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봄에 홍상수 감독과 그의 젊은 연인인 여배우 김민희가 아들과 함께 산책하는 모습이 언론과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보도되었다. 하남시 미사호수공원에서 촬영된 것으로 알려진 사진에는 유모차 속 아기를 돌보는 여인과, 이 모습을 지켜보는 남자가 담겨 있다.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광경이지만 이들을 바라보는 세인의 시선은 여전히 차갑기만 하다.
브래드 피트와 안젤리나 졸리가 연인이 되게 만든 영화는 2005년 개봉된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였다. 부부이면서 동시에 서로의 정체를 모르는 킬러 역할을 맡아 호흡을 맞추면서 실제로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그때 브레드 피트는 유부남이었다. 아내는 배우 제니퍼 애니스톤으로 영국 런던의 마담 투소 박물관에 두 사람의 밀랍 인형이 세워질 정도로 대중의 사랑을 받던 커플이었다. 브레드 피트의 외도로 이혼하게 되었고, 안젤리나 졸리는 2006년 아들을 낳았다. 그 당시 많은 우리나라 사람이 두 사람의 결혼과 출산을 지지하고 축하했다. 나는 인터넷상에서 그 글들을 읽으며 아, 우리나라도 이제 불륜이나 이혼에 관대한 나라가 되었구나. 생각했다.
2015년 홍상수가 감독하고 김민희가 주연으로 출연한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라는 영화가 개봉되었다. 나는 물론 그 영화를 보러 갔다. 좋은 영화였기 때문에 감독과 주연 배우에게 호감을 가졌다. 영화가 상영되는 기간에 감독과 여배우가 연인이 되었다는 소문이 있었고, 2016년 6월 21일 언론 보도를 통해 두 사람의 열애설이 기정사실화되었다. 그때부터 두 사람을 향한 비난이 폭주했다. 온 나라가 돌팔매질을 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나는 이 사태를 접하고 이중적 혹은 위선적이라는 말의 의미를 비로소 이해했다. 긴 시간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홍상수와 김민희는 자유롭지 못하다. 브레드 피트와 안젤리나 졸리에게 축하의 글을 썼던 그들은 어디로 갔나? 브레드 피트는 되고 홍상수는 안 되고, 안젤리나 졸리는 되고 김민희는 안 되나? 도대체 그 이유가 무엇인가? 안젤리나 졸리가 브래드 피트를 상대로 이혼 소송을 제기한 것은 2016년 9월 19일이었다. 그들은 십 년 만에 파경을 맞았으나 우리의 홍상수와 김민희는 구 년 만에 사랑의 결실인 아들을 얻었다.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하다가 1982년 이문열 소설가가 발표한 단편소설 「익명의 섬」이 떠올랐다. 논란이 분분함에도 불구하고 이문열이 훌륭한 소설가인 이유는 자기가 속한 공동체의 이중성과 허위의식을 처참하리만큼 적나라하게 고발했기 때문이다. 「익명의 섬」에 등장하는 시골 사람들은 겉으로는 혈연과 동질성으로 묶여 공동체적인 삶을 유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으로는 아낙네들이 억압된 성적 욕망을 지적 장애인인 깨철이를 통해 해소한다. 남정네들은 알면서도 모르는 체한다. 성적 욕망, 폭력, 공모가 난무하는 친족관계로 얽혀있는 작은 마을이 은밀한 치부를 어떻게 숨기고 유지하는지 보여준다. 「익명의 섬」은 ‘안개 마을’이라는 영화로 제작되었는데 감독은 임권택, 배우는 안성기와 정윤희였다.
대한민국은 여전히 익명의 섬에 갇혀 있다. 내로남불이란 용어가 뉴스를 도배하고 있지 않은가? 내로남불은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성적인 일탈을 뜻하는 이 말을 가장 많이 쓰는 곳은 정치권이다. 나는 해도 되지만 너는 하면 안 된다고 아우성친다. 이중적이고 위선적이지 않으면 유력 정치인 반열에 오르기 어렵고, 내로남불을 잘할수록 지도층 인사가 된다.
시, 소설, 영화, 오페라, 대중가요를 비롯한 예술의 영역에서 다루는 건 여전히 이룰 수 없는 사랑이거나 이루지 못한 사랑이다. 사람들은 예술이라는 옷을 입으면 열광하면서도 현실에서는 두 개의 자로 길이를 잰다. 브레드 피트가 한 일은 사랑이고, 홍상수가 한 일은 불륜이듯이. 안젤리나 졸리의 삶의 방식은 경외하지만 김민희의 삶의 방식은 멸시하듯이. 그래서일까? 나는 홍상수와 김민희에게 연민을 느낀다. 그들의 사랑이 애틋하다. 우리는 왜 김민희가 아들을 안고 만인 앞에 서서 자랑스러워하게 해 주지 못하는 것일까? 김민희의 삶의 방식을 안젤리나 졸리보다 훌륭하다고 칭찬하지 못하는 것일까?
지루하게 내리던 가을비가 그치고 맑은 하늘이 드러났지만 내 마음에는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다.