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내 인생을 분리하기
육아의 시간을 통해 엄마는 자기자신을 성찰하고 탐색하게 된다. 이제껏 앞만 보고 달리다가 비로소 깊이 있는 자기 이해를 하게 되는 것이다. 자신이 잘하는 것은 무엇인지, 부족한 것은 무엇인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어떤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말이다. 이 경험을 통해 나의 인생을 더 새롭고 풍부하게 살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 한템포 쉬어가는 동안 나를 천천히 돌아볼 기회를 충분히 가졌다면, 남은 육아의 시간은 내 인생에 도약의 시간이다.
아이를 잘 키우는 것의 시작점이 내가 먼저 그런 사람이 되는 것, 편한육아의 시작점이 내 삶과 육아의 주도권을 내게로 가져오는 것이라면, 건강한 육아의 시작점은 아이의 인생과 나의 인생을 분리하는 것이다. 아이의 행복을 나의 행복으로 여기지 않고 아이의 성공을 나의 성공으로 여기지 않는 것이다. 나 스스로는 이룰 수 없었던 것을 아이를 통해 성취하고자 한다면 건강한 육아가 될 수 없다.
자신을 잃은 여성은 엄마의 역할에서 자신을 찾는다. 엄마의 역할을 통해 성취감을 맛보며 아이를 잘 키우는데 과몰입하게 된다. 또한 아이의 성취를 나의 성취인양 착각하게 되기도 한다. 아이의 성적이 좋으면 대단한 엄마, 아이 교육 잘시킨 현명한 엄마가 되어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것과 같다. 실망스런 아이의 행동에 내가 부족한 엄마이고 내가 아이를 망친 것 처럼 생각이 드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이를 벗어나려면 자신이 몰입할 자신만의 세계는 분명 있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집착에 가까운 육아가 되기 때문이다. 아이에 대해 생각하지 않아도 될 것까지 너무 깊이 생각하게 된다. 별일 아닌 일도 곱씹고 큰 의미를 부여하며 확대해석 하게 된다. 그것은 걱정과 불안속에 육아를 하게 되는 지름길이다.
육아란 본디 고통과 행복이 늘 함께하는 것이다. 아이가 어리면 어린대로, 크면 크는대로 바람 잘 날 없는 나날이 이어질 것이다. 내 의지와 상관없는 고난과 역경들이 끝없이 닥칠 것이다. 그 속에서 아이와 내 삶이 잘 분리되어야 지치지 않을 수 있다. 자신의 삶이 지켜져야 건강한 육아가 시작된다. 그래야 아이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다. 육아를 통해 소소한 기쁨이나 뿌듯함과 같은 긍정적 감정들을 더 잘 느낄 수 있다. 아이에게 내 삶을 너무 몰입하게 되면 육아가 무겁고 심각해진다.
20세기 중반이후 서구 페미니스트의 어머니인 시몬 드 보부아르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머니가 혼자서 이룰 수 없었던 충만함, 따뜻함, 가치를 아이를 통해 성취하고자 하면, 그는 필시 실망할 수밖에 없다. 아이는 오직 다른이의 행복을 사심없이 바랄 수 있는 여성에게만 기쁨을 가져올 수 있다.”
우리는 엄마가 되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다. 내 본캐는 그냥 ‘나’이다. 내 부캐가 ‘엄마’이다. 나는 죽을 때까지 나로서 재밌게 살고 싶다. 엄마로서는 세상 편한 엄마가 되고, 내 삶에서 열정적으로 살고싶다.
보통은 아이를 낳으면 가족의 중심이 온통 아이가 되어버린다. 아이의 삶에 엄마의 삶을 억지로 욱여넣게 된다. 이제는 아이가 우리 가족의 메인이 되지 않게 하자. 아이가 너무 어려서 아직 분리가 쉽지 않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럴 경우 엄마가 좋아하는 일상에다가 아이를 초대해보자.
경력이 단절되고 사회로부터 도태되었다는 생각이 엄마를 억울하고 무력하게 만들기도 한다. 육아의 시간을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는데 써보길 바란다. 꼭 결과물이 있거나 성과를 얻지 못하는 것이어도 괜찮다. 어떤 시도든 쓸모 없는 것은 없다. 무엇을 하든 나에게 다 피가 되고 살이 될 것이다. 스티브 잡스는 스탠포드 대학교 졸업 축하 연설문에서 이런 말을 했다. “당신의 현재는 어느 미래와 연결되어 있다. 내가 만약 대학을 중퇴하고 글씨체 수업을 듣지 않았다면 매킨토시의 아름다운 글씨체는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현재 하는 일이 미래에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고 사는 사람과 하던대로, 관성대로 하는 사람과는 그 끝에서 결과가 다를 수밖에 없다. “
철저히 이과 출신, 책이라고는 즐겨 보지도 않던 나도 이렇게 책을 쓰고 있다. 나도 새로운 시작이 있기까지 4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그 전까지는 연년생 두아이 뒤치다꺼리하는데 내 모든 에너지를 다써서 남는 시간에는 운동과 휴식만 했다. 몇년째 이어지는 육아로 우울해질 때쯤, 말하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라 내 속에 있는 생각과 이야기를 두서없이 일기로 쓰기 시작했다. 그러다 나와 같은 처지의 육아맘들에게 힘을 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주제를 정하고 한편씩 글쓰기를 시작했다. 글쓰기를 통해 결과물이 있다는 점이 일단 뿌듯했다. 브런치에 연재를 하며 독자가 생기고 공감을 받는 다는 것도 신이 났다. 글을 쓸수록 나는 내가 된다는 말이 딱이었다. 나의 감정과 생각에 대해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이제는 파도가 있는 날에는 서핑을, 파도가 없는 날에는 글쓰기를 하다 보니 육아를 하면서도 내 삶의 루틴이 생겨 좋다. 하루 하루가 아이를 위해서만 흘러가지 않는다는 점이 내 생활에 활기를 준다.
‘앞으로 엄마로만 살아야 하나?’ 라는 생각은 버리자. 괜히 아이를 탓하게 된다. 아이는 본인이 원해서 태어나지도 않았고, 엄마가 자기 때문에 불행해지는걸 원하지도 않는다. 지금은 너무 힘들어서 나를 위한 어떤 발전적인 것도 할 수 없다면, 생각만해도 좋다. 아이가 어려 24시간 엄마가 케어중이라면 몸은 자유롭지 못하지만, 머릿속으로 앞으로 내 인생에 어떤 멋진 일을 펼치고 싶은지 실컷 상상하면 된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설렌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 엄마의 일이 손에 익고 시간이 조금씩 생기면 하나씩 실행에 옮기면 된다. 생생하게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 아직 우리 인생은 짱짱하게 많이 남아있다.
이제껏 사회의 시스템안에서 하나의 부품쯤으로 쳇바퀴 굴러가듯 살았다면, 남과 비슷하게 사는 것이 잘 살고 있는 것으로 여겼다면, 지금 이 멈춰진 시간이 당신에게는 기회의 시간이 될 것이다. 경력 단절이 아니라 경력 전환으로 말이다. 한번쯤 인생을 되돌아보는 시간, 한번쯤 내 삶의 의미와 목적을 고민하는 시간, 한번쯤 미친척 새로운 시도를 하는 시간. 역경이 아니라 더 넓고 단단한 삶을 살게 해주는 재정비의 시간으로 말이다. 고난의 시기는 분명 가장 많이 성장하는 시기이다. 당신은 분명 다시 도약할 것이다.
뇌과학자 정재승 교수는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가장 많이 화내게 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고 한다. 뇌에서는 나를 인지하는 영역과 타인을 인지하는 영역이 따로 있다. 허나 타인과 내가 가까울수록 타인을 ‘나’라고 인지하게 되기 때문에 내마음대로 통제하고 싶어한다. 나와 다른존재로서 인정하는게 아니라, 타인을 나처럼 생각하기에 내가 원하는 대로 상대방이 행동하지 않으면 불같이 화가 난다는 것이다.
가까운 가족일수록 분리해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지 않으면 내마음대로 행동해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실망하고 화를 내게 된다. 그것은 결국 서로에게 상처가 될 뿐이다. 건강한 육아의 시작은 아이와 내 삶을 분리하는 것. 아이와 내 삶을 분리하는 방법은 아이에게 몰두하는 시선을 나에게로 더 돌리는 것이다. 엄마도 엄마만의 삶이 있어야 한다. 나만의 세계를 구축해야 한다.
희생과 고생이 어머니의 미덕인 시대는 지났다. 그 슬픈 결말은 아이를 여자인생의 걸림돌로 생각하며 심각한 저출산으로 나타났다. 아이가 행복하지 않을 때도 나는 행복할 수 있다. 아이들이 살아가면서 겪는 실패, 좌절을 함께 겪으며 같이 힘들어하지 않아도 된다. 아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장난감이 없어져 엉엉 운다고 같이 시무룩할 필요도 없다. 아이의 삶과 관련된 모든 것을 공유할 필요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