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그대 사랑합니다.

by 나무

회사 내, 친한 언니가 같이 점심을 먹자며, 1층 로비, 12시에 만나자는 약속과 함께, 같은 팀인 은영도 같이 갈 거라는 사실을 메신저로 전달했다.


따뜻한 봄바람이 언니의 곱슬머리를 헤집는다. 머리카락을 펄럭이며 머릿결을 흩날리는 언니와 다르게 은영은 풀이 죽어 있다. 식당에 도착한 후에도 은영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물이 든 컵을 놓치는 바람에 식탁 위에 물이 흘러 넘친다.


언니: 무슨 일 있어? 남자친구랑 싸웠냐?

은영: 예? 뭐......

언니: 싸웠네, 싸웠어. 무슨 일이야?

은영: 아니에요. 말다툼 조금 했어요. 지금은 괜찮아요.

언니: 사랑싸움하는 거 아니야? 벌써 만난 지 6개월인가?

은영: 예.

언니: 한창 싸울 때지, 콩깍지가 벗겨질 타이밍이거든

은영: 그런가 봐요.

휴지로 물기를 닦고 밥을 먹는 내내 은영의 표정이 밝지 않다. 미안하게도 그녀의 불행이 나의 심장을 들뜨게 한다.

점심시간이 지난 오후, 업무 중에 그에게 메신저가 왔다.

‘업무 끝나고 잠깐 시간이 될까? 같이 밥 먹자. 할 얘기도 있고’

남모르게 품었던 기대가, 숨죽였던 감정들이 나를 설레게 한다. 나는 그와 그녀의 일 따위는 기억하지 못한다. 처음부터 내 사람이었던 것처럼, 잠시 미로에서 방황하다 제대로 길을 찾은 그를 향해 잘 찾아 왔다고 칭찬해 주고 싶다.


회사 근처 김치찌개 집, 하필 이런 타이밍에 어울리지 않는 음식, 그러나 기꺼이 김치찌개 2인분을 시켜 보글보글 끓는 찌개의 불을 지핀다. 새색시마냥 살포시 그의 접시에 먹기 좋게 김치찌개를 한 국자 떠서 올려놓는다.


대리: 아무래도 너에게는 얘기해야 할 것 같아서.

나 : 무슨 얘기요?

그의 촉촉이 젖은 눈동자를 바라보자 심장이 두근거린다.

대리: 나 그만두려고, 많이 생각해 봤는데, 이건 아닌 거 같아.

나 : 정말 헤어지세요?

대리: 응?

대리님은 큰소리로 웃는다.

대리: 회사 그만 둔다고, 내가 사업 컨설턴트 역할을 하다 보니 이 팀 저 팀 옮기는 것도 이젠 한계고 곧 프로젝트 끝나니깐 다른 팀으로 이동해야 하는 시기잖아, 내가 무슨 업무를 하고 있는지 헷갈려, 사업이 일관성이 없으니깐 내 커리어에도 문제가 돼.


얼굴이 화끈거리고 달아오름을 느꼈다. 나는 그의 연애사만 생각했지 고충을 알지 못했다.


나 : 어디로 가세요?

대리: 면접 본 데가 한 군데 있어.

나 : 언제 가세요?

대리: 이번 달 말일 거야~ 그 회사 새로운 프로젝트가 다음달 초에 시작하거든

나 : 2주 정도 남았네요.

대리: 그러게, 곧이네. 그동안 나 때문에 고생 많이 했다.

나 : 아니에요. 저도 많이 배웠는데요.

대리: 그리고 은영이 일도 고맙고, 네가 아니면 친해지지 못 했을 거야

나 : 뭐......, 그렇죠.

대리: 다음주는 인수인계여서 바쁠 거 같고 다다음주 송별회라서 바쁠 거 같고 그래서 오늘 보자고 한 거지

나 : 예~

대리: 아! 그리고 한 대리 바람둥이래. 조심해라 동생, 한 대리 말고 다른 남자 만나.

대리님이 김치 국물에 비벼서 밥을 드신다. 입가에 묻은 붉은 자국, 맛있다고 밥을 한 스푼 크게 베어 무는 모습마저도 이제 마지막일 거라는 생각에 마음 한편이 답답하다.


그와 헤어진 후 시계를 보니 이미 9시 반이 넘었다. 나는 8090 클럽으로 간다. 클럽 안에는 한산하다. 피아노 치는 낯선 남자가 노래를 부른다.




나빠요. 참 그대란 사람

허락도 없이 왜 내 맘 가져요.

그대 때문에 난 힘겹게 살고만 있는데

그댄 모르잖아요.

알아요. 나는 아니란 걸

눈길 줄 만큼 보잘것없단 걸

다만 가끔씩 그 미소 여기 내게도

나눠 줄 수 없나요.

비록 사랑은 아니라도

언젠가 한 번쯤은 돌아봐 주겠죠.

한 없이 뒤에서 기다리면

오늘도 차마 못한 가슴속 한 마디

그대 사랑합니다.


그대 사랑합니다_ 팀



웨이터가 메뉴판을 주기도 전에 나는 맥주 한잔을 주문한다. 그때 인기척이 느껴진다. 옆을 보니 기타리스트 상현이 서 있다.


상현: 오늘 또 울었어요?

나 : 아니요.

당황한 내 표정을 보더니 상현이 웃는다.

상현: 곧 제 공연 시작하니깐 듣고 가세요.

나 : 예.


상현은 무대 뒤편으로 사라진다. 나는 여전히 입을 달싹거리며 말하지 못한 말을 조용히 내뱉는다.


대리님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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