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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Aug 29. 2021

우리의 애호박을 위하여

나는 애호박전을 좋아한다.

약간 달군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얇게 잘라진 애호박을 밀가루에 묻혀서 달걀을 두르고 프라이팬에 올리면 자글자글한 소리와 함께 맛있는 애호박전이 완성된다.


마땅한 반찬이 없을 때면, 나는 애호박을 사러 집 근처 마트에 가서 비닐에 씌운 애호박을 신중하게 고른 후 카트에 담았다. 우연히 국내 여행길 도중에 정차한 시골 시장에서 본 애호박을 보기 전까지는 길고 늘씬한 애호박을 좋아했다.

뜨거운 여름, 애호박의 계절이라 시장 어귀부터 채소 가게에는 애호박이 가득했다. 통통하고 굴곡 있는 애호박이 익숙하지 않아서, 내가 아는 애호박과 맞는지 몇 차례나 되물었다. 아주머니는 서울 촌년처럼 묻는 내게 자상하게 애호박이 대부분 이렇게 생겼고, 마트에 나가는 것은 비닐봉지에 갇혀 키우는 인큐애호박이라는 사실을 설명해 주셨다.     


인큐 비닐에 갇힌 만큼만 커야만 하는 성형 틀 속 애호박들,

채용시장에서 규정된 외모를 위해 성형수술대에 올라가는 사람들,

규격화된 세상에 끼어 맞추는 사회가 드디어 채소들에게 예뻐지라고 강요를 한 것이다.     


상품성을 따지며, 손님들이 만지는 탓에 표면이 거칠어지는 위생상 이유라고는 하지만 

결국, 통통하고 굴곡진 애호박보다 인큐베이터에 갇힌 채 자란 균일화된 애호박이 한 상자에 가득 담을 수 있어서 유통 이윤이 남았다는 말은 부정하지 못한다.

     

세상을 움직이는 게 돈이라고 하지만, 

예쁜 외모를 요구받는 채소들에게 너무나도 미안하다.

애호박에게도 꿈이 있고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기질이 있어서 마음대로 커다란 하늘을 보고 자라게 하고 싶었을 텐데, 비닐이라는 막에 갇혀서 평균화되고 표준화된다. 

오로지 인큐 비닐이라는 기준 아래에 비닐보다 크거나 비닐보다 작아도 불량품 딱지가 붙여서 버려진다.

세상에 선보이지 못한 채소들은 맛과 영양이 풍부해도 예쁘지 않다는 이유로 매립된다. 차디찬 땅속에 묻힌 그들의 한이 메탄가스가 되어 환경을 오염시킨다. 


또한, 쓸 필요 없는 인큐 비닐이 복합 플라스틱으로 만든 탓에 재활용이 불가능해서 쓰레기와 함께 매각되어 인간에게 되돌아온다.

    

자연에서 무럭무럭 자라야 하는 채소들에게도 예쁜이 콤플렉스를 씌우는 인간사회에 가끔은 환멸을 느낀다.

마치, 내면의 영양과 맛보다는 겉모습만 치중하는 인간들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보는 것 같다.


예쁘지 않다고 외면받은,

나의 애호박들에게 잠시나마 조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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