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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Mar 07. 2021

집의 정의


집의 정의는 누구나 다르지만,


나에게 집이란 숲이 우거지거나 호수가 보이는 풍경 좋은 곳에 그림 같은 집, 거실에는 재즈 음악이 흐르고 소파에 앉아서 책을 읽는다. 오후가 되면 나는 커다란 개와 함께 오솔길을 산책하는 정도의 가벼움, 가끔 글귀가 생각나면 적어주었다가 책으로 발간하는 삶을 동경한다. 그런 나의 삶의 반경과 맞는 그를 만나서 소소한 행복을 누리며 그와 닮은 아이와 노는 정도의 평범함, 따사로운 햇볕을 품은 과일과 채소가 무럭무럭 자라는 수확의 기쁨 정도가 내 바람이다.

 

그 소소한 행복이 도시에서, 특히 아파트에서는 꿈과 같은 얘기다. 최근에 이사한 10년 넘은 아파트에서는 윗집이 쿵쿵거리는 것도 예삿일이고 갑자기 핸드폰이 울리거나 물건을 떨어트리는 충격음 때문에 놀란 적도 몇 번 있었다. 밤마다 가구를 옮기는지 매일 바닥을 끄는 울림과 밤늦게 아이가 친 피아노가 들린다.


몇 번의 요청과 간곡한 부탁, 윗집 주인은 처음에 이해를 해주었지만, 사람 사는 곳은 소리가 안 날 수 없듯이 몇 번이고 반복된 연락에 우리도 윗집도 지쳐갔다. 비단 우리 집만의 문제가 아닌 듯, 저녁이면 층간 소음에 주의하라는 안내 방송이 정기적으로 들린다.


아파트의 문제는 벽식 구조라는 점이다. 벽으로 이어진 소리가 위아래 집 혹은 그다음 집으로 넘나 든다. 가뜩이나 도시의 많은 기계에 둘러 쌓인 우리는 원치 않는 소음에 늘 노출되어 있는데, 평온해야 하는 집에서 마저도 쉼을 앗아갔다.


한편으로 오래된 우리 집을 벗어나 입주예정인 집에 가면 층간 소음이 괜찮아지지 않을까 기대를 했다. 주변에 새로 지은 아파트를 찾던 중, 새 아파트로 이사 간 친구의 신혼집 집들이에 참석하게 되었다. 우리는 말을 하다가 중간에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집들이 내내 윗집 아이들이 뛰어다니고 자지러지게 우는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친구는 멋쩍은 표정으로 윗집에서 아기들이 있어서 시끄럽다고 설명하였다.


나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하는가?


우리의 삶에는 평온과 휴식이 필요하다. 모든 것들과 이별하여 얻은 감정의 재정립, 나라는 존재의 자각, 앞으로의 삶에 대한 그림을 그릴 시간들이 필요하다. 그러나 도시에서의 생활은 집 앞에 얼마나 큰 버스정류장과 사람들의 통행이 많은 지하철과 가까운지 여부, 혹은 물건을 손쉽게 구입 가능한 커다란 대형 쇼핑몰의 유무가 삶의 질을 결정하여 가격으로 책정된다.


도시의 구축점과 가까울수록 집의 가격은 천정부지로 오르고 갚기 어려운 빛을 내어 그곳으로 모여든다.

마치 벌집같이.

하루가 지나면 몇 억이 오르니 모두들 그 무리에 끼어들기 위해 악착같이 발끝을 내민다.


나 또한 그 무리 중 하나였다. 월급으로 절대 값을 수 없는 빛을 내어 불나방처럼 뛰어들어 내가 사는 아파트 값이 올랐는지 매일 확인하는 평범한 직장인, 나보다 내 동료의 집값이 오르면 투자를 잘 못한 것 아닌가 후회하며 다른 투자처를 찾아서 청약의 가점을 계산하느라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나는 힘겹게 빚을 내고 산 그 집이 편하지 않다.


언젠가는 꼭 나의 집에서 살고 싶다. 명의만 내 것이 아닌 내 삶을 품은 진정한 내 집,


그 집에 사는 꿈을 꾸며 이자를 갚으러 오늘도 회사에 출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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