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청어

by 이현신

오늘은 24절기 중 19번째인 입동이다. 예전에는 입동 무렵 김장을 했는데 배추를 절이고 씻고 하는 동안 손이 시렸다. 그런데 2025년 11월 7일의 최고 기온은 무려 섭씨 20도나 된다. 가볍게 차려입고 올라간 산책로에 사람들이 모여 서서 진달래다, 아니다 철쭉이다, 다투고 있다. 가까이 가서 보니 무성한 초록 잎새 위에 진분홍색 꽃이 서너 송이 피어 있었다. 진달래인지 철쭉인지 나도 잘 모르겠다. 봄에 피는 진달래는 꽃이 먼저 피고 잎이 나중에 나오기에 한눈에 알아볼 수 있지만 지금은 초록 잎 사이에 피어 있으니 진달래인지 철쭉인지 구별하기 어려웠다. 한 방송에서는 청개구리 가을의 변덕스러운 날씨라고 보도했다. 청개구리처럼 변덕스럽거나 말거나 나는 화창한 날씨를 즐기기로 한다. 하늘이 한없이 푸르다. 가없이 푸른 하늘이 오래전 기억을 불러냈다. 그때 페리 위에서 본 하늘이 정말 맑고 푸르렀다.

노르웨이 피요르드 여행에서 페리는 가장 중요한 교통수단이다. 자동차를 페리에 실었다가 내렸다가 하면서 이동한다. 수백만 년 전 거대한 빙하가 산악 지대를 깎아내리는 바람에 U자 모양의 깊은 골짜기가 생겼는데 빙하가 녹고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바닷물이 들어와 오늘날의 피요르드 해안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배 안에서 뷔페로 식사할 때 청어 피클(Pickled Herring)을 처음으로 맛보았다. 익숙하지 않은 맛이라서 냅킨에 얼른 뱉어냈다. 열을 가해 익힌 것처럼 청어 살이 희끄무레했는데 식초의 산이 청어의 단백질을 변성시켜서 색이 변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 삼면이 바다인 대한민국에서 싱싱한 생선을 먹고 살았으니 청어 피클이 입에 맞을 리가 없었다. 청어와 관련된 낯선 경험이었다. 몇 년 전 이런 낯섦을 다시 경험했다.

친구와 함께 ‘그대가 조국’이라는 영화를 보러 갔다. 그런데 영어 제목이 붉은 청어(The Red Herring)였다. 그대가 조국이라는 한글 제목과 붉은 청어라는 영어 제목은 아무 연관성이 없어 보였다. 나는 청어 피클을 떠올리며 참 이상한 번역이라고 생각했다. 영화를 끝까지 보기 전까지 그랬다는 뜻이다. 집에 와서 붉은 청어의 의미가 뭔지 찾아본 이후에는 훌륭한 번역이라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 붉은 청어는 주요 논점이나 진실에서 사람들의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거나, 잘못된 결론으로 이끄는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단서나 대상을 의미한다. 원래 냄새가 강한 훈제 청어를 길에서 끌어 사냥개들의 후각을 훈련시키거나, 또는 사냥개들이 토끼나 여우 냄새 대신 청어 냄새를 쫓게 하여 사냥 경로에서 주의를 돌리기 위해 사용했다. 훈제 과정에서 살이 붉어진다.


나는 이 글을 쓰기 위해 AI에게 영화 '그대가 조국' 의 줄거리를 소개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 영화는 [조국 사태]를 대한민국 검찰과 대중과 언론 관계 속에서 발생한 정치적 폭력이자 프레임 전쟁이었다고 해석하며, 그 과정에서 드러난 표적 수사의 폐해와 비합리적인 여론 형성 과정을 지지자들의 관점에서 재조명한 다큐멘터리이다.


우리는 지금 붉은 청어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 같다. 입동에 피어난 진달래만큼이나 세상이 어지럽다. 입 안의 청어 피클을 뱉어낼 때보다 현실이 더 당혹스럽다. 내란 재판은 여전히 진행 중이고, 사람들은 양편으로 나뉘어 여전히 격렬하게 싸우고 있다.

일본 사람들은 1월 1일에 청어알을 먹는다. 자손의 번영과 무병 무탈을 기원하기 위해서다. 우리는 정월 초하루에 청어알을 먹지는 않지만 소금을 뿌려서 구운 청어와 과메기를 즐겨 먹었다. 가시가 많긴 해도 고소하고 기름이 흐르는 청어 구이가 정말 맛있었다.

나는 붉은 청어 대신 새로운 용어를 만들어 주고 싶다. 생각만 해도 입 안에 침이 고이는 맛있는 청어 구이와 다산과 길조가 연상되는 의미로. 청어 입장에서는 붉은 청어의 용도든 의미든 매우 억울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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