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인 제가 부족하고 모자란 탓이지요
되돌아보면 나의 불만은 이미 신입 사원 교육 연수에서 예상된 일이었을지 모른다. 회사의 규정을 만들고 직원들이 더 좋은 환경에서 일할 수 있게 고민해야 하는 인사팀은 편의에 따라 신입 사원 교육 과정에서 조차 규정과 다른 예외를 만들었고 예외를 만들 수 있는 힘은 권력으로 사용했다.
실제 업무에서도 매년 나는 임원들이 마음대로 규정과 다른 예외를 만들고 그걸 권력으로 이용하는 것을 수도 없이 보았다. 항상 회사를 위한 결정이었고 관행에 따른 결정이었지만 그 모습을 보는 나 같은 초짜 직원들은 무엇을 위해 규정을 만들고 지켜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고 힘없는 직원들에게만 엄격한 기준을 갖다 대야 하는 나 자신에 대한 의문이 계속 들 수밖에 없었다.
유별나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게 '나'라는 사람이다. 쓸데없는 온갖 정의감으로 법학을 공부하고 로스쿨을 준비하다 낙방한 '나'라는 사람은 변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회사의 모습이 나에게는 더 힘들게 다가왔던 거 같다.
퇴사를 한지도 벌써 7년이 되었고 입사를 기준으로 보면 10년도 지난 지금이지만 나는 아직도 당시 회사에서 결정되던 인사 관련 결정이 이해되지 않는다. 술을 강요하고 자신의 생각만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부하 직원들만 이끌고 다니며 조직을 폐쇄적으로 만들던 사람은 가장 중요한 부서의 팀장으로 승진했다.
퇴사 후 듣기로는 임원까지 밟으며 승승장구 중이라고 한다. 교육 자리에서 예외를 만들고 매번 규정과 다른 예외를 만들어가며 실무자들의 노력을 엿 바꿔 먹는 고철로 사용한 임원은 그 이상의 자리까지 올랐다. 그 이후에도 그 역할을 하던 분들이 또 그 자리를 대체하며 성장 중인 걸로 안다.
반면, 직원들이 같은 목표를 바라볼 수 있게 원칙을 지키고 자신의 책임을 피하지 않고 일하던 임원들과 부서장들은 몇 년을 버티지 못하고 중요한 자리에서 내려와야 했다. 그때는 내가 어렸고, 내가 신입사원이고, 회사가 뭔지도 몰랐으니 정말 나만 이해하지 못하는 거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도 회사 밖에서 온갖 도전을 멈추지 않고 있는 지금도 그게 왜 회사를 위한 일인지, 왜 회사는 늘 그런 선택이 옳다고 말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물론 힌트는 신입 사원 교육에 이미 있었다. 인사라는 자리를 거들뿐 우리는 그 자리에서 누구에게 복종하고 저 사람이 얼마나 막강한 힘을 가진 사람인지 정확히 인지할 수 있었다. 회사는 그렇게 돌아가는 곳이었다. 무엇이 회사의 성장을 위한 방법인지에 대한 고민은 중요하지 않다.
힘 있는 사람의 말에 귀 쫑긋 할수록 더 높은 자리는 보장되었고 그들에게 간택받기 위해 더 큰 목소리로, 더 깍뜻하게, 더 술을 잘 마셔야 했던 걸지도 모른다. 그 간단한 걸 하지도 못하면서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불만을 가졌던 내가 그 조직에서는 모자란 사람이었고 나는 계속 모자란 사람으로 살아가야 할지 선택해야 했던 거다.
이렇게 보니 회사에 대한 상당한 반감을 가진 사람으로 보일 거 같다. 물론 나는 불만이 많았다. 기껏 3년 반 정도만 일했지만 3년 반동안 쉼 없이 우리 조직의 문제를 이야기했고 책임질 수 있는 직책도 직위도 없던 나의 쓸모없는 불만이 가득했으니까.
하지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동기 누구보다 회사를 사랑했던 것도 사실이다. 나는 함께 일했던 선배들이 너무 좋았고 나에게 첫날 VLOOKUP을 가르쳐줬던 과장님도, 채용 설명회 자리에서 나의 학교라고 나의 발언 시간을 일부러 만들어준 과장님도, 술 마시고 대리 번호랑 헷갈려 나한테 전화한 귀여운 부장님도, 내일 급여가 나가서 작업을 해야 하는데 퇴근 시간에 왜 집에 안 가냐고 당장 집에가라고 소리치던 실장님도 모두 내가 배울 수 있는 사람들이었고 회사를 사랑하게 만들어준 동료들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퇴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좋았던 기억을 이야기할 수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