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 글을 쓰며 자꾸 회의하게 된다. 무엇을 넣지? 무엇을 빼지? 그의 시체가 양탄자에 둘둘 말려 있었다는 얘기, 승합차에서 발견된 지푸라기와 그의 머리카락에 묻어있던 지푸라기가 일치했다는 얘기를 써야 하나? 시체에 난 긁힌 자국이 승강기 바닥에 난 마모 패턴과 일치했다는 얘기는?”[1]
- 캐시 박 홍, 『마이너 필링스』, 2020, p. 224.
캐시 박 홍은 『마이너 필링스』에서 차학경의 죽음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를 고민하며 이렇게 썼다. 나 또한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작가의 생애에서 죽음은 간과할 수 없는 사건이지만 이를 글에서 언급하게 되면 작업에서 죽음의 의미가 과장될 수 있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비극적 죽음을 맞은”, “불의의 사고를 당한”, “비운의 천재”와 같은 수식어로 차학경을 알게 되었고 기억하고 있었을 뿐, 작품을 들여다볼 생각은 최근에 하게 되었다. 차학경을 주제로 작가론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과정을 되짚어 보았을 때 더욱 회의감이 들었던 것은, 작가에 관해 가장 최근에 접한 기사가 올해 1월 「뉴욕타임즈」 부고면의 ‘빠뜨릴 수 없는 인물’ 시리즈에 게재되었다는 내용[2]이었기 때문이다. 작가의 부고 40년 만의 일이었다.
*김민, 「한국계 女예술가 차학경 부고, 40년 만에 NYT 게재된 이유는…」, 2022. 1. 11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20111/111192647/1
그러나 죽음을 알려고 하지 않거나, 침묵하는 이들도 있었다. 캐시 박 홍의 말처럼 지금에야 작가의 죽음을 어떻게 다룰 것이냐에 관해, 캐시 박 홍은 차학경의 죽음에만 주의를 기울이게 하지 않도록 사건에 대해 자세하게 언급하지 않는 학자와 큐레이터의 보호 효과가 혹여나 과도하지 않았나 하는 의문을 제기한다. 그리고 살해 직후 작가의 죽음과 관련하여 「빌리지 보이스」에 실린 부고가 전부였던 이유는, 언론에서 차학경의 죽음을 “오리엔탈 제인 도”[3]를 향한 무관심의 시선으로 보았기 때문이었다고 언급한다.[4]
죽음을 계기로 작가를 알게 되는 이가 있고, 죽음에 관한 상세한 언급을 거부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죽음을 알려고 하지 않거나, 침묵하는 이들도 있었다. 캐시 박 홍의 말처럼 지금에야 사람들이 죽음을 크게 다루고 저자가 그 죽음에 관해 어디까지 서술하느냐를 고민한다. 1982년의 사건 당시 무시의 침묵은 언제부터 존중의 침묵으로 전환된 것일까? 작가 사후에도 그의 빈자리는 여전히 “오리엔탈 제인 도”의 존재감을 질문하게 한다.
작가는 죽음 이전에도 죽음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1951년 부산에서 한국전쟁 중 태어나 미국으로 이주한 이민자인 그는, 죽거나 가려진 정체들이 미처 하지 못한 언어를 전달한다. 작가의 언어는 결코 쉬이 읽히지 않는다. 글은 그렇기에 생명력을 가지고 끈질기게 독자에게 말을 건다.
2.
미래는 없다. 다만 시간의 몰려옴이 있을 뿐. 맹세할 수 없고, 공허한, 무형의 시간, 그녀는 그것을 향해 움직이도록 기대될 뿐이다. 앞쪽으로. 앞으로. 그리고 어떻게든 현재를 지나쳐 버린다. 망각의 은총으로 스스로를 구제하고 있는 그 현재. 그녀는 그것을 어떻게 정당화시킬 수 있었을까. 현재의 가시성(可視性) 없이.
그녀는 실제의 시간을 대치할 수 있다고 자신에게 말한다. 그녀는 자신에게 시간을 앞에 전시(展示)하고 그것을 엿보는 자(者)가 된다고. 그녀는 죽음은 절대로 오지않는다, 올 수 없다고 자신에게 말한다. 그녀는 죽음을 대치할 수 없다는 것을, 실제로 죽지 않고는 그것의 극복이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그녀는 글을 쓸 수만 있다면 계속 살 수 있다고 자신에게 말한다. 그치지 않고 계속 쓸 수만 있다면 하고 자신에게 말한다. 그녀는 살 것이다. 그녀 앞에 그것을 전시해놓고 그것의 엿보는 자가 될 수 있다면.[5]
-차학경, 『딕테 』, 2004, p. 152-53.
글로 존재를 음각하듯, 작가는 시간을 붙들어 자신의 생명을 순간순간 기록한다. 그래서 그것을 계속 써내려 영원한 생명력을 부여한다. 그것을 읽으면서, 죽는다는 것을 알지만 영원히 살아있는 존재가 되리라 믿는다.
글은 죽지 않기 때문이다.
작가는 음성의 힘을 "믿었었"다. 발음과 강조의 효과에 따라서 거듭 "기대의 음성"[6]을 내었다. 그러나 그 음성은 금세 다른 의미로 변하고 말았다. 시간이 몰려와 "망각의 은총으로 자신을 구제하고 있는 그 현재." 음성은 선택할 여지를 주지 않는다. 잠시 멈춰두고 확인할 수 없다. 그럴 새 없이 스쳐 지나가기 때문이다. 그 사이 "고통이 기억으로 번역"[7]되고 만다.
끝이 보이지 않는다. 끝도 없고 만족할 만한 것도 아니다. 평화를 가져올 만한 것. 평화가 너무 큰 요구라면, 그럼, 위로라도. 고통 없고, 적어도 아무 감각이 없는. 그녀는 매순간, 날짜, 하루의 때, 날씨, 일어났던 일이나 앞으로 올 일에 대한 간단한 요점을 설계함으로써 매번 시작한다. 그녀는 매번 이런 정화(淨化)로 시작한다. 마치 이 행동이 뒤따를 서곡(序曲)에서 자신을 해방시켜줄 것처럼. 그녀는 그녀의 감정과 동등한 낱말을 찾기 시작한다. 혹은 그것의 없음을. 동의어, 직유, 은유, 상투어, 부명, 유령어. 유령국가. 그녀의 여로(旅路)의 지도를 기록하는 데에.
-앞의 책, p. 152.
글은 "망각의 은총으로 스스로 구제"한다. 어떤 것을 남길 것인지 어떤 것을 지울 것인지 잠시 멈추어 숨 고르고, 되뇔 수 있다. 뒤따르는 미래는 글을 밀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작가는 자신의 시간을 글로 대치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는 글을 쓰고, "그것을 전시해놓고 그것의 엿보는 자가 될 수 있다면" 살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그것을 "엿보는 자"가 될 수 있다. 그가 찾은 낱말을 읽어 내려가면서 그의 여로를 따라가 볼 수 있다. 시간이 몰려올지라도 글은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있으므로.
3.
작가가 뱉는 문장은 툭툭 끊겨 머릿속을 떠돈다. 머릿속에서 조립되지 않은 그 덩어리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어떠한 의미에도 정착하지 못한다. 제3의 언어는 읽히곤, 즉시 독자를 헤집어 놓는다. 독자는 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모호함과 소외감을 느끼게 된다. 그렇게 작가는 다시 살 수 있다.
쉽게 짜 맞춰지지 않는 낱말 또는 문장 덩어리 사이에는 공간이 있다. 그 틈새를 온전히 느끼다 보면, 그 안에서 작가가 새겨놓은 수난과 갈망, 소외의 서사를 찬찬히 어루만져주고 싶어진다. 이해나 납득과는 전혀 다른 차원으로 그렇다.
4.
먼 곳으로부터 온
어떤 국적
혹은 어떤 인척과 친족관계
어떤 혈연
어떤 피와 피의 연결
어떤 조상
어떤 인종 세대
어떤 가문 종친 부족 가계 부류
어떤 혈통 계통
어떤 종(種) 분파 성별 종과 카스트
어떤 마구 튀어나와 잘못 놓여진
이것도 저것도 아닌 제3의 부류
Tombe des nues de naturalized*
어떤 버려져야 할 이주(移住)[10]
- 차학경, 『딕테 』, 2004, p30
*귀화된 나체들의 무덤 또는 본질을 잃은 나체들의 무덤.
작가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제3의 부류"[11]를 글로 각인함으로써 소외되고 묻혀있던 이들을 가시화한다. 발설되지 않았던 그들의 죽은 언어와 죽은 낱말들을 더듬거리며 대신 꺼내주는 방식으로 말이다. 그리고 그것들을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 글을 쓴다. "잉크가 마르기 전에, 쓰기를 전혀 마치기도 전에 가장 진하게 흐른다"는 것을 인지하면서, 조각 조각난 서사들이 흩어져 날아가기 전에 그것들을 서둘러 모은다.
5.
ALLER*
버리라. 모든 기억을···에 대한.
기억이 떠오를 수 있기도 전에.
기억이 떠오르기 전에. 그리도. 쉽게. 잊혀진.
무엇과의 연상으로조차,
지나가는 서명으로조차. 뿌리째 뽑으라, 그들이
상기시킬 수도 있는 그 가능한 애매함 자체를.
색깔이 희미하게 당신의 시력에 먼지를 뿌린다.
그것들을 지워 버리라.
그것들을 다시 하얗게 만들라. 당신은 먼지를 다시 뿌리라.
당신은 희미해진다.
그것들이 색깔이 되기 시작하기도 전에
투명하게 될 때까지
그들은 하얀색으로 사라지고
다른 색깔의 인상을 줄지도 모를
흰색. 한 그림자.
그림자 속으로 약간 스치라 그리곤 돌아오라 새로운
모습으로 더 깊은 그림자 속으로 다시 들어가
그 형판에 가득해지라.
여분의 공기를 내보내고, 모양과 형판 사이의
공간을 내보내라.
이젠 형태 없고, 형판도 더 이상 없다.
어떤 전망, 어떤 낱말, 어떤 부분
어떤 다른 것과 비슷한 부분
위장한다
안 보는 것처럼 그 부분을 안 본 것처럼.
그 부분 너무나 명백한 단지 그 부분이 그 모두였고
그것이 맨 처음 보여진 것이었지만 아니었던 것처럼
위장한다. 전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그것은 비슷한 것 같았지만 아니었다.
다음 줄을 시작하라.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것을 보기를 원했다.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것을 보았기를 원했다.
그것이 일어나기를 그전에 그것이 일어나기를. 그 모두를.
기대하지 않았는데 갑자기
모두 끝났다. 각 부분. 모든 부분. 한 번에 하나씩
하나씩 하나씩 아무도 빠짐 없이. 아무것도.
아무것도 잊지 않고
아무것도 빼놓지 않고.
그러나 위장한다
모두 다시 부활시키라.
조금씩 조금씩 한단계 한단계를 재건하며
걸음을 옮긴다
한계 내에서,
절대 밀폐된 속에 싸여
꼭 꼭, 까맣게, 샐 틈 없이.
그 한계 내에서.
부활시키라, 가능한
한도 내에서, 담을 수 있을 만큼[14]
- 차학경, 『딕테 』, 2004, p. 141.
*가다, 떠나다, 가기
모든 기억은 "가능한 애매함"이 되기 전에 버려져야 한다. 누군가에 의해 이 조각들은 희미하게 변한다. 작가는 희미한 조각들에 먼지를 다시 뿌리고, 하얗게 만들라고 말한다. 우리는 투명하게 가라앉은 기억을 하얗게 만들고, 그 기억에 새롭게 눈을 떠야 한다.
안 보이는 부분은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전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위장한다. 자꾸만 위장되어 가려지는 제3의 서사는 작가에 의해 떠오른다.
“한번 말하기 시작하면 그것은 말이 될 것이고, 그 말은 뒤따르는 또 다른 말들을 쏟아 내게 할 것이다.”[15]
- 양종근, 『세계 속 동아시아 디아스포라』, 2020, p. 328.
"모두 다시 부활시키라." 위장한 것들을 다시 보고, 빠짐없이 부활시켜야 한다. 그것은 다시 쓰는 행위로 가능해질 것이다. 소외되고 흐려졌던 기억을 버리고, 다시 쓰인 서사를 "샐 틈 없이" 밀봉해야 한다. 우리는 작가의 부름에 따라야 한다.
구석 틈바구니 소외된 기억까지도 다시 써 내려 가자. 또 다른 말들을 쏟아내자.
6.
DISEUSE
그녀는 말하는 시늉을 한다. 말과 비슷한 것을. (무엇과 비슷하다면.) 노출된 소음, 신음, 낱말들로부터 뜯겨져 나온 편린들. 그녀는 정확성을 측정하기 위해 주저하기 때문에, 입으로 흉내내는 짓을 할 수밖에 없다. 아랫입술 전체가 위로 올라갔다가는 다시 제자리로 내려앉는다. 그리곤 그녀는 두 입술을 모아 뾰죽이 내밀고 무엇을 말할 듯. (한마디. 단 한마디.) 숨을 들이쉰다. 그러나 숨이 떨어진다. 머리를 약간 뒤로 젖히고, 어깨에 힘을 모아 이 자세로 남아 있는다.
속에서 웅얼거린다. 웅얼웅얼한다. 속에는 말의 고통, 말하려는 고통이 있다. 그보다 더 큰 것이 있다. 더 거대한 것은 말하지 않으려는 고통이다. 말하지 않는다는 것. 말하려는 고통에 대하여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 속에서 들끓는다. 상처, 액체, 먼지. 터뜨려야 한다. 배설해야 한다.
그녀의 목 뒤에서부터 그녀는 어깨를 내려놓는다. 그녀는 한 번 더 숨을 삼킨다. (한 번 더. 한 번만 더 하면 된다.) 준비로. 그것은 증대된다. 아주 고조(高調)로. 끝없는 응얼거림이, 스스로를 자가 공급하며. 자율적으로. 자생적으로. 그것이 말하기를 원하는 고통에 대항하는 마지막 의지를 마지막 노력으로 삼켜 버린다.
그녀는 타인을 허용한다. 그녀의 대치로. 타인으로 하여금 가득하도록 용납한다. 한떼가 되어 들끓도록. 모든 불모(不毛)의 공동(空洞)이 부어오르도록. 타인들은 각기 그녀를 점령한다. 종양의 층층, 모든 공동이 새 살이 될 때까지, 모든 잉여물을 축출한다.
그녀는 그들의 실마리에, 누구인지도 모르며 그들의 둔한 동작, 그들의 말의 무거움 속에, 꿰어들기를 허락한다. 확성이 멈출 때 울림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그 때에 시도해볼지도 모른다. 그 울림 부분에. 잠시 멈출 때. 멈춤이 이미 곧 시작되어 아직도 남아 있을 때. 그녀는 그 멈춤 안에서 기다린다. 그녀의 속은. 지금. 바로 이 순간. 지금. 그녀는 공기를 빨리 들이켠다, 깊은 골짜기로, 다가올 먼 거리에 대비하기 위하여. 멈춤이 그친다. 음성은 다시 한 겹을 둘러싼다. 이제 더욱 더 둔해진다. 기다림으로 해서. 말하려는 고통으로부터의 기다림. 말하지 않기까지. 말하기.
그녀는 그들의 문장부호를 점검할 것이다. 그녀는 이것을 봉사 하기 위해 기다린다. 그들의 것들. 문장부호. 그녀는, 자신이, 경계의 표시가 될 것이다. 그것을 흡수하고. 그것을 흘린다. 문장부호를 포착한다. 마지막 공기. 그녀에게 주라. 그녀에게. 그 연속. 음성. 할당. 제출. 그것을 전달 하기. 전달.
그녀는 타인들을 전달해준다. 암송. 기억 환기. 제공, 도발. 그 간청. 그녀 앞에. 그들 앞에.
이제 무게는 그녀의 머리 뒤쪽 맨 꼭대기부터 시작하여 아래쪽으로 내리 누른다. 그것은 고루 퍼져 두개골 전체가 모든 면으로 팽팽하게 확장되어 머리 앞쪽으로 몰린다. 그녀는 그것의 압력, 그것의 수축 작용으로 할딱거린다.
그녀의 속이 비워진다. 더 이상 들어 있지 않다. 아래의 빈 곳으로부터 떠오른 것은, 가스의 조약돌 덩어리들. 습기. 그녀를 침수시키기 시작한다. 그녀를 용해시키며. 서서히, 완만으로 늦추어졌다. 서서히 그리고 두껍게.
위쪽은 그녀의 머리로부터 아래로 움직여 그녀의 눈을 감기는 것을 따라가며, 같은 동작으로, 더 천천히 턱과 목과 함께 입을 열기까지 위쪽이 내려오며 더 내려와, 끝까지, 그러나 거기에 머물지 않고, 같은 동작으로 그녀를 훌렁 뒤집어, 전체의 무게를 위쪽으로 올라가도록 완전히 변경시킨다.
감지할 수 없게 시작한다, 겨우 감지할 수 있게. (단 한 번. 단 한 번 그러면 될 것이다.) 그녀는 취(取)한다. 그녀는 멈춤을 취한다. 서서히. 두꺼움으로부터. 그 두꺼움. 위로 향한 무거운 동작으로부터 느려진. 그것이 다시 그녀의 입을 통해 위로 통과할 때도 완만할 정도로. 그 전달. 그녀는 취한다. 서서히. 그 불러일으킴. 이제는 언제나. 있는 시간은 모두. 항상. 모든 때. 그 멈춤. 발설(發說). 이제 그녀의 것이다. 적나라한 그녀의 것. 그 발설.[17]
작가가 써 내려간 건 말과 비슷한 것인데, 비슷하다면 말과 같은 것이다. 정확히 말로 전달할 수 없기에 말하는 시늉이라도 해본다. 노출된 소음, 신음, 낱말들로부터 뜯겨 나온 편린들, 들끓는 것, 말하려는 고통보다 더 큰 것, 상처, 액체, 먼지, 배설해야 하는 것···. 그는 속 안 깊숙이 말하려는 고통을 삼켜버린다. 스스로 그것을 해소하는 대신, "타인들을 허용한다." "꿰어들기를 허락한다." 그리고 "말하려는 고통으로부터의 기다림."
기다림 끝에, 버려질 기억들은 이렇게 모이게 되는 것이다. 말은 다가올 먼 거리에 대비한다. 시간이 몰려오지만 퇴색되지 않도록 "음성에 한 겹을 둘러싼다." 그것은 글이 되었다.
작가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어떤’ 것으로부터의 문장부호를 포착한다. 그리고 전달하기 위해 받아쓰기(dictée)한다. 이 행위는 "타인들을 전달해"주는 하나의 의식이다. ‘어떤’ 것으로부터의 낱말들은 두껍고 무거운 덩어리와 같아서, 힘겹게 빼내고 나면 몸이 한껏 둔탁하다. 그러고 나면 그가 받아쓴 조각난 언어는 한데 모여있다.
작가가 빼낸 그 언어를 느껴본다. 뒤엉킨 언어의 모양들은 지금과 그의 죽음을, ‘어떤’ 것의 기억과 그의 시간을 연결한다. 그 시간 속에서 말은 글이 되었고 우리는 그 글을 언제든 꺼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글은 무언가를 말하게 할 것이다. 그런 다음, 우리는 써 내려 갈 것이다. 지금 이 행위는 계속될 것이다.
[1] 캐시 박 홍, 『마이너 필링스』, 2020, p. 224.
[2] 김민, 「한국계 女예술가 차학경 부고, 40년 만에 NYT 게재된 이유는…」, 2022. 1. 11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20111/111192647/1
[3] 아무개 여성을 지칭하는 표현 ‘제인 도(Jane Doe)’에 아시아인을 비하하는 의미의 낡은 형용사 ‘오리엔탈’을 덧붙인 것. 『마이너 필링스』, 옮긴이.
[4] 캐시 박 홍, 『마이너 필링스』, 2020, p. 222.
[5] 차학경, 『딕테 』, 2004, p. 152-53.
[6] 앞의 책, p. 151.
[7] 앞의 책, p. 152.
[8] 앞의 책, p. 152.
[9] 귀화된 나체들의 무덤 또는 본질을 잃은 나체들의 무덤.
[10] 차학경, 『딕테 』, 2004, p30
[11] 앞의 책, p. 30.
[12] 앞의 책, p. 146.
[13] 가다, 떠나다, 가기.
[14] 앞의 책 p. 141.
[15] 양종근, 『세계 속 동아시아 디아스포라』, 2020, p. 328.
[16] 말하는 여자.
[17] 앞의 책, p.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