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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Mar 07. 2021

이별의 순간


이어진 파티션 끝에서 같이 떠들고 웃으며 업무를 같이 했던 그가 퇴직 인사를 하고 있다. 어떤 분은 잘 가라며 손을 흔들기도 하고 어떤 분은 어디로 가는지 이직처를 묻는 물음이 파티션 위를 넘나 든다.


 난 무수히 많은 사람들과 이별했다.


첫 번째 헤어진 동료는 나보다 12살이 많은 아저씨였다. 같은 사업부에 다른 팀 사람이라 인사만 하고 지내는 사이 정도였을 때쯤, 알고 지낸 지 오래된  8살 많은 언니의 부탁으로 소개팅 대상을 물색하다 그가 눈에 띄었다. 앞뒤 설명 없이 그에게 혹시 여자 친구가 있는지 살짝 물어봤을 때, 그 말이 고백인 줄 알고 당황하며 임자 있는 몸이라며 무뚝뚝한 그가 활짝 웃었다. 입사한 지 얼마 안 되는 여직원의 고백이 인상이 남았는지 가끔 내게 커피를 사준 사람이었다.

나이가 많은 만큼, 여러 기업체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 그는 내게 사업부의 미래가 불투명하다고 걱정했다. 조금 더 큰 기업에서 일하고 싶다는 말을 밥 먹듯이 하다가 결국 우리 고객사로 가버렸다. 그가 인상에 남는 건 연말마다 일 년에 한 번씩 연락이 왔기 때문이었다. 주로 내용은 나보다 우리 사업부에 대한 안부를 묻는 것이다. 그는 사업부가 금방 망할 거라고 생각했었으나, 오래 건제함에 항상 놀라워했다. 시간이 지나고 자연스레 아이가 태어나자 소식이 뜸해졌다.


두 번째로 기억에 남는 헤어짐은 나보다 11살이 많은 아저씨이다. 삐쩍 마른 몸매에 키가 작은, 깐깐함 마저도 똑똑한 사람이었다. 그는 남자 직원보다는 여자 직원이랑 잘 어울렸고, 가끔 여자 대리와 단둘이 나가기가 머쓱할 때마다 나를 불렀다.

언젠가 해외학회에 갈 일이 있다며 여자 대리에게 면세점에 면세품을 사줄 특혜를 주자, 여자 대리는 한 번도 해외에 나간 적 없는 나를 배려하여 나와 함께 가자고 얘기를 했고, 토요일 오후에 우리 셋은 명동에 있는 롯데백화점에서 만났다. 지금 생각해보면 면세점 물품 대행이 얼마나 번거로운 일임을 알기에 자제했을 텐데, 나는 그들 사이에 끼어서 눈치 없이 물건을 엄청 샀다. 저렴한 가격에 즐거워하는 나와 상반된 그의 표정이 굳어간다. (여전히 그에게는 내 무지함에 미안함이 남아 있다.) 마음 착한 여자 대리는 면세점에서 자신의 물건을 구매하지 않고 백화점 아래 잡화점에서 본인이 필요한 휴대용 5단 우산을 구입하려 했다. 그가 여자 대리 대신 결제를 해주려고 했을 때, 또 눈치를 챘어야 했는데, 못 알아챈 나는 내가 집은 우산도 결제하게 만들었다. 여자 대리가 고마운 마음에 밥을 사준다고 했을 때도, 나에게 먹고 싶은 게 무엇인지 물었을 때에도, 커피를 같이 마시자고 했을 때에 마저도 이 모임의 의도를 알아채지 못했다.

나중에 둘이 따로 몇 번 만났던 사실은 그가 퇴사한 후에 듣게 되었다. 인연이 아니었던 건지, 나의 훼방 때문이었는지, 그는 결국 회사 내 다른 분의 언니와 결혼했다. 그가 고객사로 이동하는 바람에 영업하러 가는 길에 그를 몇 번 만났고, 돌잔치도 가기도 했으나, 결국은 사람 관계가 그리하듯 연락이 소원해졌다.


세 번째 헤어짐은 너무 뜻밖이고 급작스러운 일이라서 서글펐다. 내가 그를 처음 봤을 때는 남자 대리였다. 술을 좋아하는 남자 대리는 지각이 일상이었다. 그의 동료들은 지각할 것 같다는 그의 연락이 오면 컴퓨터를 켜주고 마치 사람이 있는 것처럼 자리를 꾸며주었고 그는 자연스럽게 화장실 갔다 온 것처럼 자리에 앉았지만 몸에서 풍기는 술냄새는 차마 가려지지 않았다. 경상도 남자인 그는 표현이 서툰 탓인지 그를 따르는 남자 후배는 많았지만 연애는 늘 낙방이었다. 그래도 인연이라는 것이 때가 있는지 다른 회사로 이직 후, 몇 년 뒤에 결혼을 한다고 연락이 왔고 이듬해 아이를 낳았다. 그러나 착하고 순박한 그는 이동한 회사의 등쌀에 밀려서 둘째를 낳을 때쯤 다시 우리 회사로 돌아왔다. 무엇이 원인이고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잘 모르겠다. 그의 죽음은, 병마와 싸우던 일 년의 세월이 지나고 그는 밥 한 끼 먹자는 약속도 지키지 못한 채 무심하게 떠나가버렸다. 그의 장례식장에서 본 아이들, 천진난만하게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보면서, 마음이 무너졌다. 아이들을 두고 간 그의 마음이 어땠을까?


이별을 받아들여야 하는 순간들이 있다. 나보다 늦게 왔으나 먼저 떠나는 이들, 회사의 압박으로 회사생활을 정리해야만 하는 이들,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려는 이들, 여러 가지 형태의 이별과 헤어짐을 만나게 된다.


나는 만남과 헤어짐의 고민하게 된다.

나는 누군가에게 어떠한 사람으로 남을 것인가?


나로 인해서, 혹은 내 옆의 누군가로 인하여,

이제 곧 다가올 회사의 누군가의 이별을 나는 매일매일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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