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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까우니까청춘이다 Mar 08. 2018

우리 반 친구들,

캔디 한국어 반 학생들을 소개합니다. 



아이들을 꼭 글로 담아 보고싶었다. 

꼭꼭 씹어 글로 써 놓으면 

아이들의 기억이 내 마음에 남을테고 

아이들에게 무정했던 

나는 조금 덜 미안해 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 집에서 했던 마지막 송별파티 



1년 꽉 채워 함께 한 전우같은 학생들, 




로샨, 나의 오른팔이자 미술부장 로샨!  


처음에 로샨을 봤을 때 꽤 부담스러웠다. 스물 셋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느끼한 로샨의 눈빛이 살짝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한국어 반에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한국어를 할 줄 알았다. 말을 잘하는 건 아니였지만 받아쓰기 시험에서 1등을 했다. 알고보니 작년에도 EPS시험을 봤고 사설학원에 다닌 경험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절실함이 느껴졌다. 항상 시험 보면 1등하고 아이들이 떠드는 순간에 내 눈치를 보며 아이들을 조용히 시키는 모습이 딱 반장감인데다가 미술에도 재능이 있어 우리반에 데코를 모두 도맡아 했다. 재주 많은 친구인데, 또 성실한 친구인데, 한국에서 돈만 벌어가지 말고 교육기회를 통해 그의 재능을 더욱 발전시켰으면 좋겠다.    


락샨, 우리 반 까불이, 버릇 없어보이지만 그만큼 마음이 따뜻한 친구 


우리 반은 두 샨들이 지배하고 있다. 로샨과 락샨, 락샨은 리더쉽이 굉장히 있는 친구였다. 언어적인 재능도 있고 분명 열심히 한다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토끼와 거북이의 토끼처럼 참 뺀질거리며 말 안듣는 친구였다. 이 친구 혼내다가 마음이 상해 혼자 울기도 했다. 무단으로 한 달간 학교에 나오지 않아 여느 아이들처럼 중간에 그만두는구나, 아 마음으로 보내주려던 찰나 갑자기 돌아왔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덜 뺀질거리고 나름 열심히 하려고 했다. 아쉽게도 올해 한국에는 오지 못하지만 언젠가는 올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한국에 오면 일은 잘할 것 같다. 


수데스, 화난 이상해씨 닮은, 단단한 친구 


이상해씨 닮은 친구였다. 털이 삐죽삐죽 나 있어 웃겼다. 늘 턱수염을 볼 때마다 면도기를 들고 와 깎아 주고 싶었지만 인권을 위해 그럴 수는 없었다. 늘 칭찬받고 싶어 안달나있었던 친구였다. 실제로 한국어도 제일 잘하고, EPS 성적도 높고 그랬다. 하지만 가끔 친하다고 하는 장난이 도를 넘을 때가 있어 나한테 자주 혼이 났다. 그래도 작은고추가 맵다고 아주 성실히 우리 반을 마쳤다. 지금도 나에게 제일 연락을 자주 하는 친구다.   


우리 반 똑쟁이, 에로샤 


우리 반에서 유일하게 영어를 할 수 있는 친구라 가끔 나의 통역관이 된 친구이다. 물론 내가 영어를 잘하는 건 아니지만 스리랑카어로 모르는 단어들이 가끔 있었는데 그때마다 나의 말을 찰떡같이 알아듣고 통역해주었다. 항상 성실해서 내 책상 위에 한국어로 쓴 일기를 가져다 줬다. 남자애들의 짓궃은 장난에 상처 받을 때가 있었지만 끝까지 우리반을 지켜준 친구다. 


수다쟁이 항시카, 


예쁘장한 외모에 처음에는 낯을 가렸지만 점점 본색을 드러내던 친구,  쑥스러워하지만 언제듯 자기 할 몫을 했던 친구이다. 연극대회 때 흥부와 놀부의 어머니 역할을 맡았는데 처음에는 되게 쑥쓰러워하더니 어느 순간 연극에 몰입해서 제대로 연기했다. 남자 아이들의 짖궃은 장난도 웃음으로 받아주던 미소가 예뻣던 친구 


학교 앞에 사는 뺀질이 기타카, 


기타카는 학교 앞에 사는 아이였다. 일수가방 비슷한 가방을 들고서는 수업 정각에 맞춰오던 친구, 아주 뺀질거리며 공부 드럽게 안했던 친구였지만 나름 의리가 있었다. 기타카의 아버지는 두바이에서 일을 한다고 했다. 가끔 아버지가 가져다 주신 초콜렛을 아이들에게 주고는 했다. 그렇게 초콜릿을 푸는 날이면 아이들은 달려들어 초콜렛을 뻇어 먹었다. 나도 가끔 얻어 먹었다. 아버지와 꽤 오래 떨어져 살았다던 기타카는 아버지 대신 가족을 책임지려 한국에 가려고했지만, 절실함 부족으로 공부를 안해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우리 반 아이들 중에 키가 가장 컸던 라이더, 차누크 


이 친구도 공부 참 안하던 친구였다. 늘 오토바이 헬멧을 들고 지각하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딱히 기억은 없다. 나와 보충수업 자주 하던 기억만 있다. 한국어가 서툰 탓에 연극에서 뱀 역할을 줬는데 나름 열심히 아크로바틱(?)을 해주어 나를 흡족하게 했다.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많이 없지만 늘 반을 지켜주었던 친구  


소녀같은 수줍은 미소를 가진 라위 


라위는 너무 많이 봐서 까맣게 변한 책을 들고 학교에 왔다. 볼펜과 샤프로 까맣게 변해 버린 책을보면 저절로 숙연해졌다. 그래서인지 한국말은 서툴었지만 단어 하나는 기가막히게 잘 외웠다. 시험도 늘 잘 봤다. 시험을 본 후 내가 칭찬해주면 소녀같은 표정으로 으쓱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 반대로 시험에서 틀린 걸 지적해주면 슬픈 표정을 지었다. 우리 반 학생 중에 가장 시험에 열정적이였단 친구였다. 꼭 한국 학생 같았다. 사실, 소녀같은 표정이라고 했지만 이 친구의 얼굴은 털보 정육점 사장님을 연상시켰다. 털보 정육점 사장님의 소녀같은 수줍은 미소, 안 어울리지만 라위를 표현하는 딱 한 문장이다.   


항상 수줍었던 왓사라 


왓사라를 처음 만났던 인터뷰가 기억난다. 다른 아이들은 인터뷰가 다 기억나지 않는데 왓사라 한 명만 딱 인터뷰가 기억난다. 그녀의 가정상황 때문이었다. 왓사라네 아버지는 일을 하시다 다쳐서 집에 계신다고 하셨다. 그래서 수입이 없었다고, 그 이야기를 듣고 왓사라를 봐서인가 늘 신경이 쓰였다. 하지만 늘 밝고 열심히 공부하던 친구였다. 가끔 나를 위한 간식도 가져다 주기도 했다. 그 이후 물어보기 그래서 가정이 어떤지는 물어보지 않았다. 그래도 1년 내내 학교에 온 것을 보면 좋은 방법을 찾은 것 같다.





이 작업은 스리랑카에서 꼭 하고 싶었다. 하지만 바빠서, 마음에 여유가 없어서 계속 뒤로 밀리다가 오늘에서야 이 글을 쓴다. 나는 그림을 잘 그릴 수 없으니, 아이들을 글로 그려 마음에 넣으리라, 여전히 가끔 나에게 안부를 전하는 아이들, 우리는 서로의 마음 속에 그렇게 남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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