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위 공장에서 뿜어낸 시커먼 먼지가 하늘을 뒤덮는다. 기괴한 기계음이 울리는 공장 안으로 들어가자 공장 잠바를 입은 남자가 지나간다.
-저기 말씀 좀 여쭙겠습니다.
그 남자는 나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지 공장 안으로 들어가 버린다. 그 남자를 따라서 공장 안으로 들어가자 시커먼 공기가 공장 내부를 채운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을 동물적 감각으로 일하는 그들 중, 포대자루를 들고 공장 밖으로 나오는 남자를 만난다.
-안녕하세요.
이목구비가 뚜렷한 남자가 어눌한 말투로 말한다.
-안녕하세요.
동남아시아에서 온, 외국인 근로자로 보이는 외국인이다.
-혹시 여기 홍일수씨 있나요?
-홍일수? 모르는데요.
-홍씨는 있나요?
-홍씨?
그는 왼쪽손으로 가상의 홍시를 들고 오른손으로 숟가락을 든 채, 파먹는 시늉을 한다. 나는 아니라는 의미로 두 팔로 엑스 자를 그린다. 그는 고개를 갸우뚱한다.
-기타 치시는 분이요.
못 알아들었는지 고개를 갸우뚱하는 그에게 내가 기타 치는 흉내를 내자 그가 알겠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인다. 남자는 주위를 살핀 후, 유창한 한국어로 말한다.
-저를 따라오세요.
어리둥절한 그의 한국어 실력에 벙찐 나를 향해서 그는 이리로 오라고 손짓한다. 그가 안내한 곳을 따라서 컨테이너 박스 안으로 들어가자, 모서리에는 이불과 베게가 쌓여 있고 다른 쪽에는 각종 생활 용품과 옷가지들이 널 부러져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기타가 옷가지들 사이에 숨어 있다. 나는 기타 케이스를 벗겨내고 동그란 구멍 속 내부를 보자, 아버지의 친필 서명이 있다.
-홍은 6개월 전에 그만 뒀어요.
-왜요?
그는 왼쪽 네 번째 손가락 두 번째 마디에 오른손으로 가위질을 한다.
-홍이 더 이상 기타가 필요 없다며 저한테 선물로 줬어요. 홍이 기타 치는 방법을 알려 줬어요.
그는 기타를 무릎위에 올려놓고 검은 떼가 낀 손가락으로 한 두음씩 내리치면서 흥얼거린다. 김광석의 가사에 캄보디아 전통춤인 압사라를 춰야 할 만큼 이상한 리듬이 흘러나온다. 진지하게 부르던 그는 기타는 배우다 말았는지 결국 북처럼 두드리는 데 사용한다.
[점점 더 멀어져 간다. /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 비어가는 내 가슴 속엔 / 더 아무것도 찾을 수 없네. -김광석의 서른즈음에]
아버지가 머물다 간 이곳에서 나를 반기는 건 내가 싫어하던 아버지의 분신인 낡은 기타였다. 그는 한두 번 줄을 더 튕기던 기타를 케이스 속에 넣은 후, 나에게 건네준다. 어딜 가든 아버지의 곁을 지켰던 기타가 돌고 돌아, 결국 내게로 왔다.
-홍은 우리에게 한국어도 가르쳐주고 친 아빠처럼 챙겨 주셨어요. 모두들 홍을 좋아했죠. 당신은 홍하고 많이 닮았어요. 홍의 기타를 드릴게요.
-아니에요. 가져가세요. 전 필요 없어요.
그는 포기하지 않고 말한다.
-아버지에게 기타를 꼭 전해주세요. 저는 곧 한국을 떠나요. 감사하다고, 다시 예전처럼 기타 치시길 바란다고 전해주세요.
그의 간곡한 부탁에 외면할 길 없는 나는 기타를 받아 든다.
-어디 가신다는 말없었나요?
-따님 만나러 가신다고 했어요.
-예? 저에게요? 전 못 만났는데요.
-이상하다. 분명 집에 간다고 했는데
‘핫센’
문을 열고 머리는 내미는 다른 외국인이 그를 부르자, 이름을 처음 알게 된 핫센이라는 청년이 문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반장님이 부르셔~ 빨리와~
-얼른 가세요. 저 일하러 가야 해요.
컨테이너 밖으로 나온 핫센은 나에게 가볍게 인사하고 서둘러 공장안으로 들어간다. 나는 엉겁결에 아버지의 커다란 기타를 손에 들고 택시로 걸어간다. 나는 택시 속으로 기타를 넣고 몸을 싣는다.
-기타는 어디서 난거유~? 이제 어디로 가면 되는겨?
-서울로 가주세요.
택시 안, 창밖에 비가 내린다.
떠나시기 몇달 전, 아버지는 방문을 열고 기타를 가지고 들어오신다. 나는 어머니의 반대에 무릅쓰고 자산을 탕진해서 앨범을 낸 아버지에게 적대심을 품고 있었다.
-연주야 자니?
나는 자는 척 몸을 돌려서 이불을 덮고 숨소리를 삼켰다.
-기타 여기 놓고 갈게, 예전에 약속했잖아. 기타 가르쳐 주겠다고, 하나 얻은 게 있어서 두고 갈게, 잘자.
내 방문이 닫히고 나는 이불 속에 숨어서 흐느껴 울었다. 다음날 아침, 퉁퉁 부운 눈으로 바라보기에도 역겨운 기타가 내 방문 옆에 서있었다. 잠이 들깬 상태로 잠옷 입은 채, 집 밖으로 나가 대문 옆 쓰레기통에 기타를 버렸다.
그날 저녁 기타는 베렌다에 서 있었다. 그날 하루 종일 내린 비에 쫄딱 맞은 생쥐 차림으로......,
빗방울이 하나 둘씩 택시 창문을 타고 흘러내린다. 습한 날씨 탓에 창문에 서리가 끼였다. 창문 너머에 흐릿하게 보이는 풍경을 바라본다. 마치 원래 내 눈이 뿌옇던 것처럼 내 눈 앞에도 서리가 낀다.
아버지를 만나면 이제 와서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아버지가 오시지 않은 어느 날부터, 혼자 세상에 버려진 소녀에게 아버지의 사과를 받아 낸다면 분노가 가라앉을까? 다른 아버지가 그러하신 것처럼, 자식을 위해 희생을 하지 않은 아버지를 탓 한다면 소녀의 슬픔이 위로가 될까? 싸워야 할 상대를 잃은 듯한 허탈한 심정, 잃어버린 10년, 우린 타인 보다 못한 가족이 되어 버렸다.
문뜩, 몇 개월 전 인력사무소의 험상궂은 남자의 태도가 의심쩍었다. 나에게 아버지를 찾아주겠다던 그가 삼 만원을 요구하며 열심히 찾더니 그가 마지막에는 10년 전 기록만 남았다는 말로 단칼에 자른다. 그는 모니터로 분명 무언가를 보았다. 10년 전에 기록이 아직까지도 남아 있을지, 그 허름한 인력 사무소의 능력치로는 무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