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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Oct 16. 2024

16.아버지를 찾아서

방문을 살며시 열어서 어머니가 주무신 것을 확인한 후, 조심스럽게 현관문으로 걸어간다. 나는 현관문에 쪼그려 앉아서 운동화 끈을 질끈 메고, 서울역으로 출발한다.

기차가 익산역에 도착하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휩쓸려서 역사 밖으로 밀려 나간다. 스마트폰 지도 검색을 하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을 잃어버렸다. 무작정 택시를 타고, 미스터 박씨가 알려준 공장으로 간다. 공장이라기에 협소한 그곳, 사람을 찾아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자 멀리서 경비원 다가온다.

-누구세요?

-엘비스 홍씨를 찾으러 왔어요.

-엘비스 홍?

영암에서만 통하는 그 이름, 웃음이 터져 나오는 걸 간신히 참고 정정한다.

-홍일수씨요.

경비원은 경비 초소에 들어가서 직원들의 이름 목록을 찾아본 후, 밖으로 다시 나온다.

-홍일수라는 사람 없어, 가봐.

-한 4~5년 전에서 근무했을 거예요. 부탁입니다. 제 아버지세요. 꼭 찾아야 합니다.

경비원은 한참은 생각하더니 경비초소에 들어가서 누군가와 전화 통화를 한다. 한참의 시간이 흐르고, 전화통화가 끝나자 경비원이 문을 열고 고개를 내민다. 

-곧 나올 거니깐, 얘기나 나눠봐. 

저 멀리서 공장 잠바를 입은 중년 남자가 다가온다. 

-홍씨 딸내미인가?

-예.

-일 한지 얼마 안돼서 사채업자들이 찾아오는 바람에 홍씨 청주로 갔어. 여기 일하던 직원의 친척이 청주에 과수원을 하고 있는데, 과수원까지는 사채업자들이 쫓아오지 않으니까 그 쪽으로 간 걸로 알고 있어. 

그가 건네준 쪽지에는 과수원 주소가 적혀 있다. 

-감사합니다.

-뭘~ 영암에서 홍씨에게 신세 진 게 있는데 이걸로 갚은 거지, 담에 홍씨랑 같이 내려와.

감사 인사를 나누고, 그 길로 택시를 타고 익산역으로 역주행 한다. 역사에 도착하자 10분 뒤에 떠나는 청주행 기차표를 손에 꽉 쥔 채 달린다. 

청주역 앞 택시 기사에게 메모지를 보여주자, 운전기사가 기어를 변경한다. 도로변을 벗어나 논밭 위를 한참 내달리자, 작은 마을이 보인다. 

-저 비탈길을 쭉 올라가면 과수원 나와유~ 오래 안 걸리면 여기서 기다릴까유~?

50대 후반쯤 보이는 운전기사는 백미러로 나의 미동을 살핀다. 약간의 망설임, 아버지가 사채업자를 피해 여기서 숨어 지내고 계실 듯싶다. 나는 카드를 내밀어서 택시 값을 결제한다.

비탈길로 올라가는 길목에 펑퍼짐한 파자마를 입은 아주머니가 챙이 넓은 모자를 고쳐 쓰신다. 

-아주머니 잠시만요~

아주머니는 내 목소리를 못 들으셨는지 경운기를 향해 달리신다. 나는 아주머니를 뒤를 쫓는다. 

-저기요. 아주머니~

경운기 뒷자리에 앉은 채, 뜨거운 뙤약볕을 가리느라 분주하신 아주머니가 나를 발견했는지 앞의 경운기를 모는 운전사에게 멈추라고 손짓한다. 경운기는 조금 밀리면서 멈춘다.

-무슨 일이유~

-저기 혹시 홍일수씨 아세요? 3~4년전에 여기서 일했는데요.

아주머니가 인상을 찌푸린다.

-기억이 잘 안나는구먼유~

-기타 치셨는데 기억나세요?

아주머니가 앞의 남편일지도 모를 운전사에게 말을 한다.

-기타치던 아저씨 성이 홍씨였남유?

운전사가 아주머니에게 큰소리로 속삭인다.

-그치그치, 홍씨였지.

아주머니가 나를 향해 말한다.

-홍씨 여기 없는데~

-어디 가셨는지 아세요?

아주머니가 앞의 남편에게 묻는다. 

-천안 어디라고 했지?

-천안 무슨 휴게소라고 했는데 거기서 호두과자 만든다고 했지 아마.

-맞다~ 맞어, 천안 휴게소 호두과자 파는 데로 가봐~ 사실 우리가 3년 전에 흉작이라 사과농사를 망쳐서, 애기 아빠가 아는 사촌한테 부탁해서 일자리 마련해 준거구먼~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홍씨 우리 일도 잘 도와주고 성실했는데, 오히려 그때 우리가 임금도 제대로 못 쳐주고 미안했지. 나중에 만나면 연락 한번 주라고 해~ 내가 밀린 임금 쳐준다고.

-알겠습니다. 전해 드릴게요.

-그럼 조심히 가~

손을 흔드는 아주머니를 태운 경운기는 돌에 부딪쳐서 덜컹거리며 산 비탈길을 넘어간다. 기대에 상응하는 허탈한 감정, 터벅터벅 걷는 길가에 하얀색 민들레 홀씨가 뜨거운 바람에 나부낀다. 내 얼굴을 스친 홀씨는 바람을 타고 산 너머로 날아간다. 

뜨거운 7월의 태양을 받은 정수리는 달아오르고 택시를 타고 들어온 마을은 대로변과 멀다. 흘릴 수 있는 땀이 없어서 탈수 증세가 오고, 온몸의 힘이 빠진다. 한참을 걸었을까? 대로변에 다다르자 유유자적한 택시 한 대가 내 눈 앞을 지나간다. 나는 젖 먹던 힘까지 짜내어 택시를 부르며 달려간다. 나의 허우적거리는 소리를 들었는지 택시가 멈춘다.

-아가씨 어디가셔~

-저 천안 휴게소로 가주세요

-천안 휴게소에 사는 것도 아닐꺼구~ 거기는 왜 가유~

-일이 있어서요.

택시 기사는 그 후로 쉴 세도 없이 나에 대한 궁금증으로 끊임없는 질문을 하신다. ‘왜 여기 왔느냐?’부터 시작해서 ‘결혼은 언제 하느냐?’까지 호구 조사를 하신다. 대충 호응하면서 나는 녹초가 된 몸을 자동차 에어컨으로 녹이고 있다. 고속도로로 빠진 택시는 한참을 달려서 천안 휴게소에 도착한다. 택시 기사가 묻는다.

-돌아가? 기다려?

-기다려 주세요.

택시 문을 닫고 서둘러 호두과자 집을 찾는다. 커다란 호두모양을 새겨 넣은 간판이 눈에 띈다. 하얀 모자를 쓴 점원이 호두과자를 봉투에 담으면서 묻는다.

-얼마나치 드려요?

-사람을 찾으려고요. 여기서 일하셨던 홍씨 아세요?

-홍씨가 누구에요?

-그니깐 기타 치시던 50대 중반의 남자요~

호두과자의 기계를 조작하던 직원이 말을 거든다.

-왜 있잖아. 여기서 일 잘해가지고, 저기 안산 휴게소 점장으로 간 사람.

-아~ 일수씨 

-예, 맞아요. 

-안산 휴게소로 가보세요. 2~3년 전에 그쪽으로 옮기셨다고 들었거든요. 근데 일수씨랑 무슨 사이세요?

-딸이에요.

그가 봉투를 열어 호두과자를 가득 채운 뒤 내민다.

-안주셔도 되요. 얼마예요?

-나중에 아버지 만나면 호두과자 최씨가 줬다고 전하면 알거예요.

손에 호두과자 봉투를 들고 감사 인사를 한 뒤, 아까 타고 온 택시로 간다. 택시 기사는 밖에 나와서 요상한 동작으로 체조를 한다.

-어디로 가요?

-안산 휴게소요.

택시 기사가 엔진을 달군다.

-휴게소 직원이유? 사방팔방 쏘다녀?

-찾는 사람이 있어서요.

내가 툭 던진 말에 택시기사의 눈동자가 반짝인다.

-누구를? 

-아버지요.

-허참, 아버지가 어디 있는지 몰라?

-예.

-아버지가 핸드폰이 없으셔?

-번호를 몰라요.

나에 대해 40분전에 처음 안 택시기사가 혀끝을 찬다.

-따님이 무심하셨네. 아버지 찾아 뵙지도 않고

-이것 좀 드세요.

나는 손에 쥔 호두과자 봉투를 기사에게 건네고 눈을 감는다. 기사는 호두과자를 먹는지 바스락 거리는 소리만 귓가에 들린다. 

잠깐 눈을 붙인 사이 택시는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올라가 영동고속도로로 갈아탄 다음 안산휴게소로 들어간다. 택시기사가 기어를 P자로 돌린다.

-나 어디 안가고 기다릴 테니깐, 퍼뜩 다녀오구먼유~

-감사합니다.

휴게소 안 달달하게 음식들의 냄새가 돈다. 시간은 점심시간을 훌쩍 넘었고 주위의 음식들이 나를 유혹한다. 유혹을 이겨가며 호두과자 집을 찾았지만 보이지 않는다. 주위 상인들에게 묻고 물어 도착한 곳은 김밥과 샌드위치를 파는 모퉁이의 협소한 상가였다. 음식 조리대가 없는 판매대에 기대어 졸고 있는 아주머니에게 묻는다.

-여기 호두과자집 없어요?

-거기 장사 안 되서 1~2년 전에 문 닫았어, 우리가 천안에서 직접 사온 호두과자를 팔고 있으니, 맛있어. 먹어봐.

아주머니는 주문하지도 않았는데, 봉투를 뜯어 호두과자를 내게 내민다.

-괜찮아요, 전 사람을 찾고 있어요.

-누군데?

-홍일수씨요.

-홍씨? 기타 멘 50대 중년 남자?

-맞아요.

아주머니는 슬그머니 내 입에 호두과자를 넣으신다. 두 번 권한 아주머니의 손길이 무안할까봐 먹는다. 호두과자가 푸석거리고 맛이 없다.

-그 사람 여기 호두과자가 망하니깐 다른 데로 갔지, 내가 듣기로는 저기 안산공단 안에 자동차 부품공장에서 일한다고 하던데. 

-어딘지 아세요?

-이 호두과자는 2천원이고, 홍씨가 저기 앞에 있는 오뎅바 파는 정씨랑 친했거든, 가서 물어봐~

나는 주머니에서 2천원을 내민다. 

-감사합니다.

반대편 가판대에서 고개를 숙이며 정성을 다해 오뎅을 튀기는 40대 아저씨에게 다가간다.

-혹시 홍일수씨아세요?

-홍씨? 댁은 누구슈?

-전 홍씨 딸인데요.

40대 아저씨가 고개를 들자 눈 밑에 흉터가 있다.

-홍씨 자동차 부품공장에 있어. 

-어딘지 아세요?

40대 아저씨가 뒤적거리며 서랍 속을 살피더니 나에게 명함 하나를 내민다.

-같이 면접 보러 갔었거든, 난 떨어지고 홍씨는 되고. 거기로 가봐.

-예 감사합니다. 

나는 갓 튀겨낸 핫바의 유혹을 못 이기고 두 개를 주문한다. 양손 가득히 무언가를 들고 택시로 걸어가자, 택시 옆에서 운동 중이던 기사가 입맛을 다시면서 말을 보탠다.

-운동한 게 소용이 없구먼. 

택시기사 아저씨는 핫바를 입에 물고 묻는다.

-이번에 어디로 가면 되남?

-안산 내 자동차 부품공장이라네요.

나는 명함을 건네자, 택시 기사가 D드라이브로 바꾸더니 차가 움직인다. 

-왜, 아버지랑 소식이 끊겼데?

택시기사가 핫바를 흡입한 후, 입가의 기름을 손등으로 문지르더니 질문 공세를 시작한다. 나는 호두과자를 택시기사에게 드린다. 택시기사가 맛을 보더니 대통령부터 말단 공무원까지 싸잡아 욕을 하기 시작한다. 어떻게 휴게소에서 사람 먹을 음식 하나를 관리하지 않느냐며, 이래가지고 다른 나라 사람들이 오겠는지, 나라의 경제가 호두과자에 달린 것처럼 분개를 한다. 안산의 자동차 부품공장에 내릴 때까지, 호두과자 덕분에 설명하기 애매한 답들을 억지로 늘어놓지 않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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