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서 남는 건 역시 사진이다. 기억을 믿지 못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어떤 순간을 오래 기억하고 싶어서일까? 사람들은 어디를 가건 사진 찍느라 바쁘다. 멋진 사진 한 장 남기려다 죽는 사람도 있다. 나 역시 열심히 사진을 찍는다. 액자로 만들어서 벽에 걸고, 언제 들춰볼지 모르면서 앨범을 만든다.
스마트 폰으로 달의 분화구를 찍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새로운 모델이 나올 때마다 카메라의 기능은 더욱 향상된다. 저조도 촬영은 물론이고 초광각 기능과 2억 화소의 초고화질 센서에 AI 기반의 이미지 처리 기술까지 제공한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이다. 카메라 기능이 아무리 향상되어도 사진을 찍는 주체는 사람이니까. 며칠 전 다녀온 여행지에서 절실히 깨달았다. 일행 중 사진을 잘 찍는 사람이 있었다. 같은 장소에서 같은 사람을 찍는데도 결과물의 차이가 엄청났다. 여백과 피사체의 조화, 인물과 배경의 비율, 인물을 잡는 각도에 따라 완전히 다른 사진이 되었다.
사진은 하나의 순간을 담음으로써 그때 그곳의 기억이 사라지는 것을 막는다. 망각에 잠긴 것은 버려진 것이다. 그러나 기억된 무엇은 소멸하지 않는다. 기억이 존재함으로 인해 사진에 의미가 부여된다. 그래서 사진이 소중하다. 사진 속의 그 사람을, 그 장소를, 그 시간을 기억함으로써 생의 어느 순간에 일어났던 사건을 우리는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간직하게 된다.
이왕이면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추억하고 싶고, 그러려면 사진을 잘 찍어야 한다. 여행에서 돌아온 후 사진에 관한 책을 읽기 위해 도서관에 갔다. 이론부터 실습까지, 카메라 사진 촬영법부터 스마트 폰 사진 촬영법까지 많은 종류의 책이 있었다. 제일 먼저 손에 든 책은 구도에 관한 책이었다. 책장을 넘기는 동안 여행 중 들었던 말이 하나하나 기억났다. 내 사진을 찍어 주었던 그 분은 단체 여행이라 일정이 빡빡한 와중에도 친절하게 사진을 찍어 주었고, 스마트 폰 화면 속의 사진을 보며 구도에 대해 자상하게 설명해 주었다. 나의 자세를 고쳐주었고,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도 알려 주었다. 외국인이 사진 한 장 찍어달라고 부탁했을 때도 자세와 시선을 지시하며 여러 컷을 찍어 주었다. 덕분에 우리는 두 번이나 일행을 좇아 허겁지겁 달려가야 했다.
책을 읽으며 이번 여행에서 찍은 사진을 다시 보았다. 내가 찍은 사진, 안내자가 찍어 준 사진, 다른 일행이 찍어 준 사진, 그리고 그분이 찍어 준 사진. 네 가지 종류의 사진은 확연하게 달랐다. 사진도 예술의 영역에 속할진대 개인의 자질이 중요하겠으나 배움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였다. 그분은 책을 먼저 읽고 강의를 들으러 가라고 조언했다. 책상 위에 있는 세 권의 책을 읽고 나면 나도 꽤 멋진 사진을 찍을 수 있으리라.
책을 읽다가 집중력이 떨어지면 사진을 한 장 한 장 컴퓨터 화면에 띄워서 자세히 보았다. 일곱 장을 고른 다음 배경을 지웠다. 배경을 지우기만 했는데도 프로필 사진으로 써도 손색이 없어 보였다. 보정이 필요 없을 만큼 얼굴의 윤곽선이 아름다웠고 표정도 밝았다. 그 중에서 다시 두 장을 골랐다. 다음에 책을 낼 때 이 사진을 필자 사진으로 써야지. 그리고 사진에 대해 진지하게 공부해야지.
그분은 내게 사진에 대한 깨달음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친절과 배려가 무엇인지 가르쳐 주었다. 나는 단체 여행의 일원이라지만 말이 통하지 않는 외국인에게도 그분은 최선을 다해서 아름다운 사진을 남겨 주었다.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란 이런 게 아닐까? 위대한 어떤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일상에서 만나는 개개인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 그분 덕분에 이번 여행이 몹시 즐거웠고, 사진 속의 내 얼굴에도 행복함이 묻어났다. 그리고 그 추억이 지금도 나를 행복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