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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까우니까청춘이다 Jan 17. 2018

보름이 차면 쉬는 나라, 스리랑카



스리랑카 사람들은 

보름이 되면 모두 일을 쉬고

하얀 옷을 입고 예쁜 꽃을 들고 

부처에게로 떠난다.   

달이 차는 시간 동안 수고했던 

자신을 격려하기 위함일까, 

자신을 정성껏 지켜주었던 

신을 격려하기 위함일까,  

다시 기울어짐을 

알면서도 채워가는 

달의 운명을 격려하기 위함일까,  


    

스리랑카가 보름이 되는 날 쉰다는 이야기를 들은 그 날부터 내게 뽀야(poya)는 설렘 그 자체였다.  일 년에 휴일이 얼마 없는 한국에 살다 보니 기쁨이 더 컸다. 뽀야는 스리랑카의 휴일로, 보름이 뜨는 날을 기념하여 각자의 종교의 신께 기도하는 시간을 갖는 날이다. 물론 스리랑카는 불교 신자가 대다수를 차지하기에 많은 수의 사람들이 절을 간다. 이 특별한 날에는 와인 스토어나 호텔에서 술을 살 수 없다. 불심이 가득한 이들은 하얀 옷을 곱게 입고 절에 간다. 절에 가면 스님의 말씀을 들으며 하루 종일 뜨거운 사원 바닥에 앉아 기도를 끊임없이 중얼거린다. 한국의 절과는 조금 다른 분위기이지만 그들의 마음은 우리와 다를 바 없다.  


    

첫 뽀야에는 켈라니야 사원을 방문했다. 그해에는 마침 크리스마스이브가 뽀야였다. 크리스마스이브에 교회가 아닌 절에 가는 게 생소했지만 문화를 배우기엔 더없이 좋은 기회라 생각했다. 우리는 콜롬보 근처의 켈라니야 사원에 갔다. 스리랑카 3대 사원에 들 정도로 큰 규모라 그런지 입구에서부터 사람이 가득했다. 우리는 스리랑카 사원 방문 예절에 따라 신발을 벗고 경내에 들어갔다. 뜨거운 바닥에 맨발을 닿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지라 우린 발꿈치를 들고 콩콩 뛰어가며 길을 걸었다. 사원 안에는 부처의 일생에 대한 그림과 스리랑카에 불교가 전래된 이야기가 그림으로 그려져 있었다. 뒤에서 사람이 계속 들어오니 제대로 보지 못하고 스치듯 보고 밖으로 나갔다. 현지인들과 같이 부처에게 인사를 하고 보리수나무를 돌며 같이 기도했다. 절이었지만 한국과는 다른 절의 모습이 신기했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순결을 상징하는 하얀 옷을 입고 기도를 하고 있었다. 대부분 가족 단위였다. 엄마나 할머니 옆에 있던 아이들은 지루한지 한참 딴짓을 했다. 그러다가 외국인인 우리를 보고 신기해서 쳐다보았다. 어머니들은 그런 아이들을 달래다가 나중에는 기도에 빠져서 아이들을 보지 않았다. 가만히 있지 못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귀여워 한참을 바라보다 또 기도하는 다른 이들을 보다가 사원을 빠져나왔다. 나가는 길에 시원한 아이스크림 하나 먹으면서, 


     


사실 그 이후로 난 뽀야에 사원을 찾지 않았다. 그 대신 어디로든 떠났다. 그들이 신께 가서 휴식을 취하듯 나는 사람들과 스리랑카 이곳저곳에 사람들을 만나러 갔다. 뽀야의 앞이 주말이면 주말이어서 주의 한 중간이면 한 중간이어서 우리는 천둥벌거숭이처럼 헤집고 다녔다. 그래서 우리의 여행에는 늘 보름달이 함께 했다. 한 달 동안 일상에서 쌓였던 외로움과 괴로움을 날리고, 그렇게 여행은 잘 버텨온 서로를 격려하며 끝이 났다. 또 곳곳에 보이는 초록이 파랑이 우리를 위로해주었기에 이 시간을 버틸 수 있었다. 스리랑카 사람들에게도 뽀야가 그런 존재가 아닐까, 무더운 더위 속에서 수고하며 살아온 이들을 기억하고 위로해 주는 시간, 작은 쉼표와 같은 시간. 신께 위로받고 서로를 격려하는 시간,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달의 기울어짐을 볼 때면 직전 여행이 멀어지고 있음을 느끼며 슬퍼했다. 스리랑카를 떠나고도 여전히 보름은 나에게 특별한 의미이다. 보름 아래에서 했던 수많은 이야기들이, 또 기억들이, 서로가 해줬던 수많은 격려들이 추억이라는 이름이 되어 여전히 내 마음을 헤집어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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