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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May 03. 2020

흘려보낸 것들

2019년 수필 공모


 지난 토요일 아침, 창밖에 진눈깨비가 내린다. 휘몰아치는 바람과 함께 땅을 적신 눈은 냉기로 사람의 숨결을 얼린다. 시간이 흐른 후, 오후의 햇볕으로 눈은 녹아내리고 스며든다. 마치 눈이 온 적이 없었던 것처럼, 세상은 평이해진다. 오로지 저녁 뉴스에서 나온 과거의 장면들을 통해 눈이 온 사실을 상기한다.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 날, 평소와 다름없이 출근을 위해 운전대를 잡는다. 아직 마르지 못한 머리는 산발이고 만지지 못한 옷매무새는 삐죽 튀어나와 있다. 하품을 늘어지게 한 후, 눈가에 맺힌 이슬을 손등으로 문지르자, 아침부터 애를 먹이던 화장이 뭉그러진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앞서 달리던 차들이 접촉사고가 나고 주변이 막히면서 도로가 거대한 주차장으로 변한다. 우연히, 답답한 시야 너머의 다리 밑 음지에 한 움큼의 눈을 본다. 햇볕의 따스함에도 차마 녹지 못한 눈, 눅눅하고 시큼하게 절여버린 눈물 같다.  


 5년 전, 계약직을 간신히 버티고 정규직이 된 첫해, 난 구조조정 대상자 명단에 올랐다.

맨 처음에 내가 대상자가 되어야 하는 이유를 인정할 수 없었다. 남들보다 일찍 출근했고 늦게 퇴근했다. 맡았던 업무마다 성과를 냈었고, 틈틈이 업무에 필요한 자격증을 취득하며 윗사람으로부터 성실한 이미지로 소문이 났다. 그런데 어른들은 나의 노력을 이용했다. 능력도 있고 나이도 어리니 다른 곳에 금방 취업할 수 있다고 나에게 큰 선물을 주는 것처럼 희망퇴직금에 논하던 그 중역의 사악한 얼굴을 나는 아직도 꿈에서도 잊을 수 없었다. 단지 이곳 생태계에서 약한 존재라는 이유로 보호받지 못한 나는 이를 악 물었다. 근무 중에 집무실로 끌려가서 계속 퇴사할 것을 회유당했고 만약 퇴사하지 않으면 하루 종일 멍만 때리는 부서로 발령 낸 후, 업무 성과를 내지 못하게 하여 권고사직으로 자를 것이라며 겁박했다. 그의 못된 언어에 나의 의지는 점점 나약해졌다. 나와 함께 대상자에 오른 몇 명이 퇴사를 하고 나서야 나의 처리는 다른 팀으로 가는 것으로 마무리 지었다.

 성실한 내게 불성실한 구조조정 대상자라는 꼬리표는 가혹했다. 나의 슬픔을 이해하지 못한 그들의 문제였는지, 구조조정이라는 단어에도 옹졸해진 나의 문제였는지, 어느 곳에도 어울리지 못하고 겉돌았다. 오로지 내 의식은 더 많은 성과를 내서 회사에 나의 존재를 증명하고 싶은 욕구 밖에 없었다. 집착은 광기로 변했고 회사의 도구화된 나는 숨결을 잃고 괴물로 변해 갔다. 회사의 이익을 위해 매출액을 연연하며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악착같이 나를 몰아세웠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바람 빠진 풍선처럼 작은 상처에도 터져버렸고 점점 생기를 잃어 축 늘어졌다.

 혹시 다시 구조조정 대상자에 이름이 오를까 봐 무너져가는 나의 감정을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도 못한 채 얼려 버렸고 감정을 잃은 대신 나의 가슴에는 커다란 빙각이 자리 잡았다.

 일어나야 할 일은 반드시 일어난다고 했던가, 일에 매몰되어가던 나를 외면한 그들과의 관계는 결국 빙점을 찍었다. 나는 나의 성실한 자아를 버리고 불성실한 모습으로 그 팀에서 힘껏 도망쳐서 원래 팀으로 돌아왔다.

 구조조정 대상자에서 팀 부적응자로 낙인찍힌 나는 회사에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홀로 빙섬 위에 서있다. 코끝이 시린 추위로 인해 나는 의식을 잃은 채 멍하니 책상 위에 앉았던 하루가 지나고 또 다른 하루가 사라졌다.

 시간이 흐르고 계절은 변한다. 나의 슬픔을 모르는 새로운 사람들로 되찾은 일상과 매출액이 다시 오르는 활기가 가득한 회사 속에서 나는 남몰래 가슴 깊이 눌러둔 나의 빙각을 게워 냈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성실한 나의 존재를 지워내야 하는 시절의 악몽에서 깨어나자 빙각이 녹아서 폭포수처럼 떨어졌다. 나는 물에 섞인 채 밍밍한 어른이 되어 버렸다.

***

 앞으로 끼어드는 차로 인해 브레이크를 밟는다. 나는 더 이상 가지 못하고 붉은 신호에 걸린다.

***

 나는 그런 밍밍한 어른을 본 적이 있다.

 처음 입사했을 때, 의욕 없이 잇속만 빠른 어른들에 대해 잘근잘근 씹었던 적이 있다. 회사의 미래를 고민하지 않고, 자리만 지키고 앉아서 점심메뉴와 저녁 회식을 고민하는 그들을 보면서 나는 아무런 색깔이 없는 밍밍한 어른이 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그 당시 비정규직이었던 나는 회사에 필요한 존재로 인정받고 싶은 갈망에 나는 나를 학대했다. 일부러 야근을 자처하고 주말을 반납하며 어학원에 살았다. 그 덕분에 인고의 시간을 버텨 나는 회사에 소속될 수 있었지만, 그 결과로 나는 회사의 폭풍우 속에 제대로 대응하지도 못한 채 휩쓸렸다.


 모든 것이 평온해지자, 나는 나에 대한 모든 것을 내려놓기 시작했다. 여전히 목표에 맥없이 달리기만 했던 나는 허무함을 견딜 수 없었다. 주말에 멍하니 보낸 시간으로는 빙각이 흘러가고 남은 구멍에 메울 수 없었다.

 채워지지 않는 헛헛함에 나는 나의 슬픔을 펜을 들어서 종이에 적기 시작했다. 용지 가득히 나의 글씨가 채워지고, 이내 속을 풀어내듯 많은 종이를 눈물로 적셔졌다. 울컥거리며 쏟아낸 글 마디 끝에서 나는 또 다른 나를 만날 수 있었다. 철없게 순수하고 맹랑하기 그지없었던 그때,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믿었던 나와 인사를 했다.

 여전히 회사에서는 나의 과거의 행실을 들먹이며 열심히 일하는 것 자체를 아부라는 단어에 함축한 채 내 뒤에서 힐난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래도 나는 괜찮다. 모든 것을 게워내고 나서 남은 껍데기는 누구의 시선과 바람에 상관없이 물 위에 둥둥 뜬다. 어떤 물결에도 유유히 흘러가는 밍밍한 어른이 되어서 다행이다.

***

 라디오에서는 아나운서가 떨어지는 한국 경제성장률과 실업률, 구조조정을 읊조리며, IMF보다 더 큰 위기가 다가올 것이라고 겁박한다.

 한국경제의 위기설과 함께, 어제의 상사의 지시, 오늘 해야 하는 업무, 잘못 보낸 메일을 걱정하는 나는 유턴을 하고 있다. 회사로 들어가는 막바지에 다다랐을 때, 송이마다 하얗게 매달린 길가에 핀 목련이 눈에 들어온다. 날짜와 계절을 잃은 4월의 목련이 꽃을 피우기 위해 움츠려 든다.

 주차를 하고 회사로 출근을 한다. 동료들과 인사를 나눈 뒤, 노트북의 전원을 켜자 맹렬한 모터 소리가 네모난 공간을 가득 메운다. 수첩을 꺼내고 머그컵을 씻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설 때, 어디선가 날 선 소리가 들린다. 매출액이 떨어지고 회사 사정이 좋지 않아서 다른 계열사는 구조조정 중이고, 나를 희망퇴직으로 내몰아세웠던 중역의 퇴사 소식이 차마 아물지 못한 상처를 상기시킨다.

‘나는 괜찮다. 나는 괜찮다.’

 여전히 내 가슴 한 곳에 아직 녹지 못한 빙각으로 인해 시리고 겁도 나지만 그래도 괜찮다. 바다 위 부표처럼 글을 쓰는 나는 어디에 있던지 항상 나를 잃지 않고 거센 파도에도 유영하며 살아갈 것이다.

 머그컵을 들고 화장실로 가서 수세미에 거품을 묻히며 뽀드닥 거리는 소리가 날 정도로 컵을 닦는다. 과거의 상흔, 내일의 불안을 찌든 때와 함께 흘러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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