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기타를 뒷좌석에 태우고 운전한다. 블록을 지날 때마다 차가 높게 뛰자, 뒷좌석에 앉은 기타가 높이 올랐다가 떨어진다. 소규모 콘서트 장은 준비 작업 때문에 분주하다. 건축가 양반은 현수막을 달다가 내려와서 나를 보고 반갑게 인사한다.
-왔네요.
-예, 안녕하세요.
내 어깨에 멘 어머니의 기타를 건축가 양반에게 넘기자 어머니는 건축가 양반의 뒤를 따라서 대기실로 들어간다. 건축가 양반이 준 티켓을 가지고 나는 관객석에 앉는다.
-어머 오랜만이에요.
옆에 보니 건축가 양반의 딸이 있다.
-잘 지내셨죠?
-여기서 뵙네요. 여기 제 남편이에요.
딸 옆 좌석을 보니 남편분이 앉아 있다. 남편이 누구냐고 입모양으로 묻자 건축가 양반 딸이 우리아버지 소개팅한 분의 딸이라고 입모양으로 대답한다. 남편이 반갑게 인사한다.
-안녕하세요.
-예, 안녕하세요.
딸이 나를 향해 속삭인다.
-두 분 잘 만나시는 거 갖죠?
-예~ 며칠 전에 저희 집에도 오셨어요.
-어머나, 얼마 전 아버지 생신이라 같이 저녁 식사를 했는데 아버지가 저한테는 사귀는 사이 아니라고 발뺌하시고는 계속 영자씨 얘기만 하시더라고요.
-그래요? 서로가 잘 맞나 봐요.
-잘 됐으면 좋겠네요. 어머니 돌아가시고 아버지 혼자 적적해하셨는데, 좋은 분 만나서 여생을 재미있게 보내시면 좋죠. 이거 사실 비밀인데요. 아버지 가방 안에서 케이스 속 반지를 발견했거든요. 아마 프러포즈 하실 생각이신 거 같아요. 우리 잘하면 자매되겠어요.
-그렇군요.
손 놓고 있어도 자연스럽게 흘러가듯, 두 분이 결혼하시고, 나는 준호와 결혼을 하고, 새로 가족이 된 언니와 다 같이 모여서 식사를 하는 상상과 기대, 어쩌면 이렇게 건축가 양반과 어머니가 사는 게 행복일지도 모른다. 적어도 건축가 양반은 어머니를 버리고 잠적하진 않을 테니깐, 그래서 내가 아버지를 찾아 헤매야 할 일은 없을 것이다.
장막이 쳐지고 노래가 시작한다.
첫 번째 중년 남자가 김광석의 서름 즈음에와, 두 번째 중년 여성이 원미연의 이별여행을 기타를 치며 부른다. 세 번째 중년남자의 변집섭의 그대 내게 다시가 끝나자, 중후한 목소리의 건축가 양반은 김현식의 내사랑내곁에 부른다.
[나의 모든 사랑이 떠나가는 날이 / 당신의 그 웃음 뒤에서 함께하는데 / 철이 없는 욕심에 그 많은 미련에 / 당신이 있는 건 아닌지 아니겠지요. / 시간은 멀어 집으로 향해 가는데 / 약속했던 그대만은 올 줄을 모르고 / 애써 웃음 지으며 돌아오는 길은 / 왜 그리도 낯설고 멀기만 한지 / 저 여린 가지 사이로 혼자인 날 느낄 때 / 이렇게 아픈 그대 기억이 날까 / 내 사랑그대 내 곁에 있어줘 / 이 세상 하나뿐인 오직 그대만이 / 힘겨운 날에 너마저 떠나며 / 비틀거릴 내가 안길 곳은 어디에 -김현식 내사랑내곁에]
어머니가 건축가 양반에게 기타를 잘 가르쳐 줄 수 있었던 이유를 알았다.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자주 불러 줬던 노래, ‘내 사랑 내 곁에 있어줘, 이 세상 하나뿐인 오직 그대만을~’ 후렴구가 나오면 어머니는 서로가 서로에게 호흡하듯 아버지의 눈을 항상 바라보았다. 말없이 눈빛으로 이 세상 끝나는 날까지 떠나지 않기로 맹세했을 것이다. 아버지의 무모한 도전으로 어머니 당신이 힘들었을 때도 묵묵히 버티어낸 건 그게 어머니만의 사랑의 표현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어머니는 무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가운데 의자에 앉아서 기타를 무릎위에 올린다. 나미의 슬픈인연을 부르신다.
[멀어져 가는 / 저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 난 아직도 이 순간을 / 이별이라 하지 않겠네./ 달콤했었지. / 그 수많았던 추억 속에서 / 흠뻑 젖은 두마음을 /우리 어떻게 잊을까 / 아 다시 올거야 너는 / 외로움을 견딜 수 없어 / 아 나의 곁으로 / 다시 돌아 올거야 /그러나 그 시절에 너를 또 만나서 / 사랑할 수 있을까 / 흐르는 그 세월에 나는 또 얼마나 / 많은 눈물을 흘리려나 -나미 슬픈인연]
떨리는 어머니의 노래가 아버지에 대한 미련을 흘러나오게 한다.
아버지의 악기점을 들락거리던 중년의 노신사, 그는 본인을 음반제작자라고 소개했다. 그와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물이 흐르듯 아버지의 노래가 그의 음악적 촉을 세웠고, 그 남자는 히트감이라며 아버지에게 앨범을 제작하도록 부추겼다. 아버지는 악기점을 처분하고 빚을 내어 돈을 끌어 모았다. 앨범이 나오고 음반제작자에게 돈이 건네지는 순간, 그가 돈을 가지고 연기처럼 사라 졌다. 빚은 또 다른 빚을 부르고 기타를 치는 세상이 전부였던 아버지는 침묵했다. 그 옆에 야윈 어머니와 어른이 되지 못한 나는 지쳐 갔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싸우는 횟수가 늘어났고 못된 말로 서로의 상처를 주고받았다. 다시 올 거라 믿던 아버지의 부재가 어머니의 상처를 치유하지 못하고 덧나게 만들었다. 피는 속일 수 없다고 노래만 들어도 엄마의 마음이 저민다.
마지막으로 ‘여행을 떠나요’라는 곡을 합창하며 콘서트는 끝나자, 관객들은 있는 힘껏 박수를 친다. 불이 켜지고 각자의 길로 헤어지는 시간, 나와 건축가의 딸 내외는 대기실로 갔다. 대기실 문 틈새에서 건축가 양반이 어머니에게 말하는 소리가 들린다.
-영자씨, 미술관에서 당신과 넘어진 일은 우연이 아니라 인연이었어요. 지금처럼 같이 음악을 공유하면서 재미있게 여생을 보내고 싶어요. 당신의 아픔까지 제가 더 사랑할게요.
어머니의 침묵이 길어질수록 나의 심정은 착잡하다.
-진석씨, 저 아직도 그 사람이 생각나면 마음이 아파요, 미안해요. 이미 다른 사람의 남편이기에 잊어야 한다고 마음을 먹었는데도 잊혀지지가 않아요. 정말 미안해요.
뺨에 눈물자국을 훔치는 어머니가 대기실 문을 열고 나오다가 나와 건축가 딸 내외를 마주하고 놀란다. 어머니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하고, 대기실 안 건축가 양반은 축 처진 채 의자에 앉아 계신다. 어머니는 건물 입구로 뛰어가자, 나는 어머니의 뒤를 밟는다. 어머니는 입구 가장자리의 턱에 걸쳐 앉아서 온몸을 흐느끼며 운다. 나는 어머니를 안으며 등을 쓰다듬자, 진정되었는지 먼 산만 바라보신다.
-엄마, 건축가 아저씨 맘에 안 들어?
-맘에 들지, 배려하시고, 멋지고, 자상하시고 좋으신 분이야
-건축가 아저씨 직장도 탄탄하고 엄마 고생 안 시킬 거야. 이번기회에 만나는 건 싫어?
-내가 재혼했으면 좋겠니?
-엄마에게 말을 못했는데, 나 지금 만나는 사람이랑 결혼할 거 같아. 그쪽 아버님이 곧 정년퇴직이시라, 3개월 내에 결혼해야 한데.
-왜 그런 애기를 지금 해? 엄마한테 먼저 얘기했어야지.
-그게, 아버지가 안 계신 걸 들키고 싶지 않았어.
-그래서 네가 재혼 얘기를 계속 꺼낸 거야? 아버지 재혼까지 들먹이면서?
-난 다만 엄마가 혼자 남는 것도 원치 않고 이젠 아버지 잊고 행복했으면 좋겠어.
-연주 아빠를 어떻게 잊어,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사람이지. 첫사랑이거든. 정말 많이 좋아했던 사람이었는데, 현실에 치이고 삶에 짓눌러서 잊어버린 거야. 그 사람이 내게 얼마나 소중한 사람이었는지, 떠나갈 줄 알았다면 잔인한 말 하지 말걸, 응원해 줄걸, 하루에 몇 번씩 후회해.
-엄마도 어쩔 수 없었잖아. 그때는 살아갈 방법이 없었어. 매일 불판 닦고 홀 서빙하고 힘들 고 지칠 수밖에 없었잖아.
-그래도 그 말만은 하면 안됐는데. 그게 마지막이 될 줄 알았다면 작별 인사라도 제대로 할 걸, 혹시 너희 아버지 전화번호 아니? 그냥 마지막 인사라도 하면 마음이 정리될 것 같아.
-나도 위치만 알아.
-그게 어딘데?
-내가 먼저 만나보고 올게.
등 뒤에 인기척이 들리자, 건축가 양반이 다가온다.
-영자씨 미안해요. 그냥 난......,
건축가 양반이 말끝을 흐리자 어머니가 하늘을 본다.
-비가 내리네요.
-예! 예~
-오늘 뒤풀이 한데요?
-다음 모임 때 간단히 하기로 했어요. 오늘 가족들이 많이 와서요.
-다음에 봬요~
어머니가 눈웃음치자 건축가 양반은 과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건축가 양반한테 건네받은 어머니의 기타를 든다.
자동차를 타고 돌아오는 길목, 어머니는 긴장이 풀린 탓인지 의자에 기대어 깊이 잠드셨고 차는 막힌다.
대문 앞에서 아버지를 기다리던 소녀는 그리움이 쌓이고 쌓일 때까지 골목길을 벗어나지 못했다. 비가 많이 오는 어느 날, 빗속에 젖을 아버지가 걱정되어 우산을 들고 찾아 다녔다. 아버지가 자주 가던 음식점, 아버지와 친했던 친구의 집, 아버지와 자주 놀았던 놀이터, 아버지를 찾다가 지친 소녀는 아버지를 잊은 줄 알았다. 그러나 문뜩, 타인과 이별할 때면 불현듯이 아버지가 생각난다. 아직도 작별하는 중인 그, 아버지를 떠올린다. 오늘따라 아버지를 만나고 싶다. 아버지를 만나야 나를 에워싼 모든 것 들로부터 작별할 수 있을 거 같다.
젖은 유리창 너머, 애상의 젖어 있는 나를 깨우는 전화벨소리가 울린다. 준호다.
-오늘 엄마랑 재미있게 보냈어? 내일 우리 만나기로 한 거 잊지 않았지?
-오빠
-왜?
-저, 아버지 만나러 내일 지방에 갔다 오려고요.
-같이 갈까?
-저 혼자 아버지 놀라시지 않게 내일 잠깐 갔다 올 게요.
-그래도 이번 기회에 같이 가는 게 낫지 않을까?
-그러지 말고 다음 주에 우리 집에 와요.
-드디어 인사하는 건가?
-네 말씀드려 놓을 게요.
-어 알았어. 내일 잘 다녀와
-이해해 줘서 고마워요.
-응
비온 뒤, 유리창 너머의 별은 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