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 국정원 신고전화입니다

[엽편소설]

by 이현신

‘안녕하십니까? 국가정보원 111 신고상담 전화입니다.’

전화를 받은 여자의 차분한 음성이 듣기 좋았다. 내가 국정원에 전화할 일이 생길 줄은 정말 몰랐다. 나 같은 보통 사람이 국정원에 전화할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기까지 했다.

그동안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신념으로 살아왔지만 요즘 나라 돌아가는 꼴이 너무 어수선했다. 좋은 게 좋다고 생각하며 넘기려고 아무리 애써도 날이면 날마다 뉴스를 도배하는 코로나는 좀 달랐다. 뒤통수를 잡아당기는 듯한 불안감에 눈을 감고 귀를 닫기 어려웠다. 채널이 아홉 개나 되니 하루 종일 코로나에 관한 소식을 보고 들을 수 있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라 하지 않는가? 음압병실이니, 바이러스 변이니, 코호트 격리니 하는 어려운 말들이 많이 나왔으나 자꾸 듣다 보니 이해되었다.

유튜버들도 앞다투어 코로나 관련 보도를 했다. 대통령이 코로나를 퍼뜨렸다, 중국이 실험실에서 만든 신종 생물학 무기다, 마스크로는 안 되고 고글도 쓰고 다녀야 한다, 남한을 불바다로 만들겠다며 동해나 서해로 미사일을 쏘아대던 북한이 코로나, 사스, 조류독감, 에이즈까지 예방하고 치료할 수 있는 주사약을 만들었다…. 책임회피 5인방에 보건복지부 장관을 포함시키더니 우왕좌왕 5인방에 대통령을 포함시켰다. 정보가 모이면 모일수록 나의 머리에 간첩이라는 단어가 자리를 잡았다. 많은 간첩이 활동하고 있고, 그것도 각계각층에 퍼져 있다는 의구심이 일었다. 국민 정서가 미개하다고 한 어느 국회의원 아들의 말이 생각이 났지만, 국민이 미개하다기보다는 간첩들의 치밀한 작전인 것 같았고, 언론사 내에도 간첩이 있는 게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불안만 조장하는 이상한 보도를 할 리가 없지 않은가?

모 경제연구소 소장이 TV에 출연해 거리 두기로 인해 기업이 무너지면 나라가 무너진다며 지나친 방역이 더 큰 일이라고 열변을 토했다. 별일 아닌 걸로 유난을 떤다고도 했다. 나는 그의 말이 맞기를 바랐다. 정말 별일 아니었으면 싶었다. 냄비근성이라더니 왜 이렇게 유난을 떠는지 원. 그런데 별일 아니기를 바라는 내 소망과 달리 유튜버가 제공하는 뉴스의 수위가 점점 높아졌다. 백신이 DNA를 조작하고 변경한다, 백신에 태아의 세포조직이나 미생물이 들어있다, 미국의 거대 기업이 백신에 마이크로칩을 내장해 우리를 통제하려고 한다, 대통령 긴급행정명령에 따라 조선족은 1개월 거주 시 주민증과 선거권을 획득한다…. 괴담에 가까운 정보였다.

그래도 나는 정부를 믿고 싶었다. 믿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하지만 유수의 보수언론에서조차 괴담을 뒷받침하는 듯한 보도가 나오기 시작했다.

- 대통령 오판이 부른 참사다.

- 우리나라에는 위기관리 컨트롤 타워가 없다

- 과학보다 정치를 우선한 정치 방역이다

- 준비 없는 위드 코로나로 국민을 사지로 내몰고 있다

- 관료들은 무능하고 전문가의 말을 듣지 않는다

내가 사랑하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이 정말 이렇단 말인가? 음압병실을 갖춘 공공병원이 충분히 있었다면 국민은 아무 걱정도 없을 터인데 국가가 이런 준비를 하지 못한 것은 간첩의 침투와 방해 공작 때문이라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나는 극심한 혼란에 빠졌다. 친구가 격리 조치를 당했다는 소식을 듣자 덜컥 겁이 났다. 괴담이 모두 사실이란 말인가? 간첩들의 작전이 성공한 걸까? 어쩌지? 인생에서 처음으로 좋은 게 좋은 것이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나 자신과 가족을 스스로 보호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나는 아파트 관리실에 가서 의사나 병원에서 일하는 사람과 소방관들은 엘리베이터에 타지 못하게 하라고 호통쳤고, 병원 근처에는 가지 말라고 가족들에게 주의를 주었으며, 손자 학교에 가서 의료진의 자녀들이 등교하지 못하도록 해 달라고 교장에게 요구했다. 지하철도 버스도 타지 않고 걸어 다녔으며 하루에 열두 번도 더 손을 씻었다.

온갖 조치를 다 취했으나 불안했다. 갑자기 닥친 이 모든 혼란의 이면에 간첩의 준동이 있을 거라는 확신이 몸집을 키웠다. ‘간첩은 노린다. 조심, 조심, 조심.’ ‘우리 사회 곳곳에는 간첩과 좌익사범 및 국제범죄 사범이 숨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예전에 곳곳에 붙어 있었던 표어가 생각났다. 그래, 신고해야 해. 간첩을 소탕해야 이 혼란에서 벗어날 수가 있어. 나는 사명감을 가지고 국정원에 전화했다.

‘안녕하십니까? 국가정보원 111 신고상담 전화입니다. 신고상담은 1번….’

1번을 누르라는 말을 듣는 순간, 이 또한 간첩의 소행이 아닐까 의심스러워서 화면 속의 빨간색 수화기 아이콘을 황급히 눌렀다. 긴급전화에 번호 구분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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