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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이 Dec 20. 2021

죄송합니다. 손 한번 잡아 주시면 안될까요?

가슴이 답답해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서 있으면 그 공간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증상이 두달이 넘게 지속되고 있었다. 이렇다 할 병명도 모르고 내일이면 괜찮아 지겠지라며 참고 참았다. 응급실에 실려가고 나서야 병명도 모르던 내 증상이 불안장애라는 진단명이 정해졌다.

주변 사람들은 스트레스 때문인 것 같다며 바람이라도 쐬라며 나를 다독여 줬다.   

   

'그래, 너무 앞만 보고 달려왔지. 잠깐 쉬어도 괜찮을 거야.'   

  

서른 살이 넘어서야 처음 해보는 혼자만의 여행이었다. 출발 시간보다 조금 일찍 공항에 도착했다. 오랜만에 가는 여행에 살짝 들뜬 마음도 있었고, 시간에 늦으면 비행기를 타지 못할까 하는 일말의 최악의 상황도 생각해본 터라 공항의 분위기에 적응하기도 할 심산으로 서둘러 나왔다. 도착한 공항은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저마다 각양각색의 가방 하나씩을 둘러메고, 끌며, 자리에 앉아 핸드폰을 바라보기도 하고 삼삼오오 모여 들떠있는 표정으로 이야기를 하는 모습이 내게는 낯설게만 느껴졌다. 떠나야지. 마음만 먹고 실천하지 못했던 지난날들이 물 밀듯 들어오며 나에게만 흐르는 이 어색한 분위기가 싫어졌다. 더불어 공항의 분주한 분위기가 내심 섭섭하게 느껴졌다.      




 좁고 기다란 통로를 지나 영어 알파벳이 나란히 적혀져 있는 순서 자리 중 두 번째 자리에 앉았다. 겉옷은 빨아 입을 요량으로 속옷 몇 개와 잠옷만 챙겨 넣어 짐이 별로 없었다. 가지고 있던 가방을 좌석 밑으로 밀어 넣고 자리에 앉았다. 오른쪽 창가 자리는 비어있었다. 내심 아무도 앉지 않기를 바랬다. 왼쪽을 슬쩍 보니 중년의 신사분이 책을 읽고 계셨다.

     

 드디어 여행이 시작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른쪽 창가에 비친 활주로 건너로 보이는 나무들을 보는데 갑자기 파도가 밀려오듯 불안이 밀려왔다. 메고 있던 안전 벨트를 풀고 싶은 욕망이 솟구쳐 올랐다. 눈을 질끈 감고 이럴 수는 없다고 대뇌였다. 좌석을 안내해 주시고 계신 승무원분이 지나가길 기다렸다. 짐을 올려주시고 좌석을 안내해 주시는 중에 내가 민폐가 될까 봐 마음은 아려왔다. 크게 소리 내 부르지도 못했다. 내 옆을 바쁘게 지나가는 승무원 언니의 뒷모습에 대고 저기요 라고 작게 이야기했다.  

    

 “무슨 일이세요? 필요하신 게 있으신가요?” 그녀가 물었다. 누군가의 시선을 받는 게 두려워 작게 따뜻한 물 한잔을 부탁드렸다. 끝으로 죄송합니다 라고 말을 했지만, 그 말은 아마 나만 들을 수 있는 작은 목소리로 말을 한 것 같다는 생각이 시간이 지나고 들었다.

    

 지갑 틈 사이에 비상으로 항상 들고 다니는 신경안정제를 꺼내 입에 물었다. 씁쓸한 약의 기운이 입안으로 가득 차는 순간만큼은 이 공포를 이겨낼 수 있을 것만 같다. 따뜻한 물이 오기도 전에 약의 쓰디쓴 맛이 느껴졌다. 책을 읽는 그는 나의 행동은 안중에도 없는 듯해 보여서 사실 조금 안심되기도 했다. 아마 누군가가 나를 보고 있다고 해도 나 스스로가 인식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더 컸을 것이다. 종이컵에 들어있는 따뜻한 물의 양이 내 성에 차지 않았다. 내 마음을 가라앉기에는 온도도 뜨뜻미지근했다. 승무원에게 따뜻한 물을 가져다줄 수 있냐고 3번쯤은 더 물었을 때 그의 시선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신경안정제의 약발이 이제 조금 느껴지는지 주변 모습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가 보고 있던 책은 가지런히 덥혀 무릎 위에 올려져 있었고, 시선은 앞에 놓인 구명조끼 안내 화면에 고정되어있었다.


 내 불안이 옆 칸으로까지 전해지는 것 같아서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숨기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나약해 보이는 나 자신이 싫었다. 하지만 안전 벨트를 풀고 싶은 내 마음을 억누를 방도가 생각나지 않았다. 이렇게 처음 떠나는 혼자만의 여행을 망치는 나 자신을 보고 싶지 않았다. 지금도 나 자신에게 이렇게 실망하는데 더는 용납할 수 없는 노릇이다.  

    

 비행기 엔진의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이륙하기 전 활주로의 위치를 고쳐 잡으려고 비행기가 준비하는데, 작게만 들렸던 비행기의 엔진소리가 귀속까지 들려왔다. 엔진소리의 볼륨만큼 나의 불안의 수치도 함께 높아졌다. 엔진소리에 묻혀 더는 내 심장박동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눈앞에 보이는 비상탈출구가 이렇게 원망스러웠던 적은 없었다. 안전 벨트를 풀어 헤치고 당장이라도 내리고 싶다고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내리고 싶은 마음과 떠나고 싶은 이 마음은 양날의 검을 맨손으로 잡아 방향은 상관없이 피를 꼭 봐야 하는 운명 같은 것이다. 비행기의 엔진소리가 들리자 불안은 더 심해졌다. 이제 막다른 골목이다. 어떤 결정이라도 해야 했다. 머리보다 입이 더 빨리 반응했다. 옆에 있는 그에게 물었다.      


“저기요.

저. 죄송한데 제 손 좀 잡아주시면 안 될까요?”   

  

 잠시 멈칫한 그는 당황한 모습이 역력했다. 미간이 살짝 찡그려지더니 이내 무슨 결심이라도 한 듯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는 담담한 표정으로 들고 있던 책을 한쪽 팔로 고쳐 잡았다. 그의 눈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마도 일면식도 없는 여자가 이제 자신의 손을 잡아달라고 하니 어안이 벙벙할 노릇 아닌가. 마음속으로 저 이상한 사람은 아니에요. 한 번만 잡아주세요. 간절히 빌고 또 빌었다. 그는 어떠한 말도 하지 않았고 천천히 손바닥을 내밀어 보였다.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을 잡듯 덥석 그의 손을 잡았다. 아까 마셨던 뜨뜻미지근한 종이컵의 물보다 더 따듯하고 포근했다. 손바닥의 느낌이 들자 맞잡은 손을 얼른 고쳐 잡아 깍지를 꼈다. 깍지를 낀 손에 힘을 꾹 주었다. 제발 나 좀 살려달라는 일족의 발악을 그의 손에 대고 하는 거라니, 따뜻한 그의 손을 잡으니 나도 모르게 온몸에 들어가 있던 긴장이 풀려버렸다.

 비행기가 이륙하는 순간 내 양손이 모두 그의 손으로 갔다. 올라가는 순간의 기분을 느끼고 싶지 않았다. 비행기가 이륙하고 엔진의 소리가 잠잠해지자 내 심장도 같이 안정을 찾았다.     

 

그는 불안해하는 나에게 서울이라 하면 여기를 가봐야 한다며 몇몇 장소를 추천해 주시기도 하셨다. 안쓰러운 눈빛으로 나를 보더니 마지막 인사와 함께 걱정스러운 한마디를 덧붙였다.     

“서울 가서는 모르는 남자한테 아무렇게나 이렇게 손을 잡아 달라고 하면 안 돼요. 알았죠?”     

 비행기는 공항에 도착했고 사람들은 빠르게 짐을 들고 내리기에 바빴다. 나도 서둘러 움직였다. 밀리듯 게이트를 빠져나오고 게이트 앞에 발이 멈췄다. 그가 내 앞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멀어져 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고있으니 감사하다는 인사말을 하지 못한게 못내 아쉬웠다. 마음은 너무 간절했지만 몰려드는 사람들 사이로 스치듯 멀어지는 그의 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서울에서의 여행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을 만큼 일탈이라는 이름 아래 모든 게 완벽했다. 그렇게 돌아오는 비행기 안 방향만 반대편으로 바뀌었을 뿐 내 양옆에는 낯선 사람들이 앉아있었고 그의 마지막 말 때문이었을까. 옆에 있는 분에게 손을 잡아 달라고 이야기 하지는 않았다. 비행기를 타기 전 카페에 들려 따뜻한 캐모마일 한 잔과 서점에서 책을 한 권 골라왔다. 창밖으로는 구름 사이로 노을이 지고 있었고 그 후 나의 많은 것이 변했다.      


지금도 무슨 생각으로 알지도 못하는 분에게 덥석 손을 잡아 달라고 했는지 알 수 없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을 만큼 절박했었던 것 같다.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기로 하지만 사람을 통해서 위로를 받는 나는     

 

사람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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