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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신 Jun 05. 2021

달래꽃

[단편소설]

   

  티나와의 만남을 주선한 사람은 한국학과 학과장이었다. 한국 아이를 입양한 양부모가 딸에게 한국말을 가르쳐 줄 사람을 찾고 있다고 했다. 나는 바르샤바 대학 문학부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었다. 

  구글 맵에 학과장이 알려준 주소를 쳤다. 뷔타 스트보샤 8번지. 전차에서 내려서 길을 건넜다. 신문이나 잡지, 생수 등을 파는 키오스크와 아이스크림 가게를 지나자 지도 위의 화살표가 오른쪽으로 꺾였다. 짝수 열이니 네 번째 집일 터였다. 

  얼마 걷지 않아 발코니가 있는 하얀 이층집이 나타났다. 단철 울타리 너머로 색색의 장미가 피어 있었다. 초인종을 눌렀다. 대문의 잠금쇠가 풀리는 것과 동시에 현관문이 열렸다. 군살 없는 몸매에 키가 큰 갈색 머리 중년 남자가 자신이 아이의 아버지라고 말했다. 초록색 잔디 위에 깔린 네모난 돌에서는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또각또각 소리가 났다. 그의 뒤를 따라 집 안으로 들어갔다.

  회로 마감한 거실 벽면에는 창을 제외한 모든 곳에 바다 그림이 걸려 있었다. 불타는 듯한 태양이 바다 위를 달려오는 그림도 있고, 소용돌이치는 파도 위에 얹힌 채 금방이라도 난파될 것 같은 범선을 그린 그림도 있었다. 그림들은 파란색 줄무늬 패브릭 소파와 잘 어울렸다. 

  소파에 앉아 있던 여자가 일어섰다. 페넬로페 크루즈와 샤를리즈 테론을 섞어놓은 것 같은, 푸른 눈이 아름다운 여자가 “유진?” 하고 내 이름을 부르며 손을 내밀었다. 대문을 열어준 남자가 쟁반에 찻잔을 들고 들어왔다. 초콜릿 내음이 섞인 커피 향이 긴장을 풀어주었다. 내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학과장님께 들었어요. 따님에게 한국말을 가르치고 싶어 하신다고.”

  부부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몇 살인가요?”

  “여덟 살이에요.”

  여자가 일주일에 두 번 집으로 와서 딸을 가르쳐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녀가 제시한 보수는 번역이나 통역보다 월등히 높았다.

  “티나가 너무 영리해서 걱정이에요. 한 번도 묻지 않았지만, 생모가 왜 자기를 버렸는지 궁금해 하는 거 같아요.”

  남자가 말했다. 아이의 이름이 티나라는 것을 알았다.

  “우리는 티나를 데려오기 위해 서울에 갔어요, 두 번째 생일을 막 넘긴 티나는 눈빛이 초롱초롱한 아기였죠. 비행기를 타고 오는 내내 울었어요. 멀리 떠난다는 사실을 아는 거처럼요.”

  여자가 시선을 뒷마당의 살구나무로 돌렸다. 그림 속의 바다보다 파란 그녀의 눈에 짙은 우수가 깔려 있었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아이들을 좋아하지도 않고, 아이를 가르쳐 본 적도 없었다. 돈에 마음이 끌렸지만 자신이 없었다. 못 한다고 할까?

  “아이를 가르쳐 본 적은 없지만 해 보겠습니다.”

  생각과 다른 말이 내 입 밖으로 나갔다. 불안해 보이기도 하고, 안타까움에 사로잡힌 듯도 보이는 부부의 간절한 눈빛을 보고 있자니 ‘못하겠습니다’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고마워요.”

  여자의 얼굴에 안도의 미소가 번졌다. 남자가 자기는 프로 골퍼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고, 아내는 화장품 회사의 임원이라고 자신들을 소개했다. 월요일과 목요일 오후에 50분씩 티나를 가르치기로 했다.

  남자가 2층을 향해 소리쳤다.

  “티나. 좀 내려올래?”               

  남자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쿵쾅거리며 계단을 뛰어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동글납작한 얼굴에 가무잡잡한 피부의 여자아이가 거실로 들어섰다. 긴 머리가 오른쪽 뺨을 반쯤 가리고 있었다.

  “티나, 네게 한국말을 가르쳐주실 선생님이야. 인사해.”

  티나라고 불린 여자아이는 고개조차 숙이지 않고 말끄러미 나를 쳐다보았다. 내게 다가오지도 않았고, 자리에 앉지도 않았다. 손톱을 물어뜯으면서 탐색하듯 내 얼굴과 옷차림과 가방을 살폈 다. 쌍꺼풀 없는 작은 눈 속에서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였다.     

  바르샤바에서 아이에게 한국말을 가르치게 될 줄 몰랐기 때문에 마땅히 쓸 만한 교재가 없었다. 스케치북과 12색 사인펜을 샀다. 자음은 가로줄에, 모음은 세로줄에 적었다. 사인펜과 스케치 북을 가지고 티나의 집으로 갔다. 차와 쿠키를 내온 가사도우미 가 티나를 데리고 올 테니 조금만 기다리라고 말했다. 찻잔이 바닥을 보일 때까지 기다렸지만 티나는 오지 않았다. 아무래도 내가 2층으로 가야 할 것 같았다. 소파에서 일어서는 순간 문 앞에 티나가 나타났다. 티나는 거실로 들어오지 않고 문간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퉁퉁한 몸집에 인자한 표정의 도우미가 티나의 등을 밀며 “어서 들어가. 선생님 기다리시잖아.” 하고 말했다. 못 이긴 척하며 티나가 거실로 들어왔다.     

  “저번엔 인사를 제대로 못 했지? 나는 유진이야. 만나서 반가워.”

  악수를 청하는 내 손을 티나가 탁 소리 나게 치더니 팔짱을 꼈다. 내게는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살구나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떻게 수업을 시작하지? 곤혹스러웠다.

  “음, 티나. 공부하기 싫어?”

  창문 앞으로 다가간 티나가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 웅얼거리듯 콧노래를 불렀다. 멜로디가 애잔하고 슬펐다. 나는 끊어질 듯 이어지는 노래를 들으며 소파에 앉아 있었다. 티나를 수업으로 이끌 만한 묘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벽면을 가득 메운 그림들에 시선이 갔다. 큰 그림은 55인치 모니터만 하고, 작은 그림은 32인치 모니터만 했다. 붓 터치가 비슷한 것으로 보아 한 사람이 그린 것 같은데 컬렉션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부족했다. 오른쪽으로 선체를 살짝 기울인 배가 뒷바람을 맞으며 나아오는 그림이 내 마음에 들었다. 팽팽한 돛들이 노란 노을 속에 떠 있고, 바람에 날리는 포말도 금빛으로 빛났다.

  “저 그림이 마음에 들어요?”

  티나가 먼저 말을 걸었다. 나는 못 들은 척했다. 티나가 내 곁으로 다가앉았다. 티나가 낚시에 걸린 거 같아서 마음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한동안 뜸을 들이다가 무심을 가장하고 심상하게 대답했다.

  “요즘은 저런 배를 볼 수 없잖아. 노랗게 물든 하늘도 마음에 들고.”

  “나는 해가 뜨는 저 그림이 좋아요.”

  “왜?”

  “빨간색이 좋아서요. 해가 바다 위를 달려오는 거 같잖아요. 언젠가는 저런 바다를 보러 갈 거예요.”

  “그렇구나, 멀고 먼 곳이지만 꼭 갈 수 있을 거야. 티나, 이제 공부할까?”

  나는 기회다 싶어 스케치북을 펼쳐서 티나 앞에 놓았다. 스케치북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티나가 스케치북을 들어서 내 얼굴에 던졌다. 사태를 파악하기도 전에 티나가 잽싸게 거실 밖으로 달아났다. 창졸간에 일어난 일이기도 하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기도 해서 손으로 얼굴을 가린다거나 하는 방어 태세를 취하지 못했다. 커다란 손바닥에 면상을 맞은 느낌이었다. 어이가 없었고, 화가 났다. 보수가 특별히 높은 이유가 이것이었나? 

  도우미 아주머니가 들어와서 바닥에 있던 스케치북을 집어서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그녀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는 것처럼 내 등을 쓰다듬으며 속상해 하지 말라고 말했다. 내 눈을 들여다보며 턱짓으로 정원을 가리켰다. 나는 고맙다고 말하고 정원으로 갔다.

  벽돌담 대신 초록색 철망이 집의 경계를 이루고 있어서 오른쪽 집과 왼쪽 집의 정원이 모두 잘 보였다. 티나는 철망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발소리를 죽이며 다가갔다. 티나는 내가 바짝 다가갈 때까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몹시 열중해서 뭔가를 하고 있었다. 도대체 무얼 하는 건지 궁금했다. 티나가 일어섰다. 몸을 돌리던 티나가 나를 보고 깜짝 놀라며 멈춰 섰다. 

  내가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티나가 동그랗게 오므렸던 손을 펴서 불쑥 내밀었다. 손바닥 위에 초록색으로 빛나는 작은 벌레가 놓여 있었다. 나는 곤충이나 벌레는 질색이었다. 얼른 몸을 돌려 달아났다. 티나가 큰 소리로 웃었다. 거실로 들어와서 시계를 보았다. 50분이 되려면 아직 멀었다. 복잡한 상념에 시달리고 있을 때 티나가 거실로 들어왔다.

  “장미 풍뎅이예요. 예쁘죠? 한 번 만져 볼래요?”

  티나가 풍뎅이를 내밀며 물었다. 빛이 비치는 방향에 따라 진초록색 풍뎅이의 등이 순간순간 금빛으로 빛났다. 호들갑스럽게 도망친 게 무안할 정도로 매혹적인 색이었다.

  “티나는 곤충이나 벌레가 좋아?”

  “귀엽잖아요,”

  “귀여워? 나는 징그러운데. 하지만 이 풍뎅이는 예뻐.”

  “죽은 시체는 징그럽죠. 하지만 살아 있는 애들은 모두 귀여워요.”

  티나가 풍뎅이는 딱지날개를 펴고 날고, 풍이는 딱지날개를 접고 난다고 말해주었다. 이럴 때 티나는 영리한 소녀라는 의미의 ‘티나’라는 이름에 딱 맞는, 지적 호기심이 가득한 귀여운 꼬마였다. 자음 하나 가르치지 못했다는 사실에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같이 말을 나누고 풍뎅이도 보고, 좀 친해진 거로 만족했다. 탁자 위의 봉투를 집어서 가방에 넣었다.     

 티나 아버지는 딸이 지나치게 영리해서 걱정이라고 했다. 우아하고 교양 있는 티나 엄마의 파란 눈에는 안타까움과 슬픔이 서려 있었다. 그들을 생각하니 흐릿하던 책임감이 선명하게 윤곽을 드러냈다. 티나는 공부 자체가 싫은 걸까? 아니면 내가 싫은 걸까? 스케치북을 던진 행동과 풍뎅이를 조심스럽게 내밀던 행동 사이에 일관성이 없어서 갈피를 잡기 어려웠다. 일단 교재부터 구하기로 했다. 국립국어원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자료를 찾아보았다. 누구나 다양한 교재를 다운로드받을 수 있었다. 나는 초등학교 1학년 교재를 찾아서 태블릿 피시에 내려받았다.     

  티나에게 가는 내내 걱정이 앞선다. 마음을 단단히 먹었지만 티나의 행동을 예측할 수 없어서 불안하다. 도우미 아주머니가 현관문을 열어주며 티나가 거실에 있다고 말했다.

  “티나, 잘 있었니?”

  나는 일부러 쾌활한 목소리로 인사했다. 티나는 창가에 서서 살구나무를 보고 있었다. 나무에는 초록색 작은 살구들이 셀 수 없이 많이 달려 있었다.

  “선생님이 인사하는데 왜 그러고 서 있어?”

  도우미 아주머니가 티나를 나무랐다. 티나는 못 들은 척하며 팔짱을 낀 채 그대로 서 있었다. 나는 아주머니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나가시라고 했다. 아주머니가 눈을 찡긋하더니 오렌지와 쿠키를 탁자 위에 놓고 거실을 나갔다.

  소파에 앉아서 기다렸다. 침묵이 지루했는지 티나가 쿠키를 집어 들고 맞은편에 가서 앉았다. 티나는 쿠키를 먹지 않고 가만히 들여다보기만 했다. 어색한 분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도 쿠키를 하나 집어 들었다. 쿠키를 한 입 베어 물기도 전에 내 얼굴에 쿠키가 날아왔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지만 쿠키는 내 왼쪽 뺨에 맞고 소파에 떨어졌다. 티나는 접시에서 쿠키를 하나 더 집어서 내게 또 던졌다. 이번에는 제대로 피했다. 냉정함을 잃지 않으려고 애쓰며 티나에게 쿠키를 주워서 접시에 담으라고 말했다. 티나는 꼼짝도 하지 않고 앉아서 적의에 찬 눈빛으로 나를 보았다. 나는 티나를 제압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벌떡 일어나서 티나 쪽으로 갔다. 티나는 달아나지 않고 그대로 앉아 있었다. 티나의 두 손을 꽉 잡고 물었다.

  “오지 말까? 네가 오지 말라고 하면 안 올 거야.”

  티나는 손을 잡힌 채 가만히 있었다. 내 손을 뿌리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내가 오기를 원한다고 자의적으로 해석했다. 다시 한번 물었다.

  “내가 안 오면 좋겠어? 그럼 갈게.”

  금방이라도 갈 것처럼 몸을 돌리는 시늉을 하자 티나가 고개를 흔들었다. 내가 손아귀의 힘을 뺐는데도 티나는 손을 빼내지 않 았다. 나는 부드럽게 티나의 손을 쓰다듬었다.

  “티나, 나는 너에게 한국말을 가르치러 왔어. 내가 오기를 바란다면 너는 공부를 해야 해. 몇 분이라도 좋으니까 조금만 하자.”

  티나의 침묵을 동의로 받아들인 나는 태블릿 피시를 켰다. 스케치북도 티나 앞에 펼쳐 놓았다. 티나는 스케치북에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배배 꼬면서 노래를 불렀다. 첫날 티나가 살구나무를 보며 콧노래를 흥얼거렸던 게 떠올랐다. 무슨 노래인지 물었지만 티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가로줄은 자음이고, 세로줄은 모음인데 이렇게 읽어.”

  발성 연습을 할 때처럼 입 모양에 신경이 쓰였다. 큰 소리로 서너 번 읽은 다음 또박또박 하나씩 썼다. 티나는 여전히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달래꽃, 달래꽃이라고 하는 것 같았다. 나는 스케치북을 넘겨서 ‘달래꽃’이라고 썼다.

  “네가 지금 달래꽃이라고 노래 불렀지? 한글로 이렇게 써.”

  티나가 곁눈질로 내가 쓴 글씨를 훔쳐보았다. 티나의 관심에 고무된 나는 스케치북 앞장을 다시 폈다.

  “빈칸을 메우는 게 숙제야. 숙제를 열심히 하면 금방 달래꽃을 쓸 수 있을 거야.”

  티나가 스케치북을 집어 들었다. 글씨를 자세히 보려고 하는 줄 알았는데 내 기대와 달리 아이는 스케치북을 찢었다. 그리고 눈을 흘기며 나를 노려보았다. 어린아이 눈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파란 불꽃이 튀었다. 달래야 할지, 야단을 쳐야 할지 알지 못했다. 마음 같아서는 꿀밤이라도 한 대 주고 싶었다. 웃으면서 먹이는 꿀밤에는 애정과 질책을 동시에 담을 수 있지만, 문화도 다르고 언어도 달라서 묘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찢어진 스케치북 조각을 펴서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가벼운 한숨이 나왔다.     

  스케치북을 찢고, 쿠키를 던지고, 눈을 흘기면서도 티나는 어느새 자음과 모음을 다 익혔다. 노래를 부르고, 딴청을 하면서도 내 말을 주의 깊게 들었음이 분명했다. 티나의 한글 습득 속도가 빠른 게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어휘 공부를 시작했다. 페이지를 열자 그림 옆에 아빠, 엄마, 아가 등 가족과 관련한 낱말들이 적혀 있었다.

  “폴란드 말의 맘이 한국말로 엄마야, 한번 읽어 볼래? 엄-마.”

  티나가 갑자기 나를 주먹으로 때렸다. 그리고 거실 밖으로 달려나갔다. 한참이 지나도 티나는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평소처럼 꾀를 부리는 줄 알았다. 

  도우미 아주머니가 빠른 걸음으로 들어와서 티나가 지금 엄마한테 전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선생님이 자기를 때려서 코피가 난다고 했다는 거다. 아찔했다. 아동 폭력과 같은 단어가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티나 엄마에게, 아빠에게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하지? 그들이 내 말을 믿어줄까? 이스트를 넣은 밀가루 반죽처럼 우려가 점점 크게 부풀었다. 제 손으로 콧구멍을 후벼 파서 일부러 피를 낸 거니 걱정하지 말라고 도우미 아주머니가 나를 안심시켰다.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내가 현관으로 나가는 것과 동시에 2층에서 뛰어 내려온 티나가 아빠 품에 폭삭 안겼다.

  “티나, 무슨 일이니? 왜 그래?”

  티나는 아빠 품에 안겨서 엉엉 울었다.

  “선생님이 나를 때렸어요.”

  티나의 작은 콧구멍을 막고 있는 하얀 솜뭉치가 보였다. 티나 아빠가 딸을 안고 계단을 올라갔다. 도우미 아주머니가 뒤를 따랐다. 나는 이참에 그만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돈도 좋지만 정신적인 소모가 너무 컸다. 티나 아빠가 거실로 들어왔다.

  “사춘기가 벌써 왔나 봐요.”

  그가 소파에 털썩 주저앉으며 말했다.

  “엄마라는 말 때문에 그랬을 거예요. 생모가 생각났나 봐요.”

  내가 말했다.

  “나와 집사람이 아무리 노력해도 티나에게 온전한 부모가 될 수는 없나 봅니다.”

  그가 자조적인 웃음을 지었다.

  “아내가 지금 오고 있어요. 선생님에게 묻고 싶은 말도 있고, 듣고 싶은 말도 많대요.”

  “티나 어머니가 오해하시지 않으면 좋겠어요. 제가 티나를 때린 게 아니예요.”

  “도우미 아주머니가 그러더군요. 티나가 화장실에서 자기 코를 후벼 파서 피를 낸 거라고요. 아주머니 말도, 선생님 말도 믿어요. 그래서 걱정이 더 큽니다.”

  티나 엄마가 거실로 들어섰다. 그녀는 나와 단둘이 이야기하고 싶다고 했다. 티나 아빠는 티나를 돌보러 2층으로 올라갔다.

  “제가 때린 게 아닙니다.”

  나는 티나 엄마에게 믿어달라고 말했다.

  “믿어요. 그런데 티나가 왜 그랬을까요?”

  그녀가 간절한 눈빛으로 나를 보았다. 나는 조금 전 티나 아빠에게 했던 말을 되풀이하는 수밖에 없었다. ‘엄마’라는 말 때문이었을 거라고. 말을 하고 보니 정말 그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티나는 자기를 버린 엄마를 때려주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제 역량이 부족한 거 같아요. 그만 오고 싶어요. 다른 선생님을 구해 보세요.”

  그녀가 작게 한숨을 쉬며 제발 부탁이니 계속 와달라고 말했 다. 페이도 올려주겠다면서. 조만간 아파트 재계약을 해야 하는 데 월세가 하루가 다르게 오르고 있었다. 이왕 시작했으니 조금만 더 해 볼까 생각하다가도 오늘보다 더 큰 일이 생기면 감당 할 수 없을 거 같기도 했다. 내 눈치를 보며 그녀가 말을 이었다.

    “티나를 너무 사랑해요. 하지만 언제 티나를 빼앗길지 몰라 항 상 불안하죠. 생모가 돌려달라고 하면 보내는 수밖에 없잖아요. 티나가 언제 친엄마에게 갈지 모르니 한국말을 꼭 가르쳐야 해요.”

  “무슨 말씀이신지? 티나를 뺏길지도 모른다니요?”

  그녀는 입양한 아이를 친부모가 데려가는 일이 흔하다고 했다. 친부모의 친권이 양부모의 양육권에 우선한다고, 법이 그렇다고 말했다.

  “내일도 티나를 안을 수 있을까? 내일도 티나의 뺨에 뽀뽀할 수 있을까? 살얼음 위를 걷듯 그렇게 살아왔어요.”

  불안을 안고 하루하루 살아내야 하는 삶의 무게를 조금은 느낄 수 있었다. 이별을 두려워하면서도 티나의 행복을 생각하는 그녀를 보며 부끄러움과 부채감을 동시에 느꼈다. 나는 다시 오겠다고 말하고 일어섰다.               

  입양아에 관한 법이 불합리하다고 생각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나는 아직도 아기들을 해외로 내보내는 대한민국에 화가 났다. 티나 같은 아이를 21세기에도 봐야 하다니…. 전쟁이 난 것도 아니고, GDP가 세계 12위나 되는 나라에서. 실망했고, 속이 상했다. 해외입양 부모가 언제라도 아이를 뺏길 수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온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서 입양 제도에 관해 조사했다.

  미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나라에서 국내입양의 경우 친모가 입양아를 만날 권리를 인정해 주고 있었다. 양부모들이 고액의 경비를 부담하면서 해외에서 아이를 입양하는 이유가 친부모에 대한 후속 서비스에 신경 쓸 필요가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티나의 부모도 그런 이유로 한국 아이를 입양했을 것이다. 그런데 왜 그렇게 불안에 떨까? 우리나라는 해외입양의 경우에도 국내입양과 같은 의무를 지우는지 궁금했다.

  나는 중앙입양원에 티나 생모가 언제든지 아이를 한국으로 데려갈 수 있는지 물었다. 그리고 생모에 대한 정보도 요청했다. 중앙입양원은 입양아 본인이 문의하더라도 법률에 근거해 생모의 동의 없이는 어떤 정보도 공개할 수 없다고 회신했다. 티나의 생모가 정보공개에 동의했는지 알고 싶다는 메일을 또 보냈다. 답신을 기다리는 동안 티나를 보는 날이 돌아왔다.

  코피 사건 이후 도우미 아주머니 대신 티나 엄마가 나를 맞이했다. 티나는 이제 스케치북이나 쿠키를 던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나를 골탕 먹이는 일을 멈춘 것은 아니다. 고함을 치거나 정원으로 나가지는 않았지만, 내 인내심을 시험하는 것처럼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소리 없는 반항을 계속했다. 탁자 밑으로 들어가고, 드러누워서 뒹굴고, 사인펜으로 낙서를 하고, 혀를 내밀고, 인상을 썼다. 얌전히 앉아 있는 시간은 30분도 되지 않았다. 수업 이 아니라 전투였고, 나는 지기만 하는 병사였다.

  어느 날 티나가 레슬링을 하자고 졸랐다. 내가 싫다고 했지만 막무가내였다. 소파의 등받이 위로 올라간 티나가 펄쩍 뛰어내리며 팔로 내 목을 휘감았다. 두 다리로 내 옆구리를 조이며 매미처럼 등에 찰싹 달라붙었다. 팔을 풀려고 했지만, 예상외로 티나의 팔심이 셌다. 실랑이하다가 티나를 매단 채 빙빙 돌았다. 티나가 깔깔거리고 웃었다. 그 틈을 타서 티나의 겨드랑이를 잡고 번쩍 들어서 소파에 내동댕이쳤다. 티나는 꼼짝도 하지 않고 누워 있었다.

   처음엔 장난이겠거니 했는데 한참이 지나도 기척이 없었다. 깜짝 놀라서 티나를 흔들며 괜찮은 거냐고 물었다. 눈을 감고 누워 있던 티나가 배시시 웃었다. 내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순간 티나가 손톱을 세우며 어흥 하고 덤벼들었다. 깜짝 놀라서 뒤로 물러나다 카펫 위에 엉덩방아를 찧으며 나동그라지고 말았다. 나도 꼼짝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지루한 정적이 이어졌다.

  애잔한 멜로디가 정적을 깼다. 티나가 두 팔로 무릎을 감싸 안고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이제야 가사를 분명히 알아들었다. 달래꽃이 아니라 달레꼬였다. 반복되는 거로 보아 후렴 같았다. 달레꼬는 폴란드어로 멀다는 뜻이다. 슬픈 멜로디 때문인지, 웅크리고 앉은 티나의 모습 때문인지, 달레꼬 달레꼬라는 가사 때문인지 티나를 안아주고 싶어졌다. 티나는 어쩌다가 이렇게 먼 곳 까지 오게 되었을까. 내 마음을 행동으로 옮기기 전에 티나가 거실 밖으로 나갔다. 수업이 끝난 줄 알고 티나 엄마가 차를 가지고 들어왔다. 나는 그녀에게 중앙입양원에서 받은 첫 번째 회신 내용을 전달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보내는 편지가 친부모에게 전달되지 않았다는 건가요?”

  그녀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녀는 티나의 친부모를 위해 티나의 성장 과정을 한 달 단위로 상세하게 기록한 긴 편지를 매년 쓴다고 했다. 여러 장의 사진을 동봉해서 입양기관에 보내는데, 티나의 친부모가 편지를 읽는다고 믿고 있었다.

  “티나가 목마를 타고, 인형 놀이를 하고, 유치원에서 노래를 부르고, 학교에 가는, 이 모든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서 보냈어요.”

  나는 편지가 티나의 생모에게 전달되었는지 알아보겠다고 말했다.

  생모의 정보공개 동의 여부에 대한 회신이 오지 않아서 메일 을 또 썼고, 티나 엄마의 편지가 생모에게 전달되었는지도 물었다. 알려줄 수 없다는 성의 없는 회신을 받았다. 높은 벽에 가로막힌 느낌이었다.

   나는 폴란드 친구에게 ‘달레꼬, 달레꼬’라는 노래를 아느냐고 물었다. 친구는 유명한 노래라고 했다. 2차대전 당시 어머니가 폴란드 사람인 러시아 병사가 있었다. 폴란드로 파병된 병사가 외갓집을 보며 어머니가 그리워서 부른 노래인데 나중에 대중가요 가 되었다고 말해 주었다. ‘달레꼬, 달레꼬’가 노래 제목이었다.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티나에게 달래꽃이라는 꽃을 아는지 물었다.

  “네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달래꽃, 달래꽃, 이라고 하는 줄 알았어.”

  풍뎅이에 대해 말할 때처럼 티나의 눈이 반짝였다. 나는 태블릿 피시에 저장해 둔 사진을 보여 주었다. 줄기 끝에 방울 모양으 로 피어 있는 작은 보라색 꽃들과 시장에서 파는 뿌리 달린 달래 와, 갖은양념으로 무친 달래 나물 사진도 보여 주었다. 한국에서는 봄이 되면 달래 나물을 먹는다는 말에 티나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어깨를 으쓱했다. 그 뒤로 나는 티나가 딴짓을 할 때마다 달래꽃이라고 발음하며 달레꼬를 불렀다. 그럴 때면 티나는 하던 짓을 멈추고 웃었다.

  티나 엄마를 만난 나는 티나가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친부모에rp 티나의 소식을 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법이 그렇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렇다면 내가 보낸 편지들은 어디로 가는 거죠? 기관에서 가지고 있나요?”

  안도하는 것 같던 그녀가 재차 물었다.

  “…, 음 아마 그럴 거예요. 티나가 성인이 된 이후에 전해 준대요.”

  나는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진실인 것처럼 말했다. 이별에 대한 불안으로 가득한 그녀를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그런 말이 나왔다.

  “정말이죠? 유진, 정말 그런 거죠? 티나가 성인이 되기 전까지 친부모는 티나가 어디 있는지 모르는 거죠?”

  내가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녀는 웃지 않았다. 오히려 푸른 눈에 물기가 살짝 어렸다. 나 역시 편지들이 어디로 가는지 궁금했지만 알아낼 방법이 없었다. 모든 입양 부모들이 그녀처럼 긴 편지를 보내는데 친부모에게 전달되지 않는다면 편지들은 모두 버려지는 건가? 티나의 엄마만 편지를 보내는 건가? 열심히 조사해 보았지만 해외에 있는 입양 부모가 아이에 대한 보고서를 입양기관에 매년 보내야 한다는 의무사항 같은 건 찾지 못했다. 티나의 친부모가 편지를 받 아보기를 바라는 마음과 티나가 성인이 될 때까지 받아보지 못하면 좋겠다는 마음이 뒤섞였다. 티나 엄마도 그럴 거 같았다.

   아담한 그 거실에서는 시선을 어디로 두던 바다 그림과 부딪혔다. 티나와 관련이 없다면 도배하다시피 걸어 두지는 않았을 거 같았다. 폴란드 친구들 집에 가면 으레 유화가 한 두 점 걸려 있기 는 했다. 정물화가 제일 많았고, 밀밭에서 추수하는 농부나 사과밭 같은 풍경화가 뒤를 이었다.

  “바다를 좋아하시나 봐요?”

  “내가 아니라 티나가 좋아해요.”

  티나를 위한 그림일 거라는 내 짐작이 맞았다.

  “티나가 발견된 곳이 바닷가에 있는 작은 교회 앞이었대요. 잠투정이 심해서 밤마다 애를 먹었어요. 자연의 소리를 담은 수면 유도 음악을 들려주었는데, 파도 소리가 가장 효과가 있었죠. 동화책을 읽을 때도 그랬어요. 펜을 그림책의 특정한 부분에 대면 소리가 나는 동화책 알죠? 그때도 갈매기 울음소리가 나면 까르르 웃더라고요.”

   “아, 티나가 부르는 노래에 ‘바다 건너 멀리’라는 가사가 있던 데 그래서 좋아하는 거군요”

   “티나가 보챌 때마다 등에 업고 살구나무 아래서 달레꼬를 불러 주었어요. 티나가 몸을 흔들며 박자를 맞추는 거 같았거든요.          

그래서 나는 티나가 이 노래를 좋아한다고 생각했어요.”

  “티나를 업어주셨어요? 어떻게요?”

  “티나를 돌보던 위탁모가 포대기를 선물로 주며 아기 업는 법을 알려주었어요. 남편과 번갈아서 업었어요. 집 안에서만.”

  그녀는 환경의 변화를 덜 느껴야 아기가 정서적으로 안정될거 같아서 업는 법을 배웠다고 했고, 자연관찰을 좋아하는 티나는 틀림없이 훌륭한 과학자가 될 거라며 웃었다. 영락없는 딸바보 엄마였다.

  “제게 풍뎅이를 내밀어서 놀랐어요. 저는 곤충이나 벌레는 질색이거든요.”

  “그랬군요. 미안해서 어쩌죠? 달팽이, 무당벌레, 잠자리, 바구미, 온갖 것들을 집안으로 가지고 와요. 관찰한 후에는 다시 살려주는데 그런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워요.”

  그녀는 아이의 사랑스러운 모습을 자신만 보는 게 미안해서 긴 편지를 썼고, 티나가 친부모와 재회했을 때 사랑이나 그리운 감정을 주고받을 수 있도록 한국말을 가르쳐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그녀처럼 할 수 없을 거 같았다. 편지를 쓰지도 않을 거고, 한국말을 가르치지도 않을 거고, 한국이라는 나라 자체를 아예 모르게 할 거 같았다.     

  티나는 이제 나와 함께 0세에서 4세까지의 아기들을 위한 그림 동화를 읽는다. 한글학교에서 빌린 전집을 티나네 집에 가져다주었다. �염소로 변한 닭�을 읽고 나서 티나는 달걀이 염소가 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얼마일지 계산했다. 집 앞의 시장에 가서 달걀과 닭과 염소의 가격을 조사했다고 한다. 두 뺨을 발갛게 물들이며 열심히 설명하는 티나의 모습이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다시 찾은 돈 자루�를 읽고서는 노랑이 영감의 어리석음을 비웃었다. �수다쟁이와 새털�을 읽고서는 깔깔거리며 웃었다. 새의 깃털이 얼마나 가벼운지, 얼마나 쉽게 날아가는지 모르는 수다쟁 이 아줌마는 바보라고 흉을 보다가 두 손으로 입을 가렸다.

  “아, 내가 수다쟁이 아줌마가 되었네요. 후유, 큰일 날 뻔했다.”

   티나와 나는 하이파이브를 했고, 함께 웃었다.

   어느 날 티나가 �진짜 엄마와 가짜 엄마�를 들고 왔다. 가슴이 철렁했다. 저 책을 왜 미리 걸러내지 못했을까 후회하며 가슴을 쳤다.

  “티나, 그 책 말고 부자의 세 친구 읽을까? 아니면 하늘나라의 저울을 읽든가.”

  “왜요?”

  다른 책을 읽자고 달랬지만 티나는 막무가내였다. 나는 온몸의 신경줄이 팽팽하게 당겨지는 것을 느꼈다. 함께 읽을 수가 없었다. 더듬거리며 혼자 책을 읽은 티나가 미간에 날을 세우고 내게 달려들었다. 내 얼굴과 가슴을 닥치는 대로 때렸다. 나는 피하지 않고 그대로 맞았다. 티나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충분히 이해했기 때문이다.

  티나가 거실을 뛰쳐나갔다. 붙잡으려고 했지만 티나는 다람쥐처럼 재빠르게 정원을 가로질러 거리로 나갔다. 티나의 이름을 부르며 뒤를 쫓았다. 티나 엄마가 내 뒤를 따랐다. 티나가 전찻길을 건너자마자 보행자 신호가 빨간불로 바뀌었다. 인파 속으로 사라지는 티나의 뒷모습을 보며 그 자리에 서 있는 수밖에 없었다. 티나 엄마의 얼굴은 사색이 되어 있었다. 그녀의 손을 잡았다. 얼음처럼 차가운 손이 파들파들 떨렸다.

  신호가 바뀌었다. 나는 그녀의 손을 놓고 티나가 사라진 쪽으로 내달렸다. 500m 정도 가면 티나가 다니는 초등학교가 있다. 운동장 구석구석을 찾아보았지만 티나는 없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문은 잠겨 있었다. 학교를 나와 시장으로 갔다. 나무로 지은 조그만 가게들이 늘어서 있는 시장은 미로처럼 복잡했다. 빵집이나 정육점은 이미 문을 닫았고 과자 가게, 옷가게, 장난감 가게 등만 아직 열려 있었다.

  “티나, 티나, 어딨니?”

  티나의 이름을 목청껏 부르는 한편 사람들에게 검고 긴 머리를 한 조그만 여자아이를 보았는지 물었다. 시장을 몇 바퀴나 돌았지만 티나를 찾지 못했다. 티나가 갈만한 곳을 생각해내려고 애썼다. 시장 뒤에 아파트 단지가 있었다. 주택가보다 상대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티나와 공부를 하고 있으면 가끔 살구나무 뒤 벽돌 담 위로 아이들이 올라왔다. 티나는 그 아이들이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이라고 말했다. 살구가 익으면 더 많은 아이들이 담장을 넘는데, 티나의 엄마 아빠는 아이들이 살구를 따 가도록 둔다고 했다.

  나는 아파트 단지로 달려갔다.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가 멀리까지 들렸다. 티나가 정원에서 곤충이나 벌레들과 노는 건 앞집에도 옆집에도 아이들이 없기 때문이었다. 한 무리의 아이들이 술래잡기를 하고 있었다. 티나는 보이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티나를 보았는지 물었다. 한 남자아이가 손가락으로 아파트 뒤편을 가리켰다. 뒤쪽으로 돌아가니 재활용품을 모으는 창고가 나 왔다. 지붕만 있는 공간에 가구나 전기제품들이 쌓여 있었다. 나 는 책상 아래서 티나를 찾아냈다. 티나는 머리를 무릎에 파묻은 채 공처럼 몸을 동그랗게 말고 있었다. 나는 나오라고 말하는 대신 허리를 구부리고 들어가 티나를 안았다. 티나를 안은 두 팔에 힘을 주었다. 티나가 조금도 움직이지 못하도록, 아니 숨도 쉬지 못할 정도로 꼭 안았다. 고개를 든 티나가 내 품에서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썼다.

  나는 자장가를 부르듯 나지막하게 달레꼬를 불렀다. 달레꼬, 달레꼬, 자 모젬 달레꼬(멀리, 멀리, 바다 건너 멀리). 티나는 버둥거림을 멈추고 가만히 노래를 들었다. 티나의 숨소리가 규칙적으로 변했을 때 포옹을 풀었다. 나는 두 손으로 티나의 얼굴을 감쌌다. 눈물로 범벅된 뺨에 머리카락이 아무렇게나 들러붙어 있었다.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고 눈물을 닦아주었다. 바닥 저 아래에서부터 끌어올렸을 기운 때문에 아이 몸에서 열기가 느껴졌다. 나는 아이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춘 후 작게 속삭이기 시작했다. 주위에 사람도 없었고, 있다 한들 한국말을 알아들을 리도 없었지만 나는 일부러 목소리를 낮추었다. 은밀한 이야기, 은밀하니 분명 소중한 이야기라는 느낌을 티나에게 주고 싶었다. 다소 가라앉았지만 그래서 거짓이 아닌, 그래서 결코 이기심도 아니고 악도 아닌, 진실이라는 인상을 주고 싶었다. 티나가 까만 눈동자를 굴리며 똑같이 까만 내 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러니까, 티나…. 목이 메었지만 나는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아이가 알아들었는지 못 알아들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끝까지 말하기로 했다. 책상 아래 작은 공간을 티나와 나만의 비밀로 가득 채웠다. 비밀은 팔짱을 끼지도 않고, 스케치북이나 쿠키를 던지지도 않는, 착하고 부드러운 선율로 가득 찼다. 그러니까, 티나…. 나는 말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말했다. 비밀은 여기까지. 나도 모르게 주르르, 눈물이 흘렀다.

  나는 티나를 품에 안고 큰 소리로 말했다.

  “티나, 나 이제 네게 안 올 거야. 우리 티나, 씩씩하게 잘 살 거지? 너를 사랑해. 언제나 생각할 거야.”

  티나를 다시 꼭 끌어안았다. 자꾸 눈물이 났다. 왜 이러지? 주책이야, 생각하면서도 감정을 다스리기가 어려웠다. 티나는 훌쩍이는 내 품에 머리를 기대고 얌전히 안겨 있었다.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티나 엄마에게 전화했다.

  “티나, 엄마한테 가자.”

  티나의 손을 잡고 책상 밑에서 나왔다.     

  티나 엄마와 아빠가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부부가 티나를 향해 달려왔다. 티나 아빠가 티나를 번쩍 들어 올려서 품에 안 았다. 나는 티나 엄마에게 이제 오지 않겠다고 말했다.

  “과외를 그만하시겠다니요. 그것도 지금 당장. 힘든 줄은 알지만 이렇게 갑자기 그만두실 줄 몰랐어요”

  “티나에게 모두 말했어요. 이해할 거예요. 영리한 아이잖아요.”

  “무슨 말을 했다는 거죠?”

  “티나에게 물어보세요.”

  몸을 돌려서 전찻길을 향해 걸었다. 아이스크림 가게 앞에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키오스크의 신문은 다 팔렸다. 표지판에 적혀 있는 거리 이름은 뷔타 스트보샤(스트보샤에 오 신 걸 환영합니다).

  티나, 스트보샤에 온 걸 환영해.

  전차 정류장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이 유난히 푸르고 맑았다. 구름 한 점 없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흘러가는 엄마 구름과 아기 구름이라도 있으면 덜 허전할 텐데.

  책상 아래에서 눈물이 그렁그렁한 티나의 눈을 들여다보며 나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진심으로 사과했다.

  “티나, 정말 미안해. 너를 이렇게 멀고 먼 곳으로 오게 해서. 파도 소리도 들리지 않고 갈매기 울음소리도 듣지 못하지. 해가 물 위로 힘차게 뜨는 것도 볼 수 없고 수줍게 가라앉는 것도 보지 못 하지….”

  그리고 말했다.

  “한국 엄마는 죽었을지도 몰라, 티나. 그런데 한국 엄마는 가짜야. 살구나무 아래에서 너를 업고 달레꼬를 불러준 엄마가 진짜 엄마란다.”              

 

(2020신예작가, 한국소설가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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