조금 뛰듯이 걸으면 북처럼 때리는 심장박동을 느낄 수 있었다. 가다가 그만두고 싶을 때는 그냥 그만두고 돌아와도 아무도 뭐라하는 사람이 없었다. 이쪽으로 잘가다가 변덕쟁이처럼 갑자기 저쪽으로 발길을 틀어도 괜찮았다.
걸으면서 어떤날은 정말 아무 생각을 안하기도 하고 어떤날은 정말 컴컴한 곳에서 솟아오르는 무의식에 사로잡혀 온갖 상념을 떠올리기도 한다. 단지 내가 나이고 싶었을 뿐인데. 매일 산더미처럼 쌓인 집안일을 볼 때도, 티비나 휴대폰을 볼 때도, 누군가와 마찰이 있을때도, 심지어 내맘대로 되지 않는 나 조차도 그건 어려웠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은 산책길을 내 의지로 나서서 약간의 일탈을 하고 다시 제자리에 돌아오며 다시 나를 조금씩 찾아왔다. 무언가를 끊임없이 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홀가분함을 한껏 주머니 가득 채워서 돌아왔다.
꼭 해야하는 것도, 꼭 이루어야 하는 것도, 잘해야 할 것도 없는 시간. 그래서 봉황대의 산책은 나의 내면을 돌볼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다. 아무런 목적도 아무런 압박도 없으니 풍경의 찬란함은 더 깊이 보였다. 하늘빛과 뒤섞인 풍경의 색채는 더 진하게 보였다. 한편의 입체적인 그림 속에 들어와 감상하는 것 같기도 했다. 바람의 온도와 방향, 지나가는 새와 나비, 흘러가는 구름의 모양, 어제보다 미세하게 더 핀 꽃몽오리들. 매일 같은 곳을 들러도 단 한번도 똑같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몸과 마음에는 긴장이 없었고 긴장이 사라진 빈공간에 봉황대의 자연이 들어와 내 영혼을 채워주었다. 그렇게 나는 집을 나설 때와 집을 돌아갈 때 다른 사람이 되어있었다. 마음이 온통 울퉁불퉁 굴곡져서 조금의 언덕길도 버겁다 느껴질 때, 봉황대의 산책은 오롯이 평지 길이라 부담이 없었다. 언젠가 SF영화에서 보았던 다친 주인공을 재생시키는 돔같은 공간이 내게는 봉황대였던 것이다.
33세. 빛나는 청춘에서 갑자기 애엄마가 되버려 방황하던 순간. 여태껏 이어지던 내 삶은 갑자기 중단되었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더 이상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들었다. 하루하루 계속 반복되는 삶 속에서 뭐하고 있는건지 잘하고 있는건지. 아이를 낳으면서 생명 탄생의 기쁨과는 별개로 내 존재 자체는 바스라지고 있었다. 나를 잃어버린 느낌에 허덕였다. 사실 산후보약도 소위 그 어떤 돈지랄도 근본적인 mindfullness와는 거리가 멀었다. 모든 회복은 흘러가는 자연을 충분히 음미하면 되는 것이었다. 멀리서만 얻을 수 있다고 믿었던 치유가 너무 감사하게도 봉황대의 자연 속에서 그렇게 가능했다. 이제껏 머나먼 곳으로만 향했던 시선이 지금 여기 바로 이곳에 집중되어 내 삶에 충만감을 얻게 되었다.
봉황대를 거닐면서 익숙한 풍경 속에 늘 새로움을 발견한다. 소멸되었던 것들이 다시 탄생하는 순간을 맞이하고 희미해졌던 것들이 다시 빛나는 순간을 맞이하는 반복을 경험한다. 어느덧 하늘이 높고 구름없이 공활해진다. 어깨가 타들어갈 것 같던 햇빛의 강렬함이 서늘한 공기 속에 누그러진다. 옅게 변해가는 계절 속에 작은 미물들이 주어진 하루를 얼마나 온전히 살아 내고 있는지 느껴진다. 잠시도 멈추지 않고 흘러가는 구름이 너의 모든 희노애락은 그 어떤것도 머무르지 않는다고 말해준다. 주어진 하루하루를 감사하며 조금 무던하게 지내다 보면 흘러가는 계절이 나를 어딘가로는 데려다 줄 것이라는 희망을 품게된다.
인생은 가까이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한발짝 떨어져서 내 삶을 바라보는 여유가 생긴다. 뾰족했던 마음이 부드러워진다. 내 삶이 애틋해 보이기도 하고 감사해지기도 한다. 작은 일에 짜증내고 투덜거렸던 내가 부끄러워지기도 한다. 자연의 순리를 보며 마음이 편안해진다. 어떤 고통이 찾아와도 다시 회복되어 웃을 수 있음을 깨닫는다. 어떤 풍파가 찾아와도 견디다 보면 다시 맑은날이 꼭 올거라고, 마음을 다잡는다.
가장 따뜻한 시간에 볕을 쬐러 나온 겨울 고양이들이 가만 쉬어가라한다. 앙상한 나뭇가지와 누런잔디가 분홍과 초록으로 단숨에 뒤덮히며 너의 봄도 다시 올거라한다. 아침 일찍 떠오르는 강렬한 태양의 양기를 받은 작은 연꽃이 너도 아직 뜨겁게 살아있다한다. 단풍보다 더 진한 샛주황 빛깔의 오후 햇살이 내 공허함을 채워주겠다한다. 끝없이 나를 못살게 구는 일들 사이로 그렇게 다정한 위로를 받는다.
오늘도 운동화끈을 질끈 묶고 집을 나선다. 또다시 나만의 정원 봉황대로 향한다. 치유와 회복. 그리고 반드시 좋은 계절이 다시 올거라는 진실을 보러간다. 마음에 생기가 돈다. 황폐해진 그곳에 새순이 돋아난다. 어느덧 훌훌 가벼워진다. 돌아오는 발걸음은 참 자유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