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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Oct 18. 2024

18.왜 모른척 했을까?

해피인력 사무소에 도착한 후 택시에 내려서 옥상 꼭대기에 있는 인력 사무소로 뛰어올라간다. 인력 사무소는 문이 닫혀 있다. 나는 있는 힘껏 문을 두드리자 나에게 삼만원을 갈취했던 험상궂은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린다.

-오늘은 영업 안합니다.

-빨리 문안 열어?

나는 반말로 내지르며 문을 발로 차자 험상궂은 남자가 인상을 찌그리며 문을 연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따지듯이 그에게 묻는다.

-우리 아버지 어디 있어? 당신 알지?

-주말에 뭐하는 짓이야. 아버지가 누군데?

-홍일수, 당신 우리 아버지를 최근에 본적 있으면서 왜 숨겨?

-부녀가 가지가지 한다. 아버지는 비밀로 해달라고 돈 주고, 딸은 알려달라고 돈 주고, 집안 문제는 집에서 좀 해결해! 

-알려주지 않을 거면서 돈은 왜 받았어?

-내가 너한테 삼 만원을 받자 너희 아버지가 칠 만원을 준다고 했거든. 난 액수에 민감해. 그리고 보면 너희 아버지가 하루 일급을 걸면서까지 네가 모르기를 바라는 거 아냐?

그는 내 정곡을 찌른다. 아버지는 핫센에게는 나를 만나러 간다고 말하고는 나타나지 않고 내 주위를 맴돌기만 하는지 나도 의구심이 들었던 참이었다.

-나한테 십 만원을 주면 너희 아버지 집 주소 알려 줄게

그는 또다시 나의 궁금증을 이용하여 돈을 뜯는다. 어이없는 표정으로 내가 지갑 속에서 십 만원을 꺼내다가 문뜩 주민등록등본에 적힌 주소가 떠오른다. 나는 다시 지갑을 닫고 가방 속으로 넣는다.

-됐어, 어디 계신지 알 것 같아.

-잠깐만 기다려. 너희 아버지가 나에게 한 얘기가 있어, 궁금하지 않아?

그가 희번덕거리는 눈빛으로 돈을 요구하는 제스처인 엄지와 검지를 맞닿아 비빈다. 무슨 말을 했을지 물어보고 싶은 망설임, 이제 와서 피하는 이유가 납득되지 않는다. 점점 내게 다가오는 그, 돈 밝히는 이 자식 때문에 사방팔방 돌아다닌 것이 생각나서 가방 문을 닫는다.

-됐어, 직접 가서 물어볼 거야.

그의 아쉬운 표정을 뒤로 하고 황급히 내려온다. 

여전히 창문을 고치지 않아 바람이 기괴한 소리를 내는 다세대 빌라 지하 일층에 문을 두드린다. 여전히 숨죽이듯 인기척이 없다.

-아버지 여기 있는 거 알아요. 얼른 문 열어요. 아버지~

그제서야 문이 열린다. 나는 문 너머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는 시커멓고 왜소한 아버지를 본다. 10분이면 올 수 있는 거리를 몇 달을 돌고 돌아서 드디어 만난다. 

-들어와.

아버지의 집은 부엌이 딸린 원룸 구조다. 말이 원룸이지 사람이 한 명이 간신히 누울 수 있는 고시원만 하다. 아버지가 손끝으로 안내한 자리에 앉자, 방이 차다며 이불을 접어서 내민다.

-왜 집에 안 오세요.

-엄마는 잘 지내냐?

-왜 근처에 사시면서 숨으시는데요.

-연주는 정말 아가씨 다 됐네.

-그 얘기가 아니잖아요.

-미안하구나.

-미안하다는 소리만 하지 마시고요. 여기 계시면서 왜 만나러 오지 않았어요?

-행복해 보이더구나, 이젠 내가 있는 게 엄마나 너에게 민폐만 끼치지.

아니라는 부정을 하지 못한다. 결혼식에 아버지가 필요하지 않았더라면, 어머니는 우울증 약을 드시고 나는 아버지에게 분노하는 것으로 각자의 자리를 지키면서 집안이 유지되었을 것이다. 차라리 그게 마음이 편했을지도 모른다. 나의 침묵이 어색했는지 아버지는 일어서서 냉장고 속 음료수를 꺼내어 잔에 담고 나에게 내민다. 아버지가 컵을 건네준 왼쪽 손에는 네 번째 손가락이 두 마디가 없다. 머리 숱도 빠지고 뼈만 앙상한 초라한 아버지의 행색, 혼자 행복하게 산다며 욕지거리 할 기회마저 없는 서글픈 마음에 애끓음이 쏟아진다.

-버리고 가셨으면 잘 사셔야지, 이게 꼴이 뭐예요? 

-미안하구나.

아버지의 눈시울이 붉자, 나는 피곤한 탓에 눈물이 맺힌다.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고 바라본다. 아버지 뒤를 밟으며 알게 된 고단한 아버지의 10년, 적어도 양심은 있어서 아버지 자신의 일을 묵묵히 회수하고 있었다. 나는 아버지를 버리기 위해 살아왔지만, 10년이 지나도 잊을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만 각인되었다. 결국 아버지의 존재에 무의미한 단어들을 이어서 타인처럼 이별하지 못했다.

아버지의 잘려나간 네 번째 손가락을 보자, 아버지를 향한 살의가 누그러졌다. 내가 스스로 쌓은 벽을 허물고 있다는 사실을 숨긴 채 감정을 추스르고 내가 온 목적을 얘기한다.

-남자친구가 결혼 승낙받으러 집에 오니, 다음 주에 저희 집에 오세요. 간단히 밥만 먹고 헤어질 거예요.

-내가 가는 게 너한테는 민폐일 텐데.

-아버지가 아니라 저를 위해서 오시라고 한 거예요. 아버지 때문에 애비 없는 자식이라는 소리를 듣기를 바라는 거예요? 이미, 아버지에 대해서 남자친구에게 아버지가 지방에 계신다고 얘기했어요. 아버지의 직업은 건축가이고 지방에서 건물 짓느라 바쁘다고 말했으니, 다음 주에 아버지가 지방에서 오랜만에 집에 돌아온 척 연기하시면 돼요. 

아버지는 고개를 숙이며 내 찻잔을 바라본다.

-밥만 먹으면 되는 거냐?

-예, 결혼식 때까지만 도와주세요. 제가 사례할게요. 

아버지는 뭔가 불편하신 듯 어렵게 말을 꺼낸다.

-사례는 안 해도 되, 알겠다. 다음 주에 집에 갈게.

-돈 필요하시잖아요. 부담 갖지 마세요. 

-괜찮다. 이제 빚도 다 갚고, 조금씩 모으고 있으니 걱정마라. 너에게 피해 안 가게 하마.

아버지의 기분이 상한 말투를 듣고도 나는 별다른 죄책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아버지 멋대로 가족은 생각하지 않고 마음 내키는 대로 살았으면서 약간의 자존심을 긁은 것에 언성이 높아지신다. 역시 가족을 버린 이기적인 그가 내 아버지가 맞다. 나는 몸을 일으켜 사무적으로 아버지의 옷장을 열어 옷을 살핀다. 허름한 옷가지도 몇 벌 없다.

-내일 저녁에 여기 앞 사거리로 나오세요.

-사거리는 무슨 일로?

-옷 사게요.

-괜찮다. 깨끗이 빨아 입으면 돼

-제가 창피해서 그래요. 내일 7시에 뵐게요. 

입을 다문 아버지의 굳어진 표정, 아마 다시 집에 찾아 갔을 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그 길을 돌려 이집에 왔을 그, 그는 숨어서 자신이 실패한 아버지라는 존재를 망각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문뜩 찾아와 가족 안에서 아버지의 위치를 보여준다. 기타처럼 꼭 필요한 물건이 아닌 가끔 들으면 그만인 존재, 빌라 밖에 세워둔 기타가 맘에 걸린다. 서둘러 몸을 일으킨다.

-내일 잊지 마시고 꼭 나오세요. 핸드폰 번호를 알려 주세요. 

아버지가 읊조리는 번호를 핸드폰 키패드에 눌러 담는다. 서둘러 나온 문 앞에서 운동화를 고쳐 신는다. 위에서 계단을 내려오는 옆집 아저씨가 나를 보자 화들짝 놀라고는 당황했는지 목소리를 서서히 높이신다.

-그게 말이지 홍씨가 이사 갔다고 말해달라고 전화를 해서, 그래도 난 양심은 있어서 일하는 곳은 알려줬어~ 네가 못 찾은 거지.

나는 계단 위에서 우물쭈물 서있는 아저씨의 말을 잘라먹고 스치듯 지나친다. 빌라 문간에 있는 아버지의 기타를 챙긴다. 구태여 아버지에게 기타를 건네면서 아버지의 행적을 쫓아다녔다며, 아버지가 그동안 얼마나 고생했는지 마음이 아프다는 맘에도 없는 소리를 빗속에 삼킨다. 우산도 없이 비를 맞으며 기타와 함께 집까지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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