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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May 29. 2021

왼손잡이 여자

나는 변이 된 왼손잡이,

왼손으로 밥을 먹지만 오른손으로 글을 쓴다.


변이가 시작된 것은 어린 시절 할머니 댁에서 왼손으로 잡은 포크 때문이었다.


할머니 댁 근처에서 사촌들과 모험을 하다가 돌아와 보니 어른들이 둘러앉아서 수다 중이셨다. 목마른 사촌들과 함께 어른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싱그러운 참외에 달려들었다.

딱!

참외를 왼손 포크로 찍은 이유로 나는 할머니에게 손등을 맞았다. 여자가 왼손잡이라면 노처녀이거나 인생이 박복 해진다는 할머니의 인생관에 기반된 잔소리가 몇 분 동안 이어졌다. 할머니의 엄한 표정에 무서워진 나는 참외도 먹지 못한 채 대문 밖에 쭈그러 앉아 훌쩍였다. 때마침 밖에 나갔다 돌아온 어머니의 품에 안겨서 한참을 울었다.

그 후, 할머니는 어머니에게 집요하게 내 왼손잡이를 고치도록 종용했으나 어머니는 글씨가 지워지는 불편함을 고려하여 왼손에서 오른손으로 글씨 쓰는 것으로 할머니의 잔소리를 마무리 지었다.

그 후로부터 할머니 댁에 가서 음식을 먹을 때면 나도 모르게 오른손잡이인 척 어색하게 연기를 해야만 했다.

 

내 연기 실력이 형편없기 때문일까? 아니면 할머니의 강력한 세뇌 때문이었을까? 할머니의 말처럼 나는 아직 결혼을 하지 못한 노처녀로 남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할머니가 안쓰럽다. 일제강점기 시절 태어나서 18세에 시집 온 할머니 또한 우리 집안에 유일한 왼손잡이 여자였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평상시에는 오른손잡이인 척하셨다가, 어머니와 내가 있을 때면 자연스럽게 왼손을 쓰셨다. 할머니는 본인을 많이 닮은 나에 대한 염려 때문에 내게 유난히 표독스럽게 구셨다는 것을 훗날 깨달았다.


지금은 언급되지 않지만, 그 당시 일본에서는 여자가 왼손잡이라는 이유만으로 이혼 사유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일제강점기 시절을 지나 여러 사람에게 구전되어 전해진 얘기가 왼손잡이 할머니에게 독실한 신앙이 된 것이다.

존중받지 못한 그 시절, 어린 나이에 시집와서 이혼당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했을 할머니의 어린 시절이 안쓰럽다.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바뀌어 최근에는 왼손잡이 평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왼손잡이라고 말만 하면 모두들 내가 창의적이고 똑똑할지도 모른다는 편견을 갖는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나는 그 편견에 부응하지 못한 채, 평균 지능으로 매일 반복된 일만 잘하는 회사원일 뿐이다. 그래도 가끔 할 말 없는 상대와 밥을 먹을 때, 간단한 잡담 정도로 왼손잡이에 대해 논할 수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해외 평균 10%대, 우리나라 인구 중 2%~5%인 왼손잡이,

그 외에 사소한 불편함이 항상 있었다.


예를 들면, 어린 시절부터 밥 먹는 손이 오른손이라고 가르쳐준 선생님 덕분에 좌향좌 우향우를 잘 못해서 혼났고, 옆 짝꿍이랑 팔꿈치가 부딪쳐서 싸움이 날 뻔했다. 사회인이 되었을 때, 고깃집에서 가위질을 잘 못해서 삼겹살을 정형화되지 않는 모양으로 자른 탓에 지금까지도 회식 때마다 고기 자르기 싫어서 일부러 이상하게 자른다고 놀림을 당한다.

어느 날은 지하철을 타려고 무심결에 왼쪽에다가 카드를 가져다 댄 후 문이 안 열린다고 항의했다가 민망한 적도 있었다. 엘리베이터 많은 곳에는 오른쪽 버튼을 인지하지 못하고 왼쪽 버튼을 놀렸다가 내가 기다리는 엘리베이터가 오지 않아 한참을 기다린 적도 있다. 오래된 경차를 타는 나는 가끔 오른쪽에 꽂힌 열쇠를 놓고 내린다.

문틈에 낀 적도, 어딘 가에 부딪쳐서 다친 적도, 늘 사사롭게 왼손에 상처를 달고 살았다. 이 정도는 오른손잡이들의 사회 시스템에 맞추어 살아가야 하는 사소한 해프닝이었다.


오른손을 단지 왼손으로 행한다는 것만으로도 생성되는 수많은 이견들이,

편견을 만들어 선입견으로 확립되는 과정에서 우리는 언제 스탑 버튼을 눌러야 하는가?


대부분의 편견은 다수에서 소수로,

무지의 공간에서는 폭력이 된다.


여자라는 편견,

여자는 감정적이라는 편견,


내가 입사하기 10년 전에는 여자는 결혼하면 퇴사를 해야 했다.

내가 입사할 때는 30명인 팀에서 여자 직원은 2명뿐이었다.

지금은 50명의 직원 중 여자 직원은 10명이 넘는다.


여자는 이성적이지 못하고 감성적이며 출산과 육아로 부재중인 경우가 많은 민폐 동료라는 편견에서, 여자 동료 또한 한 사회의 구성원이며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존재라는 인식이 생기기까지,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노력하고, 서로가 서로를 이해해주는 관계 속에서 편견이 해소된 것이 아닐까?


모두가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해주고 이해받으며 살아가는 편견 없는 세상으로.....,


만약, 오른손잡이인 척해야만 했던 어린 시절 나를 다시 만나면,

이제는 괜찮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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