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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May 03.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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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수필 공모

 우리 집에는 조그마한 정원이 있다.

 어느 이른 봄날의 일요일 저녁이었다. 밥을 먹은 후 거실에 앉아서 TV 예능 프로그램을 보고 있을 때, 애달픈 아기 울음소리가 정원에서 들려왔다. 문을 열고 밖을 나가보니 배가 부른 어미 고양이가 구슬프게 울고 있었다. 자신의 몸을 가누지 못할 만큼 비틀거리면서도 배 안에 있던 새끼들의 안위가 걱정되었는지 나를 노려보는 고양이의 눈빛에 슬픔이 서려있었다. 나는 남은 반찬거리 중 고양이에게 줄 만한 음식을 찾아서 건네주었고 나를 경계하던 고양이는 음식을 먹은 후 고맙다는 인사도 없이 떠났다. 고양이는 그 후 몇 번 더 우리 집의 정원에서 구슬프게 울었다.

 벚꽃의 몽우리 필 때쯤, 이주일 동안 소식이 끊긴 어미 고양이가 색깔이 다른 새끼 네 마리를 이끌고 우리 집 정원에서 햇볕을 쬐고 있었다. 마치 내게 본인이 낳은 새끼들을 자랑하는 듯이 우리 집 정원의 식물들을 파헤치면서 뒹굴었다. 따사로운 햇살 아래, 새끼 고양이들은 봄의 기운을 받아 무럭무럭 자랐다. 허약해진 어미의 뒤꽁무니를 따라 참새라도 잡아 볼 요량으로 고양이 새끼들이 나무를 오르는 시늉을 했다.

초여름 비가 억수로 쏟아진 날, 고양이들이 맹렬하게 싸우는 소리가 날카롭게 들렸다. 다음날  아침, 어미를 잃은 새끼들만 정원에 거닐고 있다. 새끼들에게 향한 나의 우려와는 다르게 어미의 솜씨만큼 금세 나무를 타고 올라서 새들을 위협했다. 어미만큼 날쌔지 못했지만 어미의 자태를 가지고 있다. 며칠 뒤, 새끼 고양이 두 마리가 돌아오지 못했다.

 화려한 가을이 지나 겨울에 끝자락에 다다를 때쯤, 남은 고양이 두 마리 중에 한 마리만 정원에 찾아왔다. 나머지 한 마리가 어디 갔는지 물을 수 없을 정도로 바들바들 떨고 있는 새끼 고양이가 축 늘어졌다. 혹시 아플까 걱정되어서 고양이에게 다가가자 고양이가 화들짝 놀라서 도망가 버렸다. 새끼 고양이를 위하는 내 행동이 가족을 잃은 새끼 고양이에게는 위협이 된 것 같았다. 나는 매일 고양이가 돌아오길 기다렸지만, 그 후 고양이는 다시는 정원에 나타나지 않았다.


 세 살 어린 동생이 작년 초에 신입사원이 되었다. 새로운 회사생활에 들뜬 채, 항상 웃고 다니던 동생의 얼굴에 그늘이 진 건 겨우 두 달이 지날 무렵이었다. 나는 직장생활을 오래 한 선배의 느낌으로 동생이 회사생활의 고단함을 맞장구를 치며, 처음 업무를 배울 때는 다들 힘들다며 위로 아닌 위로를 했다.

 동생이 회사에 다닌 지 반년이 지나갈 때쯤, 동생이 회사생활이 맞지 않다고 말한다. 나는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고달프다며 여름휴가까지 대충 다니라는 식으로 동생의 슬픔을 외면했다.

 그 후, 세월은 빠르게 흘러서 여름휴가가 지나고 한 참 뒤 일요일 저녁, 동생과 거실에 누워서 TV를 보고 있었다. 맥락도 없이 동생이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아나운서 앵커처럼 경제지표를 들먹이며 요즘 취업난으로 퇴사하면 재취업하기 힘들다는 것과 너도 여기 취업하기 위해 얼마나 힘들었는지 읊조렸다. 말문이 막힌 동생은 반박도 하지 못했다.

 겨울이 들어갈 무렵의 어느 저녁, 동생이 울면서 집에 왔다.

 “너무 갑갑해, 숨이 막혀.”

 동생은 내게 위로를 바랐지만 나는 잔인하게,

 “원래 세상사는 것 자체가 힘들어, 좀만 버티어 보자, 네가 경력이 쌓이면 선배도 되고 신입사원에서 벗어날 수 있어. 곧 좋은 날이 올 거야.”

 동생은 내게 화조차 내지 않고 자신의 방 안으로 들어가서 방문을 닫아버렸다. 그때 알았다. 내 위로가 얼마나 성급했음을......, 동생이 나로 인해 상처 받았음을 깨달았다.


 내가 다닌 회사는 핍박과 상처의 연속이었다. 회사생활은 정말 쉬운 것이 하나 없었다. 말도 안 되는 상사에 요구에 웃으며 대답해야 했고, 열심히 노력해도 내 성과인 적이 없었으며, 동료의 험담에도 괜찮은 척 참아 넘겨야 했다. 그것이 모두 이미 지나간 과거이기에 괜찮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날이면 누구에게 향할 수 없는 분노로 속을 삭히고 내 자신을 탓하며 스스로를 낭떠러지로 떠밀었다. 나조차도 어찌할 수 없어서 모든 것을 포기한 채로 회사에 출석체크만 하는 주제에 동생의 외롭고 고달픈 오늘 하루를 단지 내 경험에 빗대어 괜찮다는 말로 얼버무리는 것이 옳았는지 되묻는다. 동생의 울먹이던 얼굴이 몇 년 전 나와 같았다.

 처음 회사에 입사했을 때, 나는 열심히 살다 보면 분명 행복해질 거라고 믿었다. 그 당시의 젊은이들의 모토이기도 했고 청춘은 고달파야 한다는 팽배한 의식의 산물이었다. 나 또한 그들의 급류에 따라 언젠가 찾아올 행복을 위해 무조건 ‘열심히’를 외쳤다. 그러나 무조건 열심히 일했던 지금의 나는 행복하지 않는데도 동생에게 먼 훗날 언젠가 찾아올 행복 때문에 회사에 다니라는 말이 정말 동생을 위한 것인지 의심이 든다. 기약 없는 행복의 순간을 바라보며 지금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동생의 방문을 두드렸다.

 동생의 방문이 열렸다. 동생은 침대 위로 돌아가 눕자, 나도 동생 옆에 누웠다. 불조차 켜지 않은 깜깜한 천장 위 무늬를 바라보며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무슨 일 있었어?”

 동생은 오늘 있었던 사건에 대해 한참을 얘기했다. 동료들의 차별과 상사의 무시, 그리고 계속 일해도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심정에 갇힌 채, 홀로 외딴섬에 서있는 동생을 나는 안아주었다.

 “미안해, 그동안 힘들었지, 회사 그만두어도 돼.”

 동생이 한참을 울고 나더니 마음이 진정되었는지 농을 던진다.

 “취업하는 게 쉽지 않다며.”

 둘이 마주 보고 한참을 웃었다. 먼 미래의 행복보다는 오늘의 위로가 필요하다. 나는 누구에게 위로를 주었던 사람이었을까? 생체기를 냈던 사람이었을까? 내가 한 위로가 타인에게 진심으로 전해 졌을지 의심이 든다.

 어쭙잖게 아는 것으로 다른 사람의 슬픔을 판단했고 위로라는 말로 이미 받은 상흔을 헤집었다. 그것은 모두 내 입장에서 상대방을 바라보며 한 말이다. 그 사람의 입장에서 무엇이 안도와 평화를 주는지 한 번 더 고민하고 신중하게 상흔에 밴드를 붙여야 한다. 그리고 스스로 잘 아물어지기를 기다려 줘야 한다.


 고양이는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첫눈이 온 다음날, 차갑게 식은 고양이는 사체로 정원 근처에서 발견되었다. 나는 도망갔다고 생각했지만 고양이는 어미와 뛰놀던 정원을 잊지 못하고 계속 찾아온 모양이다. 그러나 고양이는 나의 섣부를 위로에 겁이 나서 차마 정원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주위만 맴돌았던 행적들만 남아 있다. 고양이의 사체를 보면서 마음이 시렸다.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기를,...... 깊게 판 구멍 속으로 나의 과오를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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